2019년 개편 이후 최고등급 쏠림 심화...업계 곳곳서 "재정비 필요" 목소리
본지(팜인사이트)는 앞서 한우 번식우의 발정·수태율 저조 문제, 근출혈·근염 등 이상육 비상사태, 정부의 수급조절 실패가 불러온 가격 변동성을 차례로 짚었다. 한우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진단하는 릴레이 기획의 마지막 회에서는 변별력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현행 쇠고기 등급판정 제도의 한계를 다룬다.
도입 초기 혼선 딛고 한우 산업 성장 견인
1992년 시범 사업으로 도입된 국내 쇠고기 등급제는 국거리·탕·찜 위주였던 당시 육류 소비 구조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갖지 못했다. 근내지방도(마블링) 중심의 품질 구분이 실질적인 구매 척도로 작동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환점은 2000년대를 전후해 찾아왔다.
소득 증대와 외식 문화 성장으로 쇠고기 소비의 중심이 구이로 옮겨가면서, 높은 근내지방도가 보장하는 부드러움과 풍미가 품질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소 등급제는 한우의 고급육 육성 정책을 뒷받침하는 한편 소비자의 구매지표로 활용되면서 수입육과의 차별화를 이루는 핵심 제도로 정착해 왔다.
소 등급제는 한우의 고급육 육성 정책을 뒷받침하며 수입육과의 차별화를 이루는 핵심 제도로 정착해 왔다.
2019년 개편, 근내지방도 기준 완화가 남긴 논쟁
순항하던 등급제는 2019년 12월 전면 개편을 거치며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일부 맛 칼럼니스트와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마블링 중심 사육 방식이 건강을 해치고, 불필요하게 사육 기간을 늘려 생산비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문제는 이러한 대중적 논란과 정치권의 개입이 맞물리면서 시장의 실질적인 유통 현실과 소비 행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정치적 타협' 성격의 개편이 단행됐다는 점이다.
근내지방도 기준을 대폭 낮춰 기존 1+등급 이던 지방 함량(근내지방도 7번)을 1++등급으로 상향 편입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지방 함량을 줄인 쇠고기 생산을 유도하겠다는 명분이었으나, 실제 시장에서는 최상위 등급 내 품질 편차를 키워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다만 1++등급에 한해 근내지방도(BMS No.) 7·8·9번을 함께 병기하도록 설계해, 유통 현장과 소비자가 세부 품질을 구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시장의 극단적인 불확실성을 방어했다.
소 등급판정 개편 변천사(이미지컷: 클로드)
1++등급 출현율 31% 육박… 일반육 줄고 프리미엄만 넘치는 '역삼각형' 구조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1++등급의 진입 문턱이 낮아지면서 최고 등급 물량이 급증하는 부작용은 현실화됐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등급판정통계 추이에 따르면, 개정 전인 2019년 약 14.9% 수준에 머물렀던 한우 전체의 1++등급 출현율은 2021년 23.8%, 2022년 25.6%, 2023년 25.3%, 2024년 26.9%, 2025년 28.9%로 지속 상승했고, 2026년 1~7월 누계 기준으로는 31.0%까지 치솟았다. 한우 10두 중 3두 이상이 최고등급을 받는 셈이다.
거세우의 쏠림은 더 두드러진다. 거세우 1++ 출현율은 2019년 23.2%에서 2020년 32.6%로 9.4%포인트 뛰었고, 2026년 7월 기준으로는 47.2%에 달해 출하되는 거세우 절반 가까이가 최고등급을 받는 구조로 재편됐다.
반면 1+등급 출현율은 2019년 28.7%에서 2026년 1~7월 25.3%로, 1등급은 같은 기간 30.3%에서 23.4%로줄었다. 2등급과 3등급은 각각 14%대, 5~6%대에 그쳐, 프리미엄 등급에 물량이 몰리고 일반육 비중은 줄어드는 역삼각형 구조가 뚜렷해졌다.
근내지방도 기준 완화 이후 한우 등급판정 분포가 '피라미드'에서 '역삼각형'으로 뒤바뀌었다. (자료: 축산물품질평가원, 이미지컷: 클로드)
"최고등급 희소성 퇴색"... 유통 현장선 가격 왜곡 지적
업계에서는 근내지방도 7번의 1++ 편입으로 최고등급의 희소성과 변별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도매시장에서는 1++등급 공급 과잉으로 마블링 지수(7·8·9번) 간 내부 가격 편차가 커지는 등 시장 왜곡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경기 둔화와 한우가격 상승이 겹치면서, 1등급을 찾는 수요는 많지만 등급 간 수급 불균형으로 수요와 공급이 서로 엇박자가 나고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김홍길 의성축협 조합장은 "1++등급 출현율이 가장 많다 보니 유통업체들이 요구하는 1등급 납품은 사실상 어려운게 현실“이라면서 “(유통업체로부턴)1등급 가격을 정산받고 (조합원들의)1++ 물량을 납품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현장에선 실제 한우 가격을 결정짓는 실수요자인 중매인의 의견은 소 등급기준 마련에 배제되고 이같은 기준이 지속되고 있다는 소외감도 팽배하다.
농협경제지주 음성축산물공판장의 한 중매인은 ”어떤 기준이 만들어져도 결국 가격은 시장의 반응과 수용에 따라 중매인들이 결정하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등급기준은 소비자단체나 생산자단체 위주로 정해지고 우리는 따라가는 격이었다"며 "정부는 유통인들을 제도의 실제 관계자로 인식도 하지않고, 인정도 하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축산물공판장 중매인들 사이에선 소 등급판정 기준 마련시 실수요자인 중매인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는 소외감도 팽배해 있다.
마블링 이상의 정보 요구 큰데... 축평원 혁신은 더뎌
2019년 개편 이후 현행 등급제는 큰 틀에서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가운데 제도의 주무기관인 축산물품질평가원이 급변하는 유통 구조와 다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맞춰 새로운 평가 척도를 개발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업계 일각에서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미 마블링 스코어 이상의 다층적 정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축평원 차원의 주도적인 연구나 혁신안 마련은 상대적으로 더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통 환경과 소비자 기호가 빠르게 바뀌는 만큼, 축평원이 주기적으로 등급제 혁신안을 마련하고 시장 검증을 거치는 상시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다.
전국한우협회 김영원 전무는 "제도는 한번 만들면 고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때문에 소 등급제도도 한번 개정 되거나 수정되면 그대로 고착되는 역사로 이어져 왔다"며 "생산과 유통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경직된 제도에 담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등급 변별력 회복... 가장 시급한 과제로 부각
업계에서는 최상위 등급의 신뢰 회복과 변별력 강화가 현재 등급제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유통 시장은 여전히 최고급 품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행 1++등급에 포함된 7번은 실제 거래 시장에서 8·9번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는 중매인 등 실수요자뿐 아니라 생산 농가에서도 꾸준히 나온다. 한우 개량과 사양기술이 발달하면서 고급육 생산 수준은 계속 상향됐는데, 정작 등급판정 기준은 2019년 개편으로 오히려 낮아지면서 최고등급 쏠림과 수급 불균형을 부추긴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근내지방도 7번을 다시 1+등급으로 되돌리고 1++등급 기준 자체를 상향하거나, 아예 최상위에 새로운 등급을 신설하는 방안까지도 거론된다.
한우업계 전문가는 "동일한 1++등급 내에서도 품질과 가격 격차가 벌어지는 모순을 해결하려면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차별화되지 못하는 1++ 7번을 다시 1+등급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며 "최상위 등급의 진입 장벽을 조정하는 등 다시 엄격하게 정립해 1++등급의 프리미엄 가치를 공고히 하고, 1+등급과의 실질적인 변별력을 시장 상황에 맞게 회복시키는 제도 개편의 첫 단추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 등급판정 기술은 최근 AI 판독이 도입되면서 더욱 정밀하고 정교해졌다. 그러나 지금의 소 등급제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어 한우가 지닌 다양한 가치를 보증할 수 있는 체계를 담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양한 가치 보증하는 다면적 품질 표시제로의 진화도 검토를
앞으로의 소비자의 요구가 다양화하고 세분화하는 만큼 쇠고기 등급제는 마블링의 많고 적음을 판별하는 단편적 잣대를 넘어, 쇠고기가 지닌 다양한 가치를 확인하고 보증할 수 있는 다면적 평가 체계로 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가축의 사육 개월령과 성별(암우, 거세우, 비거세우)을 명확히 표기해 고기의 성숙도와 육질 특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암소 특유의 깊은 풍미와 거세우의 균일한 육질 등 소비자가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료 급여 방식에 따른 맛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사료급여 정보 공개를 필수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반적인 조사료와 농후사료 형태의 사육인지, TMR(완전혼합사료)인지, 혹은 TMF(발효사료)를 급여했는지 혹은 스팀사료나 목초비육 등의 특이한 사료의 종류와 급여 방식을 등급 정보와 결합해 표기하는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우업계 전문가는 "축산물품질평가원은 과거의 소 등급판정 관행에 안주하지 않고 선제적으로 등급제 개편안과 신규 평가지표를 주기적으로 발굴·제시해야 한다"며 "사육 개월령·성별·사료 종류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정보 제공 체계가 결합돼야 비로소 등급제가 현대 소비자의 다변화된 입맛과 가치 소비 트렌드를 충족하는 진정한 '가치 측정 척도'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 팜인사이트(http://www.farminsight.net)
(사)한국수입육협회 http://www.korm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