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의 봄소식 ***
한파와 폭설로 꽁꽁 얼어붙었던 동장군도 봄의 길목에서 뒷걸음치며
도망칩니다.
1월 초순 이집트 여행으로 보름 정도 집을 비웠더니 베란다의 꽃들이
많이 얼어 죽었습니다.
정원에 잘 자라던 동백, 차나무, 주목도 얼어 죽은 것을 보니 유난히
추운 겨울 이었나봅니다.
아껴 키우던 문주란, 군자란, 박쥐난. 펜다고무나무, 산세베리아까지
잎이 시들고 떨어져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수년 동안 정성을 드렸던 꽃들인데 한 순간의 부주의로 생을 마감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봄은 서두르지 않아도 우리 곁에 한 걸음씩 다가옵니다.
화단을 기웃거려보니 하늘매발톱 꽃의 새싹이 앙증맞게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하늘빛 꽃이 피면 매의 발톱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보면 볼수록 호감이 가는 꽃입니다.
영춘화도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봄을 처음 맞이하는 꽃(迎春花)으로 개나리보다 보름은 먼저 개화
하여 사랑스럽고 반갑습니다.
4월이 되면 가지를 잘라 꺾꽂이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입니다.
수선화도 흙을 헤집고 잎과 함께 꽃대가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우리 집 베란다는 햇볕이 잘 들고 보온이 잘 되어 온실 역할을 하고
웬만한 꽃은 이곳에서 월동을 합니다.
춘란, 대엽풍란, 석곡란이 꽃을 피웠습니다.
춘란은 보춘화라 하며 우리집 주변 지리산 기슭에서 캐다 심었는데
잘 자랍니다.
춘란은 꽃대를 잎 사이에 묻고 고개를 숙이고 피어나서 수수한 산골
처자를 닮았습니다.
다섯 조각의 연두색 꽃잎에 꽃입술이 숨어있어 자태를 뽑내지도 않고
화려한 향기로 유혹하지도 않아 풋풋한 정감이 묻어납니다.
남쪽 지방의 소나무 숲의 낙엽 속에 흔하게 볼 수 있고 자생력이 강
하여 게으른 사람도 키우기 쉽습니다.
대엽풍란은 잎이 두껍고 넓으며, 꽃이 화려하고 은은한 향기가 거실
가득 퍼져서 귀티가 납니다.
텃밭에는 긴 겨울 땅속에서 추위를 이겨낸 마늘과 쪽파, 봄동배추가
예쁘게 자라 봄비를 기다립니다.
닭장 가의 양지바른 땅에는 달래 냉이가 소복이 돋아나 있습니다.
캐다가 된장찌개를 끓이니 봄내음이 입안에 가득 스며듭니다.
할미꽃이 하얀 솜털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삐죽이 내미는 것을 보니
봄바람 타고 봄은 산골 구석구석으로 파고듭니다.
봄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려보고 꽃씨도 뿌릴 준비를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