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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류 마사오「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
1.
오래 전부터 세계 각지에는 죽은 시체를 먹는 풍습이 존재했다. 인육을 먹는다는 일명 카니발리즘. 이 말은 예전에 카리브해 섬을 정복한 스페인인이 그곳의 원주민 카리브족의 식인 풍습을 보고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인육을 먹는다고 하면 야만적으로 들리겠지만,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카니발리즘은 그리 드문 현상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초기의 인류 유적 가운데 사람의 두개골로 가득한 동굴이 있었는데, 두개골에는 모두 기이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곳에서 머리 부분 이외의 뼈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구멍이 뚫린 그 두개골은 뇌를 빼먹을 목적으로 살해한 적의 머리통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카니발리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19세기에 탐험가 빅토르는 마르키즈제도의 어느 작은 왕국을 방문했다. 원시시대처럼 생활하고 있던 왕은 액세서리나 의류 같은 선물을 받고 크게 기뻐하며 그를 귀빈으로 대접했다. 빅토르는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왕국의 관광지들을 돌아보기도 하고 진수성찬을 대접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회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빅토르 앞에 아리따운 소녀 십여 명이 길게 늘어섰다. 왕의 얘기로는 최근에 전쟁에서 생포한 여자 노예라고 했다.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소녀 하나를 고르라는 말에 그는 가장 아름다운 소녀를 지명했다. 그러자 그 소녀는 곧바로 어디론가 끌려갔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빅토르도 왕궁에서 물러나와 자신의 객실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자신이 지명한 소녀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여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약간 실망한 빅토르는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소녀가 마음에 걸려, 며칠 뒤 연회석에서 왕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그 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폐하, 일전에 있었던 일 말인데요..."
"응? 무슨 일?"
"그러니까, 그 소녀 말입니다.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요."
그러자 왕은 새삼스럽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아, 그 아이 말이군. 어떻든가?"
"네? 저는 그 뒤로 그 소녀를 만난 적이 없는데요."
"자네 아직 모르고 있었나? 조금 전에 우리 둘이서 먹어치우지 않았나."
2.
<소비하는 문화>의 저자 제레미 맥클랜시가 1978년에 바누아투의 말라쿨라 섬에 있는 어느 부락의 촌장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의 고기는 요리하기 전에 야외에 이삼 일쯤 매달아두어야 맛있다고 한다. 조리순서는 우선 가슴을 도려내고, 손가락 관절을 모두 자른 뒤 손목, 어깨, 발가락과 발목의 관절, 무릎을 자른다. 그런 다음에 위를 꺼내고, 목을 자르고, 넓적다리를 자른다.
모든 살을 잘게 토막내어 넓적다리 부위는 촌장이 먹고, 남은 부위는 주민들에게 분배한다. 고기는 랍랍(yam, 가루를 바나나 잎에 싸서 숯가마에 구운 푸딩)과 함께 조리하는데, 기름기가 많고 달착지근하다고 한다.
인육을 먹는 부족들 가운데 하나인 캐나다 남부의 휴런족에게 식인 풍습은 자신의 부족의 힘을 과시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붙잡은 포로 중 하나를 제물로 고른다. 그리고 족장이 직접 부채질을 해주고 몸도 씻겨주는 등, 귀빈처럼 대하며 정성껏 보살핀다. 그 포로에게 죽을 날짜를 미리 알려주고 그를 위해 연회도 개최한다. 연회에서 포로는 모두를 향해, 자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함께 춤추며 노래해야 한다.
그날 밤, 제물이 될 포로는 가혹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저마다 손에 횃불을 들고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청년들 사이를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다. 포로가 횃불 사이를 달려가는 동안 청년들이 와와 소리지르며 횃불로 포로의 몸을 지진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가까스로 숨만 붙은 포로는 날이 밝으면 마지막 마무리로 목이 싹둑 잘려나간다. 그날 사람들은 그의 살을 먹으며 성대한 연회를 펼친다.
뉴기니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기미족은 부족의 남자가 죽으면 우선 시체를 대나무 받침대 위에 눕힌다. 그러면 집안 여자들이 시체 주위에 모여들어 시체를 어루만지거나 볼을 비빈다. 때로는 자기 가슴을 치며 몇시간이나 통곡하기도 한다. 이윽고 그 슬픔이 절정에 달하면, 여자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남자의 시체를 마구 뜯어먹는다. 그 부족은 여자만이 시체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3.
카니발리즘이라 하면 현대의 식인귀 보카사(1921-1996)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건국자의 조카로 태어나,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군의 식민지 부대에서 복무했다. 고국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독립하자 곧바로 귀국해서 1963년에 최고사령관으로 취임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쿠데타로 다코 정권을 몰아내고 공화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1976년에는 자신을 보카사 1세라고 칭하며 아프리카 역사에 길이 남을 성별식을 감행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때 로마 교황에게 대관식을 의뢰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6천 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왕관과 80만 개에 달하는 진주로 장식한 예복, 하얀 담비 모피와 금실과 장식한 벨벳을 두르고 성대한 의식을 거행했다. 인구가 불과 300만 명인 가난한 나라에서 200대의 고급 승용차와 근위병이 타는 200마리의 말, 200대의 BMW 오토바이, 그리고 영국 엘리자베스 여황의 것을 모방해서 만든 마차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9년 5월에 교복착용에 반대하는 학생들 수백 명을 학살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 일로 그는 프랑스로 망명하지만 1986년에 다시 귀국했다. 그리고 곧바로 체포되어 살인과 고문과 식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재판과정에서 그가 자행한 식인 사실이 잇따라 밝혀졌다. 수도 방기 외곽지역에 있는 그의 저택 중 한 곳에서 네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중 두 구는 팔다리가 없었고, 다른 한 구는 배가 갈라져 있었다.
세계의 언론들이 일제히 그를 주목했다. 각국의 특파원이 방기 거리로 몰려갔다. 그들의 질문을 받은 중앙아프리카 국민은 하나같이 똑같은 증언을 했다. 토막난 사체는 분명 보카사가 먹기 위해 보관하고 있던 것이라고. 모두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죽음이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궁전에서 동물들을 돌보던 수의사가 법정에 소환되었다. 그는 궁전에서 기르는 악어와 원숭이들 틈에서 기이한 사체를 목격했는데, 피부가 벗겨져 뼈와 근육이 드러난 그 사체는 분명 인간의 것이었다고 한다.
그 공화국의 수석 조종사였던 잭 다로도 이렇게 증언했다.
"보카사는 음모혐의로 투옥된 만다바 장군을 살찌워 잡아먹었습니다. 장군의 독방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진수성찬이 운반되었습니다. 다른 죄수들에게는 경단 한 개와 정어리 통조림 하나가 전부였는데, 장군에게는 야채와 기름진 음식들을 주었습니다. 1979년 2월, 장군이 처형된 뒤에야 왜 그를 그렇게 살찌웠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경비대장의 말에 따르면, 보카사는 바나나와 토마토를 넣고 끓인 요리를 만들어 회의가 끝난 뒤 모든 각료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식사 도중에 '지금 먹는 게 뭔지 아나? 만디바 장군이라네.'라며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보카사의 요리사는 인육을 조리한 충격으로 두 다리가 마비되었다. 그는 부축을 받으며 증언대에 올라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렇게 증언했다.
"보카사는 집에 있는 냉장고를 열라고 했습니다. 그가 냉장고에서 꺼내라고 한 것은 인간의 시체였습니다. 저는 그 몸통에 쌀과 빵을 채워 넣고 오븐에 넣었습니다. 그것을 식탁에 올려놓자, 보카사는 팔과 다리부터 먹기 시작했습니다."
정권 말기에 접어들면서 그런 연회가 더 빈번해졌다고 한다. 결국 보카사는 1987년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새로운 대통령 콜링바가 그를 사면해, 1993년에 석방되었다. 그 뒤로 프랑스군이 지급하는 연금으로 검소하게 은둔생활을 하다가 사망했다. 중앙아프리카 정부는 그가 사망하자 예전에 높은 지위에 있었다는 이유로 국장까지 치러주었다고 한다.
4.
1973년 주세페 클라베로라는 한 이탈리아 신부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삶은 사람 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59년경 브라질의 네그로 강 유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때 원주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축제에 참여했을 때 삶은 사람 고기를 대접받았는데 매우 맛있었다고 했다.
한 번은 신부 자신이 끓는 물에 들어갈 뻔한 적도 있었다. 네그로 강에 빠져 정신을 잃었을 때, 그를 끌어낸 원주민들이 죽었다고 여겨 삶아먹으려고 한 것이다. 다행히도 솥에 들어가기 전에 의식을 되찾아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가 전해준 원주민이 좋아하는 사람 고기 요리법은 다음과 같다.
일단 사람 고기를 오랫동안 푹 삶아서 살을 발라먹은 후 뼈를 잘게 빻는다. 새알의 노른자와 바나나를 물과 함께 섞은 다음, 그것에다 뼛가루를 잘 섞어 냄비에 팔팔 끓인다. 국물이 걸쭉해지면 맛있게 먹는다.
5.
카니발리즘에는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 어떤 부족은 사람을 단숨에 죽이지만, 어떤 부족은 꼬챙이에 꿰거나 네 부분 혹은 여덟 부분으로 자르는 등 되도록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해체한다.
페루의 원주민 중 한 부족은 포로를 알몸으로 만들어 나무에 묶는다. 그리고 칼을 들고 온몸에서 살점을 도려낸다. 배와 엉덩이, 허벅지 등 살이 많은 부분의 살점을 먼저 도려내는 것이다. 그 작업이 끝나면 부족의 남녀노소 모두 함께 이 상처투성이인 포로를 습격한다. 손과 입을 피로 물들이며 아직 살아있는 포로의 살을 뜯어먹는 것이다.
여자들은 포로의 피를 자신의 젖꼭지에 발라 갓난아이에게 먹였다고 하니,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일까?
6.
존 롤런드는 영국의 유명한 탐험가다.
그가 적도 근처의 아프리카에서 카누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창과 검은 방패를 들고 머리에 날개장식을 단 원주민들이 양쪽 기슭에서 그의 일행을 공격했다.
"우리는 친구다!"
통역이 그렇게 소리치자 그들이 대답했다.
"어림없는 소리! 우리는 너희를 잡아먹을 것이다!"
귀를 찢을 듯한 북과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앞이 날렵한 카누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이윽고 원주민들이 롤런드 일행을 향해 창을 던지며 소리쳤다.
"오오오! 고기다! 오오오! 고기다! 오오오!"
나중에 롤런드는 그때의 공포를 이렇게 기록했다.
"그때는 악몽을 꾸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이 세상에 나와 동료를 고기로밖에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니...!"
7.
우방기 강 유역에서는 희한한 광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손발이 묶여 긴 나무 막대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나 가축으로 팔려 끌려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손님들은 그 사람을 꼼꼼히 뜯어본 다음 "나는 이 부분을 줘." "나는 이 부분, 이쪽이 살이 많은 것 같아." "나는 이 부분이 맛있을 것 같아."라고 미리 자신이 원하는 부위를 말한다.
그러면 장사꾼은 손님들의 요청에 따라 그의 몸 위에 표시를 해나간다.
그러다 전부 팔리면 드디어 부위 별로 잘라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첫댓글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무섭다..정말로
으
헐....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건 문화적 차이가 절대 아님..
가장 최근의 식인마는 겁나 잘살다 갔구먼 꽁기하다ㅠ
헐.....
사람이 맛있다구? 흐어엉엉 아 미치겠다ㅠㅠㅠㅠㅠㅠㅠ
헐.......
캐나다에 남부가 어디있어... 캐나다 남부 얘기 듣고 지어낸 이야기 같은 느낌 팍 들어서 짜게 식음....
캐나다 온타리오 남부 세인트 로렌스강 유역이라네
온타리아는 캐나다 남동부에 있는 주
나 온타리오 주 사는데 남부라눈 얘기 생전 첨 들어봐서..ㅋㅋㅋㅋ 보통 동부라 그러지 남부라고는 안하거든 ㅎ휴런족인가 저 얘기도 첨 들어봤고 그래서 그랬쩡ㅎㅎ
그랭? 검색해보니 캐나다 이름이 휴런족 언어에서 기원했다넹.. 포로를 식인했다는 얘기도 찾아보면 나오니까 뻥은 아니야 ㅋㅋㅋ
Huron은 온타리오 지명에 자주 쓰이기는 함 ㅋㅋ 부족이름인지는 몰랐네!!
아.. 어떻게 먹을 생각을 할까?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