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은 중국 당나라 때 백장 회해(百丈懷海) 선사(749-814)가 한 말입니다.
회해 선사가 나이가 들어서도 쉼 없이 일을 하자, 선사가 노작을 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제자들이 선사가 일을 하지 못하도록 삽과 괭이를 숨겼다고 합니다.
그러자 선사가 아예 식사를 거부하면서 남긴 말이 '일일부작 일일불식'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않겠다고 한 선사의 일화가 이 '일일부작 일일불식'입니다
단양 광덕사 회주 혜인스님 법문
그 마음 가라앉혀 허공처럼 깨끗이 하라
단양 광덕사 회주 혜인스님
화엄경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만약에 사람이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할 것이요,잘못된 생각과 망상을 멀리하고 항상 모든 집착을 없애며 마음이 향한바를 항상 걸림없이 하면 바로 부처라 했습니다.
산처럼 높아져 있는 내 콧대 높여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모든것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나의 암안(暗眼)을 꺽기 전에는 어떤 불공을 하더라도 그 공을 받기가 어렵습니다.먼저 산처럼 높아져 있는 그 산을 뭉겨야 만이 그것이 밭이 되어 그곳에 곡식도 심고 나무도 가꿀 수 있습니다. 마음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자갈과 가시덤불을 다 치워내고 옥토를 만든 그 마음에 복덕과 지혜와 공덕의 종자를 뿌려야만이 진정한 기도의 마음가짐입니다.멀리 찾지 말고 마땅히 그 마음을 가라앉히고 뜻을 깨끗이 하기를 허공과 같이 만들라는 말입니다.
즉,부처가 되고 싶으면 마음을 허공과 같이 깨끗하게 비우고 잘못된 생각,잘못된 집착을 버리고 늘 내 생각 속에서 걸림없이 행동하고, 자신의 생각을 부처님 말씀,부처님 성품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어린시절,그러니까 열 다섯 살 때부터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중학교 시절 학생회로 출발해 결국 '이 길이구나' 하는 생각에 열 여섯에 계를 받아 중이 됐습니다.지금 제가육십 네 살이 됐으니까 꼭 사십팔년으로 오십년이 다 되어갑니다.저는 누가 뭐라해도 절 한번 하는 공덕,관세음보살 한번 부르는 공덕,나무아미타불 한번 부르는 공덕이 결코 허사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느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저는 강원도 산골 백원사라는 사찰에서 행자생활을 했는데 하루에 나무 여섯짐을 해야 점심을 주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 확실한 사찰에서 살았습니다.때문에 눈이 많이 와서 나무 못하는 날은 점심을 못 먹었는데 한참 먹을 나이라 그런지 동지섯달 긴긴 밤,배에서 꼬르륵 소리는 나는데 먹을 겉은 없고 할수없이 동치미 담궈놓은 김치라도 먹어서 배를 채울 정도로 고생을 했습니다.하루는 개울가에서 빨래를 한참하던 우리를 향해 공양주 보살이 바가지에 밥을 퍼와서는 "호랑이 주문진 내려갔으니까 빨리 먹어,빨리 퍼먹어"할 정도였습니다.그러면 우리는 반찬도 없이 그 밥을 허겁지겁 먹었습니다.그때 그 사찰의 공양주보살님이 보기에도 어린아이들이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에 그랬나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당시 청월 주지스님이 출타 하면 그날이 밥 먹는 날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밥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는 편지를 쓰려면 우표 살 돈이 있나 ,양말 한켤레 사 줄 사람이 있나,추운 겨울 입고 지낼 내복 한벌 사줄 사람이있나,정말 전생에 내가 복을 너무너무 못 지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어요.주머니에 있는 전재산,단돈 이백원이 아까워서 보름동안 밤 낮으로 걸어서 부산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간 기억도 있습니다.그렇지만 모두 지나고 보니 참 아름다운 추억 입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 나는 한평생 신도고뭐고 아무것도 없겠구나 싶었지만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서울 조계사 법당에서 큰 스님이 법문을 하시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나도 다음에 커서 꼭 저자리에서 법문 한번 해봤으면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소원이 어느새 이루어 졌습니다.
이 모든 힘이 어디에서 나와 이 소원이 이루어 졌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는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에서 하루 오천번씩 2백일 동안 코피를 냉수 마시듯 하면서 무릎이 곪을 때까지 백만 배를 해 부처님께 참회한 그 공덕이요,또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관세음보살을 이십년 동안 부른 공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극락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고향에 있는 것이요,참 부처,참 아미타불은 자기자성 입니다.그러니 내가 부처를 부르고,내 부처를 내가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니 항상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됩니다.모두 그 공덕인 것입니다.그 이후에는 발길 닿는 곳마다 좋은 일만 생겨납니다.관세음보살,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공덕이 참으로 크다는 것은 제가 평생을 중 노릇 해오면서 몸으로 직접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전생에 많이 닦지 못해 어렵고 박복한 신새라는 생각을 가졌던 제가 관새음보살을 부르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참선을 하고 염불을 하니 그 공덕 하나 하나가 모든 구름을 걷어 내고 밝은 태양이 비치듯 새롭게 피어납니다.
이 우주만물은 봄기운이라는 것이 있어 꽃피고 새 울고 얼음이 녹아 물을 만들 듯 관새음보살님의 가피력과 모든 부처님께 기도하는 힘이 바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부산백양산 선암사 벽화 (백장선사)
백장선사百丈禪師가 여우를 제도한 고사
백장선사가 하루는 법상에 올라 법을 설하셨다. 법상에서 내려온 후, 모든 사람은 다 일하러 갔으나, 오직 한 노인만이 가지 않았다. 백장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본래 사람이 아니고 여우입니다. 전생에는 본시 이곳의 조실이었습니다. 어느날 어떤 학인이 나에게, 크게 수행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 하고 묻기에, 나는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고 잘못 답했습니다. 이 대답으로 인해 나는 곧 축생으로 떨어져 5백년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아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청컨데 스님께서는 자비심으로 가르쳐 주십시오." 백장선사는 "그대가 나에게 물어보아라." 이 노인은 곧 물었다. "스님께 묻겠습니다. 크게 수행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 백장선사가 답하였다. "인과에 미매하지 않다.(不昧因果)"
이 노인은 이 한 마디의 말에 크게 깨달아 곧 절을 하고 이르기를 "이제 스님의 말을 듣고, 그로 인해 여우의 몸을 벗어 뒷산 바위 아래에 두니, 바라건데 스님께서는 중의 법도에 따라 장례를 치루어 주십시오" 그 이틀 뒤 백장선사는 뒷산 바위 아래 한 마리의 죽은 여우를 발견하고 승려의 장례법으로 그를 화장했다. 不落因果와 不昧因果의 한 글자의 차이가 이렇게 5백년 동안 여우의 몸으로 지내야 하니, 수도인의 한마디에 의한 인과의 과보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줍니다.
내용참조 : http://blog.naver.com/enlightenner/14001012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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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선사
중국 당(唐)나라 중기의 선승.으로 속성 왕(王). 휘 회해. 시호 대지(大智). 푸젠성[福建省] 출생. 백장산(百丈山)에 오래 머물러 백장선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각조(覺照) 또는 홍종묘행(弘宗妙行)이라는 별칭도 있다. 20세 때 서산(西山) 혜조(慧照)를 따라 출가, 그 후 남종선(南宗禪)의 도일(道一)에게 배워 깨달음을 얻고, 장시성[江西省] 대웅산(大雄山:백장산)에 자리를 정했다. 향존암(鄕尊庵:백장사)을 창건하여 선풍(禪風)을 일으키고, 선의 규범인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제정하여 교단의 조직이나 수도생활의 규칙 등을 성문화하였다. 그의 수도생활은 매우 준엄하여 “하루를 무위(無爲)로 지내면 그날은 굶는다”고 할 정도였다. 많은 제자가 그에게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황벽(黃檗) 희운(希雲)과 위산(山) 영우(靈祐) 두 사람은 걸물로서, 뒷날 이들의 계통에서 임제종(臨濟宗)과 위앙종(仰宗)이 시작되었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좋은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