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단 사건으로 13년 복역,
反국가단체 한통련 간부,
진보당 새 국회의원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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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헌씨, 일본 출신으로 서울대 의대 본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75년,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13년간 복역한 뒤 89년 일본으로 추방됐던 인물이다. 日本에서 이적단체 범민련해외본부 사무처장 지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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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15일 조총련 후쿠오카 지부에서 강연하는 강종헌씨를 다룬 모 언론 기사 캡쳐 사진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처리 과정에서 간첩단 사건으로 징역13년을 살고 나와 최근까지 反國家團體(반국가단체) 및 利敵團體(이적단체) 간부로 활동해 온 인물이 비례대표 당선자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는 5일 공동대표 4인 및 경선을 통해 뽑힌 비례대표 당선자·후보자 14명을 총사퇴시킨다는 권고안을 결의하였다. 이 권고안이 확정되면 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소위 전략공천된 정진후·김제남·박원석·서기호·강종헌씨 등 5명으로 결정된다. 이들 가운데 강종헌씨는 북한정권을 추종해온 반국가단체 한통련과 이적단체 범민련해외본부 간부 출신이다. 강 씨는 韓國국적을 보유해 온 재일교포로, 진보당은 그의 직함을 “한국문제연구소 대표, 범민련해외본부 사무처장, 한통련 조국통일위원장”으로 홈페이지에 소개해 놓았다. 그는 최근 한국문제연구소 대표로 활동했으나 노무현 정권 당시 海外 친북인사 국내입국을 추진했던 소위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 명단에는 한통련·범민련 간부로 이름이 나온다. 강 씨가 활동해 온 한통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이렇다.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은 반국가단체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약칭 ‘한민통’)의 일본본부의 구성원들이 1989년 2월12일 이를 발전적으로 개편하여 그 명칭만을 바꾼 것에 불과한 ‘한통련’ 역시 반국가단체에 해당한다(1990.9.11. 90도1333)” 현재까지 이 판례는 유지되고 있으며, 한통련 現職 간부는 한국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지난 해 12월21일 한통련 의장 손마행(60)이 외교통상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여권발급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한통련은 반국가단체이며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죄는 2년 이상 형에 해당하므로 여권 발급 거부는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또 “손 씨는 수차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장군님을 받들어 통일 위업을 완성하자’는 등의 구호가 제창된 행사에 참석했다”고 판시했다. 강 씨가 활동해 온 범민련해외본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이렇다. “범민련해외본부는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집단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소위 이적단체)에 해당함은 분명하다(···)범민련 또는 그 산하단체의 구성이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고 있었다(1996. 12.23. 96도2673)” 범민련해외본부에 대한 판결 역시 유지되고 있다. 강 씨는 일본에서 6·15-10·4선언 이행 및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앞장서왔다. 예컨대 그는 2008년 10월28일 일본 도쿄 토론회에서 “보안법과 통일문제는 양립할 수 없다”며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해 잃어버린 10년 얘기를 했지만 그보다는 남북관계가 꽉 막히고 오히려 국가보안법이 활개 치는 현 정부의 잃어버린 10개월이 더 문제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은 강제로 끄고 대북 삐라 살포는 용인하는 정부”라고 비난했다(통일뉴스 재인용). 일본 출신인 강 씨는 서울대 의대 본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75년,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13년간 복역한 뒤 89년 일본으로 추방됐던 인물이다. 강종헌씨는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신청, 작년에 받아들여져 법원에 계류중이다. *조선닷컴은 <하지만 당권파가 전국운영위원회는 비례대표 후보를 사퇴시킬 권한이 없다고 반발하고 있어, 이번 권고안이 실현될지는 미지수이다>라고 보도하였다. 당권파와 비당권파는 12일 열릴 당 중앙위원회에서 쇄신안을 둘러싸고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천호선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강령·당헌·당규 제·개정과 비대위 인준을 위한 중앙위원회를 오는 12일에 개최한다"며 "중앙위원회에 제출될 안건을 심의하기 위해 다음 주 전국운영위를 다시 한 번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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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06, 0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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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 2012-05-07 오전 8:23 |
이런 빨갱이를 사형 선고를 내렸으면 사형을 하여야지 왜 출소하여 시끄럽도록하고 있나, 또한 일본으로 추방했으면 영원히 대한민국에 오지 못하도록하여야 할것이지 지금 비례대표자로 선출하여 국회에 보내 어떻게 할것인가. 아이구 답답하구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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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cks 2012-05-07 오전 3:44 |
평양의 노동당과 정찰총국의 대변지 역할을 하는 "민족21"의 정창현(*이 者도 왕재산간첩단사건 연루혐의가 있다)이 강종헌의 재심청구를 계기로 康을 띄우는 기사를 썼다(2012.01.01자). 정창현과 강종헌은 재심청구 자체를 "재일동포유학생간첩단사건"을 완전한 조작으로 몰아가는 작전에 이용하고 있지만, 이번 "통진당 사태"로 알 수 있듯이 從北(종북)들은 물증이 있어도 끝끝내 부인하는 부류들이다. 하지만 종북세력들이 우기고 조작하면 할 수록, 평양의 김씨왕조가 무너질 때(내일이라도 무너질 수 있다!) 從北들이 입을 상처는 더 커진다. 그러니 차라리 지금 "自首해서 光明 찾는게" 낫다. 대구교도소에 함께 있었던 김하기(소설가)도 강종헌, 이철(재일한국인 양심수동우회 대표) 등과 교도소 내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이미 진술했다. 특히 가증스러운 것은, 강종헌은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 내놓고 "수령님의 혁명전사"로 열심히 활동한 점이다. 한국내 종북 총본산인 민노당=통진당의 비례대표(*'戰略공천'으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강종헌이 바로 從北의 원조인 조총련과 조총련의 졸개인 한통련에서 평양의 지령을 수행(범민련 해외본부)해 온 실적이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이정희가 주사파의 마돈나로 키워진 것 처럼, 강종헌은 反국가단체인 조총련과 한통련의 "서울 주재원"으로 명령 받은 것은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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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登 2012-05-06 오후 10:59 |
이런 빨갱이들을 의법 처단하지 않고 그냥 놔둔 이명박은 비난받아 마땅하며, 만일 3년 이내 북한이 무너지지 않으면 그 책임의 33% 이상은 그에게 있고, 나머지 66%는 죽은 김대중과 자살한 노무현에 있다고 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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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바위 2012-05-06 오전 7:45 |
온통 빨갱이들만 구더기처럼 득실거리는 당입니다. 전략공천된 판사새끼빅엿도 국회에 들어가게 생겼군요 | | =========================================================================================== |
끝까지 버티는 진보당 김재연의 正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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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파조직 한총련 대의원 출신 |
 |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파문 관련, 비례대표 3번 김재연 당선자가 6일 사퇴를 공식 거부했다. 金당선자는 진보당의 청년비례대표 경선에서 ‘해적녀’로 유명한 김지윤 후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온라인 투표의 서버 로그파일(접속기록)을 누군가가 두 번에 걸쳐 손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金당선자는 이날 오후 4시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아와 “나는 합법적이고 당당하다. 청년 비례 사퇴를 권고한 전국운영위 결정은 철회돼야 한다”며 사퇴를 정면 거부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재연 당선자는 한총련 대의원(2002년 10기) 출신이다. 金당선자는 4월10일 한국대학신문(http://news.unn.net/)인터뷰에서 “학교 안에서 3년 간 수배자 생활을 했다”며 “‘한총련 탈퇴서’를 쓰지 않을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자가 되는 시절이었다. 나는 한총련은 잘못한 것이 없는 단체라고 판단했다. 그 단체를 통해서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金당선자가 “사회정의 실현단체”로 표현한 한총련은 북한 對南적화노선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다 1998년 利敵團體(이적단체)로 판시된다. 한총련은 온갖 이슈가 터질 때마다 不法폭동을 이끌며 김정일 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자임해왔다. 예컨대 2003년 8월7일 한총련 소속 12명은 “미군 스트라이커 부대의 국내 훈련 반대”를 명목으로 경기 포천군 美8군 종합사격장에 기습 진입, 장갑차를 점거했다. 이날 이들은 미군의 성조기를 빼앗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총련은 2005년 9월11일 인천 자유공원 내 맥아더 동상 파괴 기도에 가담하는가 하면 2005년 5월15일 다른 反美단체들과 함께 광주 공군전투비행단 정문 앞 철조망을 뜯어내고 진입을 시도했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단대 촛불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2009년 7월 77일간의 쌍용자동차 공장점거 농성에도 가세했다. 대법원은 “한총련은 북한의 主體思想(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설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해 왔다(2004도 3212)”고 판시한 바 있다. 한총련 의장은 김정일 찬양구호인 “결사옹위”를 혈서로 써 지니고 다니다 입건되기도 했었다(2003도 604). 당시 대법원은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북한의 김정일 찬양구호인 ‘수령결사옹위’에서 인용한 ‘결사옹위’라는 문구를 가로 114cm, 세로 89cm의 흰 천에 혈서를 써 한총련 의장에게 선물한 뒤, 한총련 의장이 이를 소지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한총련은 김일성이 사망했던 1994년 7월 ‘김일성 선전 지침서’에서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였던 외교전 등의 위엄스런 業績(업적)에 대해 선전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김일성이 일으킨 6·25에 대해서 “통일을 위한 미국과 한민족의 전쟁이므로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적었다. 한총련 출신이 간첩 행각을 벌이다 구속된 사례도 많다. 지난 해 10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부장 배준현)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간첩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한총련 前간부 김모(36·여)씨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金씨는 2005년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해 “수령님의 유훈인 조국통일을 위해 일꾼이 되겠다”는 방명록을 작성하고, 국내 각 대학 총학생회 성향을 분석한 ‘한국대학생연합 현황’ 문건 등을 작성해 북한에 전달한 혐의로 2010년 11월 불구속 기소됐었다. 김재연 당선자의 남편인 최호현(38)씨는 결혼한 지 1년여 만인 작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자본주의연구회’라는 단체를 조직해 2008년 9월부터 김일성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및 ‘주체사상에 대하여’ 등 이적표현물 90여건을 소지하고 주변에 이를 나눠준 혐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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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07, 05:59 ]
양상록수 2012-05-07 오후 1:18 |
빨갱이 정권 10년에 우리나라 여러 분야에 赤化가 되었습니다. 요런, 년 놈들 나이의 빨갱이 돌대가리들이 무사할 줄 알지만, 조만간, 머리 깨뜨리고 죽을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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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으로 컴백한
'親盧그룹'과 '전대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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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당 의원 중 44명이 親盧인사, 김태년-이인영 등 전대협 출신 다수 당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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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이른바 <6월 항쟁>에 참여했던 이인영 의원(괄호 안)과 우상호 의원의 모습. 전대협 1기 지도부가 모 대학 집회에 참석해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를 부르고 있다. |
■ 親盧그룹은 민주통합당(민통당) 창당 과정에서 黨權을 거머쥐고, 이번 19대 총선을 통해 당내 최대 계파가 됐다. 18대 국회에서 민통당의 親盧그룹은 10명 안팎이었다. 그러나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127명의 민통당 의원 가운데 44명이 親盧인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44명의 親盧인사 가운데 25명 정도가 핵심 인물로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이해찬 상임고문, 한명숙 前 대표, 문희상·신기남·이용섭 의원 등이다.
親盧초선 그룹에는 김현, 박남춘, 전해철, 윤후덕, 서영교 당선자 등이 포함된다. 親盧그룹과 가까운 親정세균계도 강기정, 전병헌, 이미경, 최재성 의원 등이 모두 당선됐다.
19대 총선에서 민통당에 합류한 左派단체 출신 인사들도 親盧 후원그룹으로 분류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대위 대변인을 맡았던 송호창 당선자와 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의 김기식 당선자, YMCA 사무총장 출신의 이학영 당선자 등이 이들 그룹에 포함된다.
■ 親盧그룹과 더불어 노무현 정권의 주요 인맥이었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출신 운동권 세력도 대거 국회로 진출했다. 19대 총선 전대협 출신 당선자는 김태년, 이인영, 임수경, 오영식, 우상호, 정청래, 최재성, 박홍근 등이다.
전대협은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평화협정체결-연방제통일이라는 북한의 對南노선을 추종하다, 1992년·1993년 핵심부서인 ‘정책위원회’ 등이 利敵團體(이적단체) 판정을 받았다.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前身)의 전대협 수사결과에 따르면 전대협은 主思派(주사파) 지하조직에 장악되어 있었다.〈主思派에 장악된 전대협의 실체 수사결과〉,〈전대협 유인물과 북한방송 대비분석〉,〈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전대협의 조직실체〉등의 공안문건들은 전대협의 실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전대협은 87년과 88년 전국사상투쟁위원회와 反美청년회의 배후조종을 받은 데 이어 89~90년에는 ‘자주·민주·통일그룹’(自民統)의 배후조종을 받아왔고, 91년 이후에는 반제청년동맹, 조통그룹 등 主思派지하조직에 장악됐었다…(중략) 전대협은 항상 김일성과 한민전(북한의 對南선전매체)을 추종하는 지하혁명 조직에 의해 움직여 왔다.》
특히〈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문건의 경우 이인영, 오영식 등 과거 전대협 1기, 2기 의장들이 모두 主思派 지하조직원이라고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87년 5월 전대협 제1기가 결성된 이후 1991년 6월 현재 전대협 제5기에 이르기까지 역대 전대협 의장은 모두 主思派 지하혁명 조직에서 파견한 지하 핵심조직원임이 그 동안의 조사과정에서 드러났음. 전대협 제1기 의장 이인영은 1986년 12월 고려대 중심 主體思想 신봉자들이 결성한 主思派 지하조직 전국사상투쟁위원회(전사투위)가 전대협 의장 감으로 사전물색,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시킨 후 의장에 당선시킨 자이고, 전대협 제2기 의장 오영식은 1988년 1월20일 主思派 지하조직 反美청년회 출신이며, 전대협 제3기, 제4기, 제5기 의장 임종석, 송갑석(전남대), 김종식(한양대) 등도 主思派 지하조직 자주·민주·통일그룹(자민통)이 전국 학생운동을 주도, 장악하기 위해 전대협에 침투시킨 지하조직원들이었음》
전대협의 주체사상 추종은 전향 主思派 지식인들에 의해서도 잇따라 제기되어 왔다.
反美청년회 핵심멤버였던 姜吉模(강길모)씨는 “전대협은 主思派에 장악됐던 것이 아니라 主思派가 만든 것이 전대협이며, 主思派가 아닌 전대협 간부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과거 공안사건은 99.9% 사실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증거가 아닌 자백에 의존하려다 보니 고문이나 가혹행위가 빈번하게 이뤄졌고, 이것이 ‘조작설’의 빌미가 되곤 했다. 主思派 운동권에서 北공작원을 만나는 일은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북과 직접 커넥션이 있다는 것은 운동권 내에서 자신의 권위와 서열을 단번에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
反帝(반제)청년동맹 등에서 활동했던 (사)시대정신 이사 홍진표 씨는 “1980년대 이후 학생운동 지도부는 주사파가 장악했다. ‘주사파는 극소수 학생만이 추종했던 이념’이라는 전대협 출신들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2004년 10월 <월간조선>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主思派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전대협, 한총련 등을 조직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소위 김일성 원전을 읽고 한민전을 청취하며 북한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 주사파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김일성과 김정일을 진심으로 추앙했다.” 전대협 連帶(연대)사업국장(연사국장) 출신으로 주사파에서 전향한 이동호 前 북한민주화포럼 사무국장은 “전대협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했으며, 한민전의 투쟁방침을 따랐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학생운동그룹은 1987년 反美청년회·조국통일그룹·관악자주파 등을 결성했고, 이 과정에서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같은 해 8월 전대협을 건설했다.
전대협을 통해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反美청년회 등은 모두 한민전 지침아래 주체사상과 북한식 투쟁노선으로 무장했다. 反美청년회 등은 自派(자파)출신을 총학생회장에 당선시키거나 활동가를 전대협 내부에 침투시켜 자신들의 지도를 관철시켜왔다. 大衆조직인 전대협은 합법조직을 지향, 사상이나 투쟁노선을 大衆的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전대협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그룹에 의해서 지도됐기 때문에 그들의 노선과 자료 등 곳곳에서 주체사상과 투쟁노선이 나타나 있다.”
■ 전대협의 이 같은 從北노선을 입증이라도 하듯 민통당의 김태년, 오영식, 우상호, 이인영, 정청래, 최재성 당선자들은 열린우리당(민통당의 前身) 의원시절인 2004년 10월20일 국가보안법 폐지안에 모두 서명했었다.
이들 전대협 출신 당선자들과 함께 당시 국보법 폐지안에 서명했던 인사들로는 신기남, 양승조, 우윤근, 유기홍, 유승희, 강기정, 강창일, 김영주, 김재윤, 전병헌, 조정식, 윤호중, 이미경, 이상민, 이석현, 김춘진, 김현미, 노웅래, 민병두, 최규성, 최재천, 한명숙, 노영민, 문병호, 윤호중으로 이들 모두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진보당(舊민노당) 19대 총선 당선자로 당시 국보법 폐지안에 서명했던 정치인은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다.
■ 전대협 출신의 이인영, 오영식, 우상호와 함께 민통당 19대 국회의원 당선자인 강창일, 이목희, 이상민, 문병호, 정청래는 2007년 대표적 從北단체인 한국진보연대 등이 주도한 간첩·빨치산 추모제(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 추모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던 인물들이다.
당시 행사에 소개된 열사 가운데 상당수는 건국 이후 간첩-빨치산 활동으로 추모대상에는 남파 간첩 출신의 금재성·김도한·김남식·신창길·왕영안·윤용기·진태윤·최백근·최남규·최인정, 빨치산 출신의 권양섭·김광길·김병인·김용성·김현순·류낙진·박판수·손윤규·안상운·윤기남·장광명·정대철·정순덕·주명순 등 共産(공산)혁명가들이 포함됐다.
행사장 전시물은 남파간첩 출신과 빨치산 출신들을 가리켜 ‘동지’와 ‘열사’로 호칭하며, 각각 “통일조국을 위한 사업을 위해 남한에 파견”, “조국통일투쟁에 전념하시다” 등으로 미화했었다. 진보당 19대 총선 당선자로는 노회찬, 심상정이 당시 행사에 추모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관련기사] 박원순 캠프에서 활동 중인
'公安사건연루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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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대변인·이인영 선대본부장(2011년 11월10일자 보도) |
박원순 汎(범)좌파 서울시장 후보의 캠프 대변인으로 활동 중인 우상호 前민주당 의원과 선대본부장인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전대협’ 출신의 ‘부여간첩사건’ 연루자들이다.
■ ‘부여간첩사건’은 1995년 충남 부여에서 발생한 무장간첩사건으로 이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장진희-나경주 경사가 殉職(순직)했다.
당시 권총과 독총 등을 소지했던 간첩 김동식·박광남(노동당 사회문화부 소속)은 같은 해 8월 남파간첩을 帶同越北(대동월북)하라는 임무를 띠고 강화도를 경유해 남한에 침투, 국내 운동권 인사들에 대한 포섭을 시도했다.
당시 이들의 침투경로를 조사했던 軍警(군경) 합동작전본부는 “김동식·박광남은 8월29일 오후 잠수정으로 안내원 2명과 함께 황해도 해주를 출발, 강화도 건평리 해안에 도착했으며 강화도 온수리고개 부근 야산에 최초 잠입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1995년 10월24일 軍警 수사망에 포착·검거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 박광남은 병원으로 후송 치료 중 사망하고 김동식은 생포됐다. 이와 관련, 안기부(국정원 전신)는 1995년 12월8일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이 사건의 전모를 공개했다.
당시 안기부는 “김동식은 1990년 5월 처음 남파되어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으로 암약하고 있던 최고위급 남파간첩 이선실과 고정간첩 황인오를 대동해 越北(월북)했던 자”라고 설명했다.
[주: 이선실(북한 권력서열 22위·2000년 사망)은 1980년 3월~1990년 10월까지 10년 이상을 서울·전주·안양 등지에서 숨어 지내면서 남파 공작원 10여명을 수하에 거느리고 대남공작을 총지휘해온 간첩이다. 제주도 출신으로 이선화, 이옥녀 등의 가명을 사용해온 이선실은 1980년 이전에도 1966년과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남파됐다. 1978년에는 일본 내 親北단체인 ‘조총련’ 모국방문단의 일원으로 입국하기도 한 베테랑 공작원 이선실은 80년 신순녀라는 이름으로 입국한 뒤로는 운동권 일각에서 “일제 때 독립운동을 했고, 제주 4·3사태 희생자의 유족이며, 아들이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실종된 할머니”, “평생 홀로 지내며 삯바느질과 식당 경영으로 모은 재산을 민주화운동에 쓰는 노인네” 등으로 알려져 있었다.]
김동식은 1995년 8월 박광남과 함께 再(재)침투해 이인영(당시 전대협 동우회장), 우상호(당시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허인회(前고려대 총학생회장), 함운경(2004년 열린당 공천 총선 출마) 등을 만나 “함께 통일운동을 하자”면서 포섭을 企圖(기도)했다.
이들은 김동식과 접촉하고도 그 사실을 當局(당국)에 알리지 않아 국보법 상 不告知罪(불고지죄)로 구속됐다.(現박원순 선거캠프 우상호 대변인은 당시 구속적부심사 후 석방) 허인회는 ‘접촉시점이 달라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요지로 김동식과의 접촉을 부인했다.
당시 이인영과 우상호는 ‘(김동식이) 미친 사람처럼 보여 신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주장해 처벌을 면했다. 허인회는 혐의가 일부 인정돼 구속됐다.(注: 허인회는 98년 2월27일 대법원 형사2부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음.)
안기부는 ‘부여간첩사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북한공작조직이 ‘혁명2세대’ 출신들을 엄선하여 철저한 以南化(이남화) 교육을 통해 남한 환경에 익숙한 ‘새 세대 공작원’을 양성·남파했다. 국내 운동권 사이에 ‘주체사상’이 만연해 있는 반면, 국민들의 안보 경각심이 해이해진 현상에 고무되어 포섭대상으로 선정한 운동권 인물들에게 북한 공작원이라고 밝히는 대담하고 과감한 공작전술 구사했다.”
■ 이인영과 우상호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1992년 대법에서 利敵(이적)단체로 판정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적단체 ‘한총련’의 전신) 출신이다.
당시 법원은 92도1244, 92도1211, 93도1730 등의 판례를 통해 ‘전대협의 노선을 결정하는 ‘정책위원회’는 북한이 주장해온 민족해방인민민주의혁명(NLPDR)에 따라 우리 사회를 美제국주의식민지로, 우리 정권을 親美예속파쇼정권을 규정하는 전제 하에 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 현정권타도,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등을 주장하는 이적단체임’을 밝혔다.
‘전대협’의 노선을 결정한 ‘정책위원회’는 主體思想에 확고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성돼 회의 때는 북한의 對南통일혁명전위기구인 ‘한민전’에 충성할 것을 결의하고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서’ 등을 수행해왔다.
‘전대협’ 산하 조직인 ‘反美청년회’에서 활동했던 강길모 뉴스라이브(前프리존뉴스) 편집인은 2006년 9월20일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세미나’에서 “反美청년회는 고려대 조혁이 총책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역은 바로 본인이었다”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폭로했었다.
“나는 88년 화공약품으로 사제폭탄을 만든 후 구국결사대를 만들어 서울 美문화원에 들여보냈다. 지금은 노무현 정권의 실세 역할을 하고 있는 많은 후배들을 직접 가르쳤다. 우상호·오영식 열린당 의원, 김만수 前청와대 대변인, 이은희 前청와대 제2부속실장, 여택수 前대통령제1부속실 행정관…(중략)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찬양했다. 88년 1월에는 전국 대학운동지도책들을 모아놓고 88년을 ‘조국통일 元年(원년)’으로 삼겠다면서 KAL기 조작사건을 비롯해 ‘조국통일의 모든 장애를 척결하는데 학생대중을 총동원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내가 내린 명령은 북한의 對南선전매체 ‘한민전’이 내린 지령이었다.”
(출처: 2006년 9월21일자 김성욱 프리랜서 기자 보도 인용, 제목: 「어느 주사파의 용기 있는 고백」)
강 편집인은 11일부터 박원순 선거캠프의 특보를 맡게 된 김기식(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에 대해서도 “학생운동을 정리하며 가장 애써 키운 친구가 김기식”이라고 밝힌 뒤, “문제는 아직도 같이 운동했던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上同)
한편, 우상호 박원순 캠프 대변인은 북한의 核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20일 김근태, 천정배, 이미경, 원혜영, 이계안, 이목희 등의 인사들과 함께 개성공단을 방문했었다. 당시 김근태 는 현지에서 가진 오찬 중 북한 접대원들과 소위 ‘춤판’을 벌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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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07, 13: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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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록수 2012-05-07 오후 2:18 |
특정지역이라 해도 뛰어난 인물들이 있지요. 그러나, 함 보세요. 요즘 사회를 뒤집어 놓고 있는 저축은행, 이거, 누가 은행이라는 명칭을 만들어 준겁니까. 그리고,, 부산저축은행은 광주일고 쓰레기들이 작당을 해서 수 조원을 쓰레기로 만든 사건,그리고 이번 솔로몬을 비롯한 저축은행 문제들,,, 수 조원의 국민세금을 한줌의 재로 만든 종자들인 겁니다. 이런 종자들이 수입쇠고기 사건, 천안함,연평도 포격,,, 한결같이 북괴놈들 하고 같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까,,?? 상것뜰!! 이런 것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봐야 옳은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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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록수 2012-05-07 오후 1:59 |
이런 빨갱이들을 밀어주는 특정지역의 종자들이 문젭니다. 암만 얘기해 봐야, 아무런 쓸모없는 스토리,,!! 공동묘지 옆에 두고, 죽을 때 까지 밥상머리 헛소리로 애들을 쇄뇌시킬텐데,,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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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가 국회의원이란 단어를 알고는있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생각을 하는지, 돈은 얼마나 벌고 쓰는지, 선거 공약이 가능한 것인지, 우린 선거때 알고나 도장을 찍는지... 다만 우매한 국민은 달콤한 소리에 목마름을 달래고 싶을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