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현목의 시선
마석도와 김사부가 인기 끄는 시대
중앙일보 입력 2023.07.04영화 ‘범죄도시3’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시리즈가 ‘쌍천만’ 반열에 올랐다. 흥행의 일등 공신은 마석도(마동석)라는 주인공 형사 캐릭터다. 그가 나쁜 놈들을 때려잡을 때 객석에는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심리적 쾌감이 전달된다. 악랄한 범죄조직 보스, 연쇄 납치살해범, 마약상 부패경찰 등 상대가 누구든 마석도는 주먹 하나로 두들겨 패서 잡고야 만다.
마석도에게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민중의 몽둥이’다. 흉포한 범죄자의 인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실의 방’ 같은 선 넘는 취조도 서슴지 않는다. 벽돌깨기 하듯 범죄자들을 때려잡는 직진 수사본능에 관객들은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느끼고 아낌없는 환호를 보낸다.
‘범죄도시3’ ‘낭만닥터…’ 흥행
소명의식 빛나는 형사와 의사
지금 이곳이 얼마나 힘겹기에…
이유는 간단하다. 나약하고 무능한 공권력에 맺힌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주기 때문이다. 부실 수사의 고질적 원인인 미흡한 초동 대처, 흉기 앞에서 본분도 망각한 채 먼저 내빼는 경찰, 피해자 인권보다 범죄자 인권이 우선인 나라라는 뼈아픈 지적 등은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불안케 하는 공권력의 현주소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쌍천만 영화가 되고, 드라마 ‘모범택시’ 같은 사적 복수물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는 건 단순한 장르적 쾌감 때문만은 아닐 터다.
승진이나 출세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범죄자 체포에만 매진하는 마석도. 112 신고를 하면 마석도가 출동해줬으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범죄도시3’가 관객수를 늘려가는 동안, 안방에선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3’가 시청률은 물론 화제성까지 잡으며 의학드라마 시리즈로 안착했다. 마석도의 낭만이 나쁜 놈은 일단 ‘잡고’ 본다는 것이라면, 김사부(한석규)의 낭만은 환자는 무조건 ‘살리고’ 본다는 것이다.
남북회담을 진행 중인 당국이 정치적 이유로 탈북 총상 환자의 치료를 허락하지 않자, 김사부는 “그런 것까지 의사가 다 고려해야 하냐”며 팔을 걷어붙인다. 돈이 없어 수술을 주저하는 환자 보호자에겐 자신의 신용카드를 내민다. “일단 사람 목숨은 살리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그런 낭만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환자는 무조건 살리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의사의 소임임에도, 그걸 추구하는 게 낭만으로 치부되는 현실이다. 생명을 다루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전공의 지원자가 격감하고, 응급실과 수술실에 의사가 부족해 응급 환자가 길거리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내외산소’ 의사들끼리 우정을 나누며 환자를 자상하게 살피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는 이런 가혹한 현실에 비하면 판타지에 가깝다.
“산불만 재해가 아니다. 갈 병원이 없어서 길바닥을 헤매다 구급차 안에서 죽는 것도 재해다. 학교가 무너지고 병원이 사라지는 그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냐” “의사가 하는 일은 아픈 사람들 치료해주는 일이다. 시작도 끝도 그거여야 한다”는 김사부의 일침은 돈 되는 의술만 번창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
비현실적이다 못해 만화 속 인물 같은 마석도와 김사부 캐릭터에는 국민이 바라는 경찰과 의사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범죄자를 응징하는 강력한 경찰, 환자의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의사 말이다. 두 직업 모두 사람을 구하고, 살리는 직업이란 점에서 소명의식을 필요로 한다. 소명의식이 돈이나 영달에 밀려 점점 엷어지고 있는 세상이기에 마석도와 김사부 같은 가상 인물이 영웅이 되어, 우리에게 대리 만족과 함께 위로를 주고 있는 게 아닐까.
현실에 결핍된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를 채워줄 또 한 명의 영웅 캐릭터가 올 하반기 극장가에 등장한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의 이순신 장군(김윤석)이다. 김한민 감독이 연출하는 이순신 장군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순신 장군의 비장한 최후를 그리는 영화는 분명 이 어지러운 세상에 리더십이란 화두를 또다시 던져 놓을 것이다.
1편 ‘명량’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내는 불굴의 리더십을, 2편 ‘한산: 용의 출현’이 독려와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줬다면, ‘노량’의 이순신 장군은 진정한 리더십이 부재한 이 시대에 어떤 메시지로 세상을 일깨울까. 차디찬 노량의 바다에 자신을 내던져 나라와 백성을 구한 희생과 애민 정신이 아닐까 싶다.
민생은 나 몰라라 하고 정쟁과 편 가르기, 남 탓에만 몰두하는 정치가 백성들을 또다시 고통과 절망의 바다로 내몰고 있다. 충무공이 영화 속에서나마 독선과 혐오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 준엄한 꾸짖음을 내려줬으면 한다.
정현목중앙일보 문화부장
gojhm@joongang.co.kr
대중문화, 일본, 야구 그리고 사람들에 관심이 많은 저널리스트입니다.
속도보다는 방향, 출세는 못할지언정 꼰대는 되지 말자를 모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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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아버지 앞으로 달려 나온 아들. 자신을 떠나려는 아버지 앞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아들의 열정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의 피날레를 연주한다. 사실 이 부분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피날레 중에서도 결말로 몰아가는 에너지가 아주 강렬한 대목으로 유명하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울림과 독주 바이올린의 현란함이 교차하면서 음악을 절정으로 몰고 간다. 여기서 아들이 연주하는 격정적이고 화려한 차이콥스키의 선율은 그동안 아들을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치 않았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겪었던 쓸쓸한 소외감에 대한 화려하고 찬란한 보상이다.
이 영화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도 장대하고 화려한 결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차이콥스키의 음악이다. 그의 음악이 자칫 우울하게 끝날 영화에 힘을 실어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