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풀잎은 속삭인다 / 나뭇가지 끝에서도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 / 부드럽게 단아하게 / 생명의 숨결 서로 주고받는 하마노고 … 하늘은 파랗고 / 바다는 아늑한 저편 / 눈부신 희망이 빛을 발하고 / 고요하게 선명하게 / 생명의 모양(형체) 서로 비추는 하마노고'
마치 시와 같은 이 구절은 놀랍게도, 교가다. 일본 가나가와현 하마노고(濱の鄕)초등학교가 그 주인공. 인근의 강, 호수 또는 바다와 산 이름이 으레 등장하는 우리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하마노고초등학교의 교육 또한 조금 다르다. 비단 우리 것만이 아닌, 일본 내 다른 학교와도 차별된다. 그 바탕은 '배움의 공동체 운동'. 일종의 학교 개혁 운동으로 수업 개혁과 교실 개혁에 초점을 맞춰 학생,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 및 지역사회의 시민들이 참여해 서로 돕고 배우며 성장하는 교육 공동체 운동을 말한다. 10여 년 전부터 일본 동경대 대학원 사토 마나부 교수가 중심이 돼 시작, 현재 일본 전역에서 1000여개의 초·중·고교가 참가하고 있다.
사실, 일본의 학교교육 위기는 우리보다 더 심각하다. 만성적인 등교 거부, 집단따돌림, 학교폭력, 자폐증, 부모·교사 구타, 심지어는 동료 학생 살해까지…. (안타깝게도 최근 보도를 보면 일본이나 우리나 비슷한 상황에 이른 것 같다)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나온 것이 배움의 공동체 운동이고, 하마노고초등학교는 그것이 시작된 곳이다.
배움의 공동체 운동에는 여러 특징이 있지만 무엇보다 학교 개혁 운동을 교실 개혁에서부터 시작하고, 수업 개혁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는 △학교는 공부(勉强)가 아닌 배움(學ぶ)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목표·달성·평가'라는 모델에서 '주제·탐구·표현'이라는 교육과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등의 세부 원칙 아래 추진된 것으로 △새로운 수업 모델 창조 △융통성 있는 시간표 운영 △수업 공개와 수업 사례 연구의 활성화 △학교 조직의 단순화 등의 '현실'로 전개됐다.
'세계의 명문학교를 가다'에서는 이와 같은 세계 각국에서 주목할 만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를 찾는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의 교육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배움의 공동체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하마노고초등학교와 가쿠요중학교, 특성화·다양화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단위제'를 선구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이나즈노·히메지동고등학교를 소개한 일본의 사례뿐만 아니라, 구미의 학교 또한 방문했다. 프랑스의 최고 명문 '루이 르 그랑', 독일의 전원기숙형 김나지움 '한센베르크 성 기숙학교', 또 교육과정 운영 기획의 모델인 미국의 '윈체스터 서스턴 고등학교', 그리고 터키의 대안사립학교 '귈렌 학교' 등이 그 면면이다.
소개하는 13개 학교를 아우르는 통일된 주제는 없지만, 교사·교수·장학사 등으로 구성된 저자들은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갖고 그에 부합하는 대상 학교를 세심하게 선정했다. 또 학교 방문 시에는 학교에 대해 소개받고, 미리 보냈던 질문 사항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교환하며, 자료 수집 및 학교 시설 환경을 둘러보는 과정으로 일정을 진행했다. 이 책의 다소 전문적이기도 한, 깊이 있는 내용은 이와 같은 착실한 준비와 탐방 끝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