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切 有 心 造 에 대한 통찰
宇寶 黃田
아침부터 까치 두 마리가 절 마당에서 요란스럽게 구역 다툼을 하고 있는데, 젊은 두 스님이 찾아왔다.
스승님과는 잘 아는 사이었다.
두 스님은 서로 법 거량을 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자 스승님을 찾아온 것 같았다.
“스님, 내가 오래전에 하안거를 혼자 보내고 싶어서 지리산에 있는, 빈 집을 하나 빌려서 공부를 하는데 어찌나 귀신들이 방해를 하는지 혼났습니다.
좌선을 하고 있으면 어깨에 올라앉기도 하고, 방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마당에서 발자국소리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내가 천수경을 읽으면 입을 비틀어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친구를 만나자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환상이라고 그러잖습니까? 나는 분명히 경험을 했는데...”
한 스님이 스승님께서 한마디 일러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허, 일체유심조도 모릅니까?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 귀신이든 마장이든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님 그렇지 않습니까?”
말 잘하는 입술을 가졌다는, 느낌을 주는 스님이 스승님께 물었다.
“내가 한 가지 스님에게 묻겠습니다.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스님의 조상님들도 돌아가셨으니 귀신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 조상귀신들에게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까?
스님의 마음이 만들어 낸 조상귀신들에게 가족들이 제사를 지낸다니, 약간의 모순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에 부모님을 스님마음이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면 스님은 마음이 만들어 낸 자식이 됩니다.
스님, 스님은 마음이 만들어 낸 자식입니까?”
스승님의 통쾌한 일갈에 스님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질수 없다는 의지의 얼굴을 하면서 스승님께 물었다.
“스님, 경전을 보면 <三界는 오직 有心이다>라고 부처님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욕계, 색계, 무색계가 모두 마음이 만들어 냈다는 말입니다.
스님은 일체의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는 단 말입니까?”
“경전에서 <삼계는 오직 유심이다.> 라고 한 것은 맞습니다. 스님, 내가 스님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삼계는 오직 유심이라고 했는데, 그 삼계를 만든
그 대단한 마음은 어떤 마음이며, 그 대단한 마음이 지금 스님의 어디에 존재하고 있습니까?”
스승님께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했는데 스님은 창백한 얼굴로 씩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스승님, 장난이 너무 심하셨습니다.”
“네 이놈, 내가 지금 법을 가지고 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스승님, 많은 사람들은 일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긍정을 하시면서도 또 부정을 하십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저는 스님들의 기를 꺾어 놓으려고 장난을 친줄 알았습니다. 스승님께서 장난을 친 것이 아니라면 일체유심조에 대한 법을 들려 주십시오.”
“이 일체유심조란 말이 어디에 나오느냐?”
“화엄경의 사구게 입니다.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이 일체유심조를 제대로 알려면 화엄경 사구게를 확실하게 뚫어야만 한다. 어떤 책에서 이 화엄경 사구게를 해석해 놓은 것을 보았는데 그 해석은 한문을 한글로 풀어놓은 것뿐이지, 화엄경 사구게 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수십 권이나 되는 화엄경의 핵심이 바로 이 사구게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 화엄경을 달달 외우고, 수십 년을 강의를 한다고 해도 이 사구게를 뚫지 못했다면 화엄경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가 없다.
너도 지금부터는 명심해야 할 것이야. 이 화엄경 사구게를 확실하게 뚫기 전에는 절대로 일체유심조란 말을 쓰지 말라.
알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함부로 쓰는 말이 아니다. 알겠느냐?”
“네 알겠습다. 스승님, 그렇다면 <삼계는 오직 유심이다.> 하고 <일체유심조 >하고는 다르다는 것입니까?”
“앞으로는 절대로 비교도 하지 말라. 내가 너를 위해 <삼계는 오직 유심이다.>라고 하는 법을 들려주마.
욕계, 색계, 무색계는 우리가 수행을 해서 증득한 그 경지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네가 수행을 해서 욕망을 벗어나면 욕계를 넘어서고, 네가 수행을 해서 눈에 보이는 색이, 색이 아닌 줄 알면 색계를 벗어나고, 네가 수행을 해서 너의 생각마저 벗어나면 무색계를 벗어난다.
자, 이 삼계를 벗어나게 한 것은 무엇이냐? 바로 너의 마음이다. 그래서 삼계를 담고 있는 너의 마음을 닦으라는 것이다.
그 마음을 닦아야만 삼계를 벗어 날 수 있는 것이다. 알았느냐?”
“스승님, 그렇다면 그 삼계를 담고 있는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세세생생 지어온 너의 업(業)이다. 마음이란 바로 그 업들의 대변자로 생각을 하면 된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마음이 세세생생 지어온 업의 대변자라 그 말씀입니까?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이해가 잘 안되면 참구를 해야지 그 참구하는 것이 공부가 아니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렇다면 원효 스님께서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깨달으신 일체유심조는 무엇입니까?”
“내 안목으로 보면 원효스님께서는 화엄경 도리인 일체유심조를 깨달으신 것이 아니라, 그 마음 작용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버린 것이다.
눈으로 보지 않고는 물을 맛있게 먹었는데, 다음 날 해골바가지 물이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뱃속에서 구토가 나오는 것이 마음 작용이라는 것을 아신 것이다.
원효스님께서 이 마음작용을 보고 깨달으신 것은 아니다. 바로 그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근본이 무엇인지를 알아버린 것이다. 그 근본이 바로 <삼계는 오직 유심>의 도리이다.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원효스님께서 해골바가지의 물을 먹게 된 것은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이고, 그 시절인연을 통해 <삼계가 오직 유심>이며 그 유심의 작용에 이끌리어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참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 마음 작용의 근본 도리를 참으로 알게 되는 순간, 원효스님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스님, 그렇다면, 원효스님께서 내면의 소리를 듣는 순간, 삼계 유심인 업이 일시에 소멸되었습니까?”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어찌 일시에 업이 소멸되겠느냐?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 業이 法으로 바뀌게 된다.
도인은 업이 법으로 바뀐 그 법을 쓰면서 자신의 業중생을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다.”
“스승님의 법문을 다 이해 할 수는 없으나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다른 의문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며칠 전에 불교 텔레비젼에서 어떤 큰 스님이 금강경 강의를 하면서 일체유심조를 설명하였습니다. 그 스님은 앞에 있는 책상을 주먹으로 탕탕 치면서 이 책상이 형상으로 눈에 보이기는 하나 마음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를 그 책상이 물질에서 원자, 미립자를 들먹이다가 결국에는 空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만들었다고 하며 이 마음이 바로 일체유심조라고 하였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이 법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그것은 그 스님의 안목을 가지고 법을 쓰기 때문에 내가 그 스님의 법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수 많은 스님들도 그 스님과 똑같은 법을 오랜 세월동안 설해 왔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러한 법을 듣고 그 법에 물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법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그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랜 세월 그 법에 안주를 하다 보니, 다른 견해를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불교는 물질을 추적해서 원자나 미립자를 발견하고 결국은 모든 물질이 결국에는 공이라고 알아가는 논리가 아니다.
그리고 금강경에서 말하는 공하고 물질의 공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또한, 금강경의 공 도리하고 반야심경의 공 도리하고도 다르다. 이렇게 다른 공 도리를 하나로 묽어서 쓸려고 하니 그런 법이 생겨난 것이다.
자,우리 한번 깊이 생각을 해보자.
책상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어디에 있지? 사람들에게 필요하니까,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져 지금 잘 쓰고 있잖아?
그런데,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상을 마음이 만들었다고 하면 너는 이해가 되느냐?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봐서 물질 원자 미립자까지 설명하면서 공 도리를 드러내는데 그건 좀 그렇다.
어떤 사람은 한 술 더 떠서 삼라만상을 마음이 만들었다는 사람도 보았다. 이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를 잘못해석해서 생긴 병폐이다.
모든 사물은 인연에 따라 스스로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스스로 사라진다. 마음이란 단지 눈에 보이면 인식을 하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인식작용에 불과한 것을 마음이 만들어 냈다고 한다면 안 된다.
경전을 보면 성주괴공(成主壞空)도리로 다 풀어 놓았잖느냐? 이 성주괴공도 마음이 만든 것이냐? 이해가 좀 되느냐?”
“스승님, 그 인식의 경계를 벗어나는 것이 <삼계는 오직 유심이다.> 에서 말하는 색계의 경계를 벗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 이제 네가 제법 이해를 했구나?”
“스승님, 그렇다면 이렇게 해석을 해도 됩니까? 인식의 경계를 벗어난 것이 색계의 경계를 벗어 난 것이고, 색계의 경계를 벗어 난 것을 다른 도리로 말을 하자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도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스승님, 그런 대답이 어디 있습니까?”
“네가 내 법을 듣고 그런 생각을 했으니 너의 그 생각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은 네 스스로 참구 하여라.”
“스승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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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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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유심(有心)아닌 유심(唯心) 즉 <있을유>아닌 <오로지유>입니다.. 착각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다원정님 감사합니다. 유(唯)가 맞는데 오자가 되어 있군요. 스님이 새벽에 글을 쓰시고 간단하게 교정한 다음에 올린거라 오자가 되었습니다. 다원정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참!! 어렵네요.... 공(空)에 대한 설명과 일체유심에 대한 법문을 연결해서 보시는 것은 좀 무리가 있는뜻 하네요...그러나!! 분명 우리중생에게는 인연따라 무지무지한 현상들이 우리를 덮치고 있지요!!! 나무아미타불()
맞습니다. 인연 따라 공부를 하다 보면 조금씩 올라가게 됩니다. 절도 하고, 사경도 하고, 염불도 하고, 천도도 하고, 경전도 읽고...... 그러다가 스승을 만나 더욱 더 진보하고.......
이 일체유심조에 대한 통찰의 뜻을 제대로 알려면 자신의 내면의 보리수 아래 좌정을 해야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이 통찰도 겨우 30프로정도 풀어 쓴 것입니다. 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