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이명박 정부에 다행인 것들
/ 강종규 논설위원
1993년 봄 고교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스타는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한 TV프로에서 고교생 500명을 대상으로 정치인 연예인 운동선수 예술인 등 유명인들 가운데 '스타 중의 스타'라고 생각하는 인물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김 대통령이 인기 연예인을 제치고 예상외로 1위를 차지했다. 탤런트 최진실이 2위,농구선수 허재가 3위였고 4위 김원준(가수),5위 서태지(가수),6위 손지창(탤런트)순이었다. 취임 한달을 맞아 신문·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는 대부분 80%를 넘었다. 그는 짧은 1개월 동안 벼락치듯 개혁을 추진해 대선에서 얻은 42.0%의 지지율을 거의 두배로 끌어올린 것이다.
취임 한달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지지도는 50%내외다. 대선 득표율 48.7%와 큰 차이가 없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선 득표율을 훨씬 초과하는 지지율을 보인 것에 비하며 이례적이다. 당선직후 70%에 이르렀던 지지도가 '부자 내각', 인수위의 설익은 정책 남발과 공천갈등이 겹쳐지면서 어느새 50%로 떨어졌다. 역설적으로 참 다행이다 싶다. 어찌보면 절묘하기도 하다. '50%'는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지지도가 아니다. 주위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보약이다. 우리는 집권초기 높은 지지율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김영삼 전대통령의 5년을 통해 이미 확인했다.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은 세몰이식 개혁,지지도에 힘실린 독단적 국정운영은 법치가 아닌 인치(人治)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기억하기 조차 싫은 외환 위기가 '지지도 80%'의 마지막 모습이다.
지난 2004년 7월 한 부장판사의 판결 내용이 화제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 재판을 맡은 창원지법 형사합의 3부 최인석 부장 판사가 판결 직후 대통령 친인척의 몸가짐에 대해 3분여 동안 '훈계'를 한 것이다. 최 부장판사는 "대통령의 형이라는 지위 때문에 주변 사람이나 대통령조차도 피고인의 처신에 관해 쓴소리를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말씀 드리겠다"며 건평씨에게 3분여 동안 충고를 했다. 그는 "대통령 친인척이 폼내고 대접받으면서 지내면 결국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고,겸손과 인내와 은둔으로 살아가면 그 영광이 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형님공천'으로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불러왔다. 그 따가운 눈총들을 애써 외면해버려 아쉬움이 남지만 '친인척 문제'가 집권 한 달만에 불거져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친인척을 잘 관리하고 또한 친인척으로서 처신을 잘하라는 경고 메시지로는 역할을 충분히 한 셈이다. 더러는 '상왕정치'를 떠올리며,이 부의장이 국회에 입성하면 그의 힘이 전방위로 뻗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정반대일 가능성도 있다. 이번 공천 파문을 통해 친인척 문제가 확연하게 불거졌기 때문에 오히려 이 부의장 주변으로 사람과 청탁이 몰리는 일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역대 정권에는 대부분 '2인자'가 있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에는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을 , 김영삼 전대통령 시절에는 '소통령' 김현철씨를,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는 박지원 전 비서실장을 꼽는다. 이들은 대통령의 지근 거리에서 사심없이,혹은 거리낌없이 진언하는 긍정적 역할도 했으나 오히려 월권 시비와 함께 여권내 갈등을 일으키는 한 부분이었다. 이번 이재오-이상득측 갈등도 2인자 자리 다툼의 성격이라면 일찌감치 노출된 것이 차라리 낫다.이 대통령은 내부 갈등을 보면서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법을 내렸을 것이다. 집권 초기에 2인자 역할을 차단할 것이 분명하다.
악화일로의 경제상황과 정책 혼선까지 포함하면 이명박 정부출범 한달만에 불거질 수 있는 문제는 얼추 다 터진 셈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회의를 마무리하며 "너무 어려운 게 많다"고 말했다. 짧은 언급이었지만 취임 한달,당선 3개월에 관한 자신의 속내이다. 국정운영은 대기업 경영과는 다르고 서울시정과도 다르다. 새정부 유행어 중에 프렌드리,스페셜리스트,액션플랜 등이 있다고 한다. 스페셜리스트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국가경영엔 조정자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 그 새 정부 유행어에 컨트롤 타워도 포함됐으면 한다. 시스템 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이 국정이다. '시스템'을 대통령의 2인자 자리에 올려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겨우 한달이 지났을 뿐이다. 남은 4년 11월동안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철(前轍)은 한번으로 ?
繹槿求?jkang@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