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가을비 내리던 날
2023년 9월 16일 토요일
음력 癸卯年 팔월 초이튿날
날씨가 참으로 얄궂고 지랄 맞다.
장마철도 아닌데 벌써 며칠째 추적거리고 있다.
오늘은 물론이고 내일까지 내릴 것이란 예보다.
가을장마인가?
일을 벌려놓고 시작은 했지만 비로 인해 진행이
안되어 괜시리 마음이 답답해 들락날락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너무나 성급한 성격 탓이지 싶다.
"느긋하게, 여유롭게, 느리게, 천천히 살자" 라고
다짐을 하곤 하면서 그저 생각일 뿐이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앞서나가는 것이 문제이다.
어차피 비가 내리는 날은 하늘이 인정한 농부의
쉬는 날이 아니던가?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엔
조용히, 편안한 마음으로 푹 쉬며 혹시 답답하면
밭에 나가 농작물이나 살피는 것으로 소일한다.
익어가는 고추가 걱정이지만 반면 가을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 마음을 놓는다.
아내는 붉은고추를 말리느라 연신 오르락내리락
하며 열심이다. 다른 농가들은 대용량 건조기로
말리지만 우리는 파는 농사가 아닌 자급자족하는
농사라서 건조기 용량이 적은 가정용 소형이다.
그래서 한꺼번에 많이 말릴 수가 없어 여러번에
걸쳐 나눠 말린다. 붉은고추를 건조기에 한번에
넣어 말려도 나오는 건 한꺼번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아내는 또 일일이 확인하여 꺼낸다.
마치 감별사가 감별을 하듯이 손이 참 많이 간다.
밭에서 고추를 기르는 것은 촌부가 정성을 쏟고,
붉은고추를 수확하는 것에서 말리는 과정까지는
하나하나 아내가 정성을 들여서 마무리를 한다.
말린 고추 색깔도 정말 예쁘게 잘 나온다. 아내가
정성을 들인 결과이다. 우리네 식생활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되는 고춧가루, 이 고춧가루를 먹기
까지는 농부의 정성어린 손길이 있어야만 한다.
그 어떤 농사도 모두 다 마찬가지겠지만 이렇게
고추농사도 꽤나 힘든 일이라고 여겨진다.
점심무렵 건조기를 살펴보고 온 아내가 하는 말,
"비도 오는데 점심에 칼국수를 끓일까, 수제비를
끓일까? 아님 간단히 라면을 끓일까?"라고 했다.
"당신 편한 걸로 해라! 나는 아무거나 괜찮다!"
라고 했다. 주방에 가더니 쭈물닥거리는 소리가
들려 뭘하나 했더니 우리밀 밀가루로 수제비를
끓여야겠다며 반죽을 하고 있었다. 괜시리 잘못
대답을 했구나 싶었다. 말린 고추 선별을 하느라
힘든데 간단히 라면을 먹자고 할 것을 애매하게
대답해 고생을 시키고 말았다. 아내가 웃으면서,
"비오는 날엔 수제비가 제격이잖아?"라고 했다.
"그렇긴 한데 당신이 고생을 하니까 좀 그러네."
라고 멋쩍게 말했다. "여보시오! 괜찮소이다!"
라고 말하는 아내를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고, 참 고마운 마음이라서...
아내가 정성을 다해 반죽하여 끓여준 수제비를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반죽을 참 잘하여 얇고
매끈매끈하고 쫀득쫀득한 것이 수제비의 진수를
보여준 아내 솜씨에 감탄하며 먹었더니 하는 말,
"그만해라! 맛있게 잘 먹으면 됐다!"라고 했다.
♧카페지기 박종선 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첫댓글 비오는날의
호박 수제비맛이 느껴 집니다.
하루 하루 변화되는 산촌의 날들이 풍성 합니다.
여러분의 기원으로 건강해지리라 믿습니다
감사 합니다
이렇게 일기를 쓰는 것도
마음 한켠 아픔이 숨어있습니다.
오래전 광고회사에서 함께하며
형님, 아우 했었는데...
부디 하루빨리 우리들의 곁으로
돌아와 예전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손 모아 빕니다.
반갑잖은 가을비가 내리지만
좋은 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오늘 점심 메뉴는
쫀득한 수제비로
정해야겠습니다.
별미가 될듯합니다.
덕분에~~ㅎㅎ
흐린 날씨지만
편안한 주말되세요.
어떻게
수제비는 드셨는지요?
예전에는 먹기싫을 정도로
먹었던 끼니였지요.
허나 이젠 별미로 먹으니...
반갑잖은 가을비가
벌써 여러날 이어집니다.
늘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