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노래-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어머님 보고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의 증명
/고영민
나는 가난해서
당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께 가난을 밝히고
가난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저는 가난합니다
정말 가난합니다
도무지 가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했고
가난을 먹고
가난을 입고
가난의 얼굴을 물려받았습니다
가난은 나의 삶 자체이기에
나는 지금 나의 상황이 얼마나 절실한지
당신께 간곡히
말하는 중입니다
가난의 힘
/신현림
나를 바꿀 기회, 복권을 사 본 적도 없다
사내 냄새는 맡고 살아야지 하고는 일하다 잊었다
해를 담은 밥 한 그릇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쌀 한 줌은 눈송이처럼 얼마나 금세 사라지는지
살아가는 일은 매일 힘내는 일이었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생각이 깊어지지 않지만
내일은 힘들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일한다
온 힘을 다해 일하는 모습은 주변 풍경을 바꾼다
온 힘을 다해 노을이 지고 밤이 내리듯
온 힘을 다해 살아도 가난은 반복된다
가난의 힘은 그래도 살아가는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안도현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오직 한 움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늘 가슴 한 쪽이 비어 있어
거기에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사랑하는 이들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난한 새의 기도
/이해인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
서원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육체의 비만이 우리의 생활을 힘들게 하듯
영혼의 비만인 욕심과 집착이 우리의 영혼을 힘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