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관(사제관) 12인연관(연기관)의 수행을 통하지 않고 아라한이 될 수 없다
탐욕을 닦지 않고 탐진치 삼독을 닦지 않고
아라한이 된다는 그런 일은 없어요. 아시죠? 우리 불교는 그래요.
삼독 번뇌를 뿌리뽑지 않고, 사제법 연기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러니까 그 공부법입니다. 위빠사나에 사제관이 있어요.
또 12인연관도 있고 사념처관도 있습니다.
그러한 공부, 그러한 수행을 하지 않고 아라한이 될 수 없는 거예요.
정법문중은 그럽니다.
다른 공부를 했다고 하면, 이건 외도 공부예요.
유가(儒家)에서도 도가(道家)에서도, 장자(莊子) 정도 보세요. 노자(老子) 보세요.
노자는 크~게 견성했지요. 크~게 깨친 분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사제법이라든지 인연법 연기법 등
그 수행을 통하지 않은 분들이라. 그래서 다르지요.
사실 선불교의 간화선도 아닙니다.
사제법 연기관법의 수행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사성제관(사제관) 12인연관(연기관)의 수행을 통하지 않고 아라한이 될 수 없는 거예요.
크게 깨친다면 외도하늘 정도의 수준은 되겠지요.
그러나 부처님 정법문중의 아라한은 아니어요. 여러분 그거 알아야 되요.
그리고 깨달았다, 견성했다, 도를 통했다, 공체험을 했다, 공성을 증득했다.
이것을 가지고는 해탈 열반에 들어가기에는 부족해요.
거듭 이야기합니다. 부족해요.
깨달아서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 모든 오욕에 대한 집착,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되요.
그래가지고 아라한이 되는 것인데,
거기에서 더~나아가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어야 돼.
그래야 지혜와 자비와 앞에서 말씀드린 그런 능력을 다~갖추게 되는데
그게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그런 목표점이어요.
오늘 사성제는 총설로 끝나겠네요.
각론은 이다음에 하기로 합니다.
출처:2013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