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 선단여의 전설
이인호 기자
아틀라스뉴스 기사 승인 2022.05.14. 07:27
바실 홀을 따라서⑤…선갑도는 분화구 모양의 화산도
옛날 덕적군도에 망구할매가 살았다. 하루는 망구할매가 치마폭에 흙을 가득 담고 선접산을 쌓다가 산이 그만 무너졌다. 망구할매가 화가 나서 무너진 흙을 주먹으로 쳐서 산산히 흩어져 섬들이 되었다. 그 중 하나가 각흘도이고, 또다른 하나가 바위섬 선단여다. 여(礖)는 돌바위를 말한다.
망구할매는 이 선단여를 평소에 오줌 누는 봇돌로 사용했는데, 이 오줌 덕에 덕적군도의 바다가 마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망구할매의 키가 어찌나 컸던지 서해 바다가 할매의 무릎에 겨우 찰 정도였다. 할매가 첨벙첨벙 바다 위를 걸어 다니다가 수심이 깊은 풍도골에서 놀다가 일어나 보니 웃에 새우가 가득찼다고 한다.
덕적군도의 망구할매는 제주도의 선문대할망, 지리산의 마고할미처럼 우리나라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마고할미 또는 마귀할멈과 궤를 같이 하는 여신이라 할 수 있다.
선단여에는 또 다른 전설이 내려온다. 덕적도에서 멀리 떨어진 백아도에 노부부와 남매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노부부가 함께 죽게 되었다. 그러자 인근 외딴 섬에 살던 마귀할멈이 여동생을 납치해 데리고 갔다.
세월이 흘러 오라비는 조각배를 타고 낚시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어떤 섬에 닿았는데, 그곳에서 어여쁜 쳐녀를 발견하게 되었다. 둘은 서로 남매 사이인 줄 모르고 사랑하게 되었다. 하늘나라 선녀가 이를 알고 둘 사이가 남매지간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남매는 선녀의 말을 믿지 않고 부부가 되겠다고 고집했다. 하늘은 천둥과 번개를 쳐서 이들을 죽이고, 이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마귀할멈도 죽여버린다. 그후 그곳에 세 개의 바위가 우뚝 솟았는데, 오빠바위, 누이바위, 할미바위라고 한다.
남매에게 사랑을 경고한 선녀는 너무 안타까워 붉은 눈물을 흘리며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바위를 선녀단이라고 하다가 선단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선단여는 굴업도 남쪽 4km 해상에 있다.
굴업도는 인천에서 서남쪽으로 90km, 덕적도에서 남서 13km 바깥 쪽 해상에 있다. 면적 1.7㎢, 해안선길이 13.9km, 최고봉은 122m의 덕물산이다. 굴업도에 해수욕장이 있는데, 길이 800m, 폭 40m의 고운 모래 해변이 있고, 작은 해변 2개가 더 있다. 우리나라 유인도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섬으로 꼽힌다. 굴업도는 최근 섬 일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섬의 보존과 개발이 이슈가 되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선갑도는 약 9,000만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된 화산암으로, 최고봉인 선갑산은 해발 352m다. 섬의 서쪽 안쪽은 작은 만이 위치하는데, 이 만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분화구인데 방조제로 막아 양식업을 하고 있다. 이 섬은 선갑도 부대라는 육군 특수부대가 주둔하기도 했으나, 1974년에 철수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울도는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71km에 있으며, 면적 2.06㎢, 해안선 길이 12.7km, 최고점은 220m이다. 모섬인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23km 해상에 위치하고 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숲이 울창하게 우겨져 있는 섬이라고 해서 울도(鬱島)라고 표기되었다. 주민들은 울섬이라고 부르는데, 섬의 생김새가 울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러헥 부른다고 한다. 기암들이 많은 아름다운 섬이다.
인천 섬을 가다 47 - 해상관광자원 활용가치 무진장한 덕적군도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경기신문 기사 등록 : 2021.10.07. 08:36:0515면
덕적군도는 경기만 남부에 위치한 덕적도를 비롯한 유인섬 8개과 무인섬 33개로 이뤄져 있는데, 이곳에는 해양설화로 다음과 같은 ‘망구할매'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거인인 망구할매가 한양(서울)으로 보낼 삼각산(북한산)을 만들려고 문갑도 남쪽 선갑도에 100개의 골짜기가 있는 산을 쌓아 올렸는데 만든 뒤 세어보니 한 골짜기가 부족하자 화가 난 망구할매는 산을 내려쳤고 이 흙이 흩어져 문갑도, 울도, 백아도, 지도, 각흘도, 선단여 등의 섬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덕적도, 소야도, 문갑도, 선미도를 제외한 모든 덕적군도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화산진, 화산재, 화산력, 화산암괴 등이 쌓여서 생긴 화산쇄설암(응회암, 집괴암 등)으로 구성돼 있다.
문갑도의 북쪽, 서쪽, 남쪽 면은 고도가 높고 경사가 급하지만 동쪽은 다소 경사가 완만해 마을이 발달돼 있다. 문갑도는 중생대 트라이아스 말에 형성된 흑운모화강암과 이를 관입한 암맥으로 구성돼 있는데 동쪽해안에는 절리를 따라 침식돼 돌탑을 세워 놓은 것처럼 보이는 토르가 발달돼 있다. 문갑도의 최고봉인 깃대봉에서 남서쪽으로 바다를 바라보면 섬섬옥수의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굴업도는 두 개의 섬(동섬, 서섬)이 목기미사주로 연결돼 하나의 섬이 됐다. 동섬에는 연평산과 덕물산이 있어 경사도가 비교적 심하고 소사나무와 소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나, 서섬에는 완만한 구릉의 초원으로 이뤄진 개머리언덕이 자리 잡고 있어 백패킹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굴업도는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활동으로 생긴 화산재, 화산력, 화산암괴 등이 퇴적돼 생긴 집괴암과 응회암과 이를 관입한 적자색의 화강반암, 백색의 석영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마을 앞 해수욕장 동편에 있는 소굴업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해식와가 발달돼 있다.
백아도의 남쪽과 북쪽 해안에는 경사가 급한 해안절벽과 해식애가 발달돼 있으며 북동해안에는 주상절리가 해식작용을 받아 형성된 토르와 절리가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와 유사한 기차바위가, 남서쪽에는 스테고사우루스와 등뼈처럼 보이는 남봉능선이 있다.
백아도는 중생대 백악기말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화산재 등이 퇴적돼 만들어진 응회암과 집괴암으로 구성돼 있다.
지도는 섬 중앙에 연못이 있어 못섬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지도란 이름을 갖게 됐다. 지도는 옹진군에서 가장 작은 유인섬으로, 마을 뒤에는 풍력발전소와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돼 전력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탄소제로의 섬이다.
남서단의 민가 주변을 제외하고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마을 뒤편 해안에는 크고 작은 응회암 자갈로 구성된 자갈마당이 발달돼 있다.
울도는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23km 떨어져 있으며 북서쪽에서 동남쪽으로 길게 뻗은 모양으로 대부분 구릉성 산지로 이뤄져 있고 해안은 대체로 암석 해안이다.
일제 강점기 때 울도 어장은 동해의 청진어장과 함께 2대 어장으로 1940~50년대 젓새우 파시가 열렸던 곳이다. 울도 마을 남서쪽에 있는 당산에는 뱃길을 안내하는 울도 등대가 있는데, 이곳에 올라가면 덕적군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다.
선갑도의 항공사진을 살펴보면 서쪽 해안에는 화산의 분화구처럼 움푹 들어간 만을 볼 수 있는데 만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용결응회암이다. 이 용결응회암 속에는 흑요석이 포함돼 있고 4각형이나 5각형 단면을 보인 주상절리가 발달돼 있다.
이밖에 덕적군도에는 낭각흘도 시-아치, 가도 곰바위, 가도 코끼리섬, 선단여 등의 대표적인 지형이 있다. 덕적도 도우선착장을 출발해 문갑도 남쪽해안에 발달된 토르, 각흘도의 시아치, 가도 곰바위, 소굴업도 해식와, 선단여, 백아도 할망바위와 기차바위, 울도와 지도 주변 작은 무인섬들이 만들어낸 비경, 선갑도 서쪽해안의 발달된 주상절리 등은 해상관광으로 좋은 자원들이다.
또 덕적군도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비교적 좋아 당일코스의 해상관광이 가능하다. 덕적군도의 비경을 구경할 수 있는 섬섬옥수 해상관광 활성화를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인 방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김기룡·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장
인천 섬을 가다 12 - 덕적군도(1) 소야 선미 문갑 굴업도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경기신문 기사 등록 : 2020.12.23 09:40:14
덕적군도는 행정구역상 덕적면에 속하는 섬으로 덕적도를 비롯해 7개의 유인섬(소야도, 선미도, 문갑도, 굴업도, 백아도, 지도, 울도)과 34개의 무인섬으로 구성돼 있다. 덕적군도의 소중한 유산을 3회에 걸쳐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첫 번째로 소야도, 선미도, 문갑도, 굴업도의 유산을 찾아 함께 떠나 보자.
덕적군도에는 서해의 대표적인 해양설화인 '망구할매'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거인인 망구할매가 한양(서울)으로 보낼 삼각산(북한산)을 만들려고 문갑도 남쪽 선갑도에 100개의 골짜기가 있는 산을 쌓아 올렸는데, 만든 뒤 세어보니 한 골짜기가 부족하자 화가 난 망구할매가 산을 내려쳤고 이 흙이 흩어져 문갑도, 울도, 백아도, 지도, 각흘도, 선단여 등의 섬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문갑도를 제외한 모든 섬들이 화산활동에 따른 화산진, 화산재, 화산력, 화산암괴 등이 쌓여서 생긴 화산쇄설암류(응회암, 집괴암 등)로 구성돼 있다.
소야도는 덕적도와 큰 갯골(도깡)을 사이에 두고 남동쪽으로 500m의 거리에 있는 작은 섬으로, ‘소야’란 이름은 신라 무열왕 때 당나라 소정방이 신라와 함께 연합군을 편성,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13만의 정벌군을 이끌고 이 섬에 머물렀던 데서 유래됐다고 전한다.
소야도의 대표적인 자연유산으로는 북동부 해안의 암초열인 갓섬-간뎃섬-송곳여-물푸레섬으로 이어지는 일명 ‘모세의 기적’으로 알려진 육계사주이다. 육계사주란 만조 때는 독립된 섬이지만 간조 때는 모래와 자갈 등으로 본섬이나 내륙과 연결돼 걸어갈 수 있는 지형을 말한다.
소야도는 예로부터 사람이 거주하기에 매우 좋았던 지역으로 여겨졌다. 역사적으로 보면 신석기시대부터 삶의 흔적이 발견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패총(貝塚)이며 주로 굴 껍질로 이뤄져 있다.
덕적-소야대교의 공사장 주변(나루개 지역) 유적 발굴 조사 결과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해 화살촉 등 간석기(마제석기)가 다수 출토됐고 저장시설과 화덕자리 등도 발견됐다.
선미도는 덕적도 북서쪽에 있는 능동자갈 마당 앞에 있는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에 위치한 유인등대인 선미도등대가 있다. 선미도는 고생대에 퇴적돼 형성된 퇴적기원 변성암과 덕적도 능동자갈마당을 구성하고 있는 중생대의 덕적층으로 형성돼 있다.
문갑도는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3㎞ 지점에 있으며 덕적도 도우선착장에서 내려 덕적군도(문갑도, 굴업도, 백아도, 울도, 지도)를 순환하는 화물여객선을 타야 한다. 문갑이란 명칭은 섬의 형태가 책상의 문갑과 같다고 해 붙여졌다.
문갑도는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에 형성된 흑운모화강암과 이를 관입한 석영맥으로 구성돼 있는데 해안가에 노출돼 있는 암석에는 염풍화작용으로 생성된 아름다운 풍화혈(타포니)이 많다.
문갑도는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새우가 엄청나게 많이 잡히던 섬으로 새우젓을 담는 독을 짓는 공장이 두 곳이나 있었고 늘 배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고 하나, 지금은 북동쪽 한월리 해변 근처 야산에서 독을 만들었던 가마터 흔적만 발견된다.
굴업도는 제주도 비양도, 강원도 선자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백패킹의 성지로 알려진 섬으로, 굴업이란 이름은 섬의 형태가 사람이 허리를 굽혀 일하는 모습과 같아 붙여졌다고 한다. 굴업도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화산재, 화산력, 화산암괴 등이 퇴적되면서 형성된 집괴암과 응회암, 또 이를 관입해 냉각돼 형성된 적자색 화강반암과 백색 석영맥 등이다.
굴업도의 대표적인 자연유산으로는 목기미사주의 북동쪽 해안에 있는 코끼리 모양의 시-스택인 코끼리바위와 소굴업도 동쪽해안에 자리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해식와다. 해식와란 해안가 절벽이 파도에 의해 침식돼 생긴 작은 동굴이 수평방향으로 이어진 특이한 해안 침식지형이다.
김기룡·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장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2] 옹진군의 설화(說話)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경인일보 발행일 2015-08-13 제9면
입에서 입으로 돌고 돌던 전설
섬마을이 품은 이야기 보따리
설화(說話)를 알면 섬이 더욱 더 재미 있어진다. 설화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담이나 전설을 일컫는다. 글이 아니라 말로 전하는 ‘구전문학’이기 때문에 전승자의 기억에 따라 한 가지 이야기에도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설화에는 당시 생활상이나 풍습이 반영돼 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 지역은 내륙보다 비교적 설화가 많이 남아 있으며, 설화의 원형도 잘 보전돼 있다. 옹진군은 인천 내륙의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해5도인 연평도를 비롯해 옹진군 전역에서 어업의 신으로 떠받드는 임경업 장군 설화가 있고, 백령도가 주요 무대 중 하나인 심청 설화가 있다. 대청도에는 원나라 황제인 순제(順帝·1320~1370)가 유년시절 귀양살이를 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각 섬의 특정 장소나 지명에 얽힌 이야기도 많아서 설화를 알고 현장을 찾아가면 색다른 재미도 누릴 수 있다. 앞으로 옹진군 섬을 찾는다면 오래된 가게에 들러 주인장에게 섬에서 전해지고 있는 오래된 이야기 하나쯤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업의 신 임경업 장군
조선 중기 명장 ‘조기잡이 시초’ 신으로 모셔
연평도 안목어장 ‘어살’ 40개 설치 전통 조업
우리나라가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중기 명장이었던 임경업(林慶業·1594~1646) 장군 설화는 연평도에서 시작됐지만, 옹진군 전역은 물론 충남 태안반도까지 널리 퍼져있다.
병자호란 패전 직후, 의주 부윤이던 임경업 장군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임 장군은 상인으로 위장해 중국에 잠입하기로 했고,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뱃길 중간에 있는 연평도에 정박했다. 식량과 식수 등을 구하기 위해서다.
연평도 조기잡이 배 선원으로 일했던 노창식(76) 씨는 “이 대목에서 어떤 사람은 겁을 먹은 선원들이 임경업 장군이 구출작전을 포기하게 하려고 몰래 식량과 식수를 바다에 버렸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풍랑을 만나는 바람에 식량이 몽땅 떠내려갔다고도 한다”고 말했다.
식량이 필요했던 임 장군은 안목이라 불리는 연평도 앞바다에 물이 빠졌을 때 부하를 시켜서 가시나무를 촘촘히 박도록 했다. 바닷물이 안목에 들어왔다가 나가자, 가시나무에는 황금빛 조기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연평도 안목어장에는 임 장군이 가르쳐 줬다는 방식대로 ‘어살’ 40여 개가 설치돼 전통 방식의 조업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는 조선 초 이미 연평도에서 조기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임경업 장군을 조기잡이 시초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섬 주민들은 임경업 장군을 조기잡이의 시초라 여기고 사당을 지어 풍어를 기원하는 신으로 모셨다.
임경업 장군 설화는 옹진군 다른 섬에도 남아있다. 자월도에는 ‘팔선녀 뿌리’라고 부르는 포구가 있다. 1640년 4월 임경업 장군이 청의 요구로 전선 120척에 수군 6천여 명을 이끌고 명·청 전쟁에 참전하러 가는 도중 자월도에 들렀는데, 섬 주민들이 어여쁜 여자 8명을 뽑아 포구에 나란히 서서 임 장군을 환영했다는 것이다.
#심청과 백령도
백령도 두무진-北황해도 장산곶 사이 ‘인당수’
심청전의 근원 ‘인신공희’ 설화 여러편 전해져
백령도에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전소설인 ‘심청전’과 관련한 설화가 많다. 백령도 두무진과 북한 황해도 장산곶 사이에 있는 물살이 센 바다가 바로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져버린 ‘인당수’라고 불렸다. 심청이 연꽃을 타고 조류에 밀려온 장소가 ‘연화리’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는 게 백령도 주민들의 얘기다.
옹진군은 심청 설화를 바탕으로 1999년 백령도 진촌리에 심청각을 건립했고, 가천문화재단이 ‘효녀 심청 동상’을 제작해 기증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가천문화재단은 ‘현대판 심청’을 찾는 심청효행대상을 매년 공모해 선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은 시인이 백령도와 심청을 소재로 쓴 ‘백령도에 와서’ 시비가 심청각에 세워졌다.
설화 연구자들은 이들 지역이 심청 설화가 탄생한 지역인지, 아니면 소설 심청전을 토대로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소설 심청전의 근원설화 중 하나인 인신공희(人身供犧) 설화가 백령도에서 여러 편 전해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게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삼국시대 백령도의 옛 이름인 곡도(鵠島)를 배경으로 한 ‘거타지 설화’다.
거타지는 신라 진성여왕 때 왕자인 양패(良貝)가 이끄는 당나라 사신단을 호위하기 위한 궁사 50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사신단은 당나라에 가는 도중 곡도(백령도)에서 풍랑을 만나 꼼짝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날 밤 양패가 꾼 꿈에 나타난 노인이 활을 잘 쏘는 사람 한 명을 섬에 남겨두고 떠나면 배가 순풍을 얻는다고 했고, 제비뽑기를 통해 거타지가 남겨지게 됐다. 곡도에 남겨진 거타지는 서해의 신인 노인을 도와 사람의 간을 빼먹는 늙은 여우를 처단하고, 그 보답으로 노인 부부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다.
옹진군 설화를 채록하고 연구한 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거타지 설화는 심청전 후반부와 기본 골격이 유사하다”며 “백령도는 신라 이래로 중국과 왕래하는 항로의 중간 기착지라는 지리적 위치도 심청설화 전승이 많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섬 이야기들
덕적군도, 선단요 등 바위 연관된 얘기가 다수
대청도 유배 원 순제, 드라마 ‘기황후’ 유명세
굵직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옹진군 섬마을 곳곳에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덕적군도는 바위와 관련한 전설이 많다. 굴업도 인근에 있는 선단여는 덕적군도에 살던 망구할매가 오줌을 누는 봇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망구할매는 바다와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이자 덕적군도 탄생 설화의 주인공이다.
소야도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우뚝 솟아있는 장사바위는 덕적도에서 제일가는 장사가 바닷가에서 굴을 따던 여인의 뱃속에 잉태된 또 다른 장사가 될 아기를 보고 너무 놀라 선 채로 굳어진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덕적도 진리에 있는 선돌바위는 척박한 땅을 열심히 일궈 부자가 된 농부 이야기가 서려 있다.
1230년대 몽골군 침입으로 고려가 개성에서 강화도로 천도하자, 많은 강화 토박이들이 장봉도로 건너왔다는 얘기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강화도에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고, 귀족들이 땅을 차지하는 바람에 토박이들이 못 살겠다며 장봉도로 떠난 것이다. 이 시기 장봉도에서는 원주민보다 많은 강화도 사람들의 위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대청도에 유배 온 원 순제 설화는 TV 드라마 ‘기황후’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계모인 황후의 미움을 사 고려의 외딴 섬으로 쫓겨온 원 순제는 자신을 없애버리려는 계략에 두 눈을 잃었지만, 결국 시력을 되찾고 황제에 오른다는 이야기다.
대청도에는 옥죽포(玉竹浦)·고주동(庫柱洞) 등 원 순제와 관련한 지명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가 머물던 궁궐터는 현재 대청초등학교 자리라고 전해진다.
남동걸 상임연구위원은 “설화는 당시 시대의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라며 “특히 고립된 지역인 섬은 설화의 원형이 잘 보전돼 있지만, 최근 자연스러운 전승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다”고 말했다.
옹진군 선단여 위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