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진 중에서 아브라함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시작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이름 바로 전에는 아브람이고 했다. 열국의 아버지로 불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숭배자일 뿐만 아니라 우상을 만드는 제조업자이며 장사꾼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이유가 무엇일까?
창세기를 살펴보면 아브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가문이나 배경을 갖춘 인물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채석장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쓸모없는 돌멩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주 보잘 것 없는 돌멩이와 같은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손에서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내신 것이다.
아브람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된 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아주 신속하게 적용하는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열국의 아버지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보지도 않고 응답이 있니 없니 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이성과 의지와 감정으로 행동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아브람은 순종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이름을 바꿔주셨다. 이름이 바뀐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것과 동시에 사역이 바뀐 것을 의미하는 차원에서 이름을 허락하신 것이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한 것으로 자신의 자아를 정복하여 하나님의 사상과 동등하게 그리스도의 사상으로 개방하는 존재”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과거에는 하나님과 같은 위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함에 따라 하나님과 동등된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요, 열국의 아비(창 17:4) 하나님의 벗(약 2:23, 대하 20:7. 시 41:8) 하나님의 선지자(창 20:7) 하늘나라 방백(창 23:6) 주님(창 23:11)이라고 까지 성경 여러 군데에서 지칭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가문이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했느냐에 좌우된 것이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순종을 잘한 것이 아니다. 자기 아내를 애급 나라에게 팔아먹은 인간이다. 뼈 중에 뼈와 살 중에 살인 자신의 아내를 귀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누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애급 나라 왕에게 매매한 바가 있다. 여기서 바로라는 말은 왕을 지칭하는 단어이지 사람의 이름이 아닌 것을 명백하게 밝혀둔다.
아브라함이 애급 왕(바로)에게 넘겨준 것은 성경의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이 내용은 차후에 언급하기로 한다.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란 의미는 복음으로 하나가 된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자신 안에 하와와 같은 존재가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복음을 전달하지 못하면 아담과 하와와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
창세기 3장의 사건은 누구, 누가, 잘못한 것을 가려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건을 일어나게 된 원인분석을 올바르게 해야 할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아브라함이 애급 왕(바라, 히브리어 발음으로 파라오에게) 자신의 아내를 내준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을 차후에 밝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극적인 사명과 소명을 받자마자 일어난 사건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의 순종에 대한 결과인지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아브라함에 재앙이 임했다는 구절을 따라 추측한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강력하게 의존해야 되는데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한 것에 대한 징벌이다.
이와 모든 일 속에 하나님께 여쭤봐야 하는 기도인 것이다. 어떠한 결정을 할 때 반드시 하나님께 보고를 하고 난 뒤 결재를 받아야 한다. 자신의 일방적인 입장과 사정만을 아뢰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아브라함이 사명과 소명을 받자마자 행동으로 옮겨야 했던 것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려야만 했다.
예배라는 것은 거창하고 화려한 예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과 내 얼굴이 하나로 겹쳐지는 것이다. 영적인 키스를 하는 것이 예배라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 사건 이후 애급에서 나와서 벧엘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하늘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다. 이때부터 순종의 시작인 것이다.
순종의 본질과 원형은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께 상황을 아뢰고 거기에 합당하게 명령하시는 대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글을 쓰는 필자마저도 순간순간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의해 결정할 때가 자주 있다. 그러한 필자가 이러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올바른 판단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려고 한다.
그런데 창세기 20장에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또 팔아넘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아브라함은 순종을 잘할 때도 있었지만 자기 마음대로 하는 불순종의 삶도 있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순종을 잘하다가 불순종하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별 볼일 없는 인간 쓰레기와 같았지만 버려진 것을 재생산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분이 하나님이다.
아브라함과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창세기 22장에 가서 아브라함의 가장 중요한 아킬레스 끈인 아브라함의 아들을 바치라고 하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밤하늘을 바라보게 하시며 하늘에 떠 있는 별들처럼 자손을 많게 해주신다는 약속과 달리 소중한 자식을 바치라는 엄청난 요구를 하신다.
아브라함이 갖고 육신과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혼 속에 있어서는 안 되는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려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힘을 빼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를 판 것처럼 똑같이 이삭이 그랄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팔아버리는 전철을 밟아나갔다.(창세기 26장)
또한 한 끼 식사 때문에 야곱이 아비를 속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된 다. 왜 이러한 일들이 신앙의 영웅 속에 반복적으로 일어날까? 아니 당연히 일어나야만 한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데 못 느끼고 있을 뿐이다. 신앙의 반열에 들어섰던 아브라함과 이삭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졌다는 것이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나와서 에서를 만나기 전에 얍복 강나루에서 천사와 씨름한 것도 쓸데없는 힘을 갖고 있는 부분을 잘라내기 위한 하나님의 철저하신 계획이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신앙을 갖고 순종하기를 원하여 환골 뼈를 부러뜨렸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도 없이 그냥 성경을 읽어나고 있다.
환골 뼈는 하나님의 진리를 저장하는 장소를 의미하고 있는데 귀중한 것을 전달하기를 주저하는 야곱의 환골 뼈를 부러트려야 만이 복음을 올바르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되는 사명과 소명을 받은 우리들은 야곱처럼 한번이나 아니면 여러 번 환골 뼈가 부러진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필자도 고등학생 졸업하기 전 결핵성늑막염과 등에 곱사로 전환 병 척추 카레이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겨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기회가 있었으며 지금도 늑막염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 중에 있다. 하지만 순종의 도구로 사용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아래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이 순종과 믿음의 영웅이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올바르게 본받아야 한다.
세 족장의 모든 면을 연구한다고 순종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처럼 살아간다고 해서도 순종이 잘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만나고 그 분의 임재 아래 그 분과 함께 한 몸이 된 채로 살아가야만 한다. 세 족장의 사건이나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들을 만나야 할 것이다.
믿음의 조상이 될 수밖에 없는 아브라함은 저 멀리 단지 이스라엘의 한 사람으로만 여기지 말라. 내 안에서 발견되어져야 만이 아브라함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29절에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윗의 묘가 이스라엘 나라 어느 지역 묻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 안에 있는 거처럼 아브라함이 내 안에 살아 존재하는 것을 깨닫는 자만이 아브라함을, 순종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믿음의 영웅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첫댓글 이보문목사님 귀한 말씀의 글 주시여 감사드립니다.
아멘~감사합니다*^^*
매순간 주님께 의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보문목사님 항상 귀한 말씀의 글 주시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