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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이야기◈ 스크랩 [영월/중동면] 넉넉한 거리의 사실적인 벽화풍경, 옥동리 벽화거리
길손旅客 추천 1 조회 87 12.06.26 09:19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흔들림 없는 뿌리가 자라는 벽화마을

옥동리 벽화거리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옥동리

 

살아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벽화는 그러함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의병장의 단호함을 담았습니다.

옥동리의 벽화는 그러한 깊은 뿌리가 베입니다.

 

 

"나쁜 놈들은 모두 죽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

<의병장 김상태>

 

오늘 돌아보는 곳은 영월 상동에서 중동을 거쳐 고씨동굴로 향하는 길,

그 중 88번국도의 호젓한 길을 따라 나서면 만나는 하동면 옥동리의 벽화입니다. 고려시대, 관아가 있던 곳으로 당시 죄인들을 가두던 감옥이 현재의 옥동 중학교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옥동(獄洞)'으로 불리다가 뜻이 좋지 않아 '옥동(玉洞)'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옥동리는 현재 하동면의 면소재지가 자리한 곳으로 면 일대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작고 아늑한 마을이지요. 2009년 10월에 관내에 자리한 김삿갓유적지가 있어 하동면에서 김삿갓면으로 개정하였습니다. 

 

깔끔하게 잘 정리된 마을길은 넓고 넉넉합니다.

그 길가로 김삿갓면사무소에서 옥동우체국을 지나면서 벽화들이 자리하고 삼거리에서 양편으로 나뉘어져 벽화들이 전시가 됩니다. 아주 사실적인 그림, 흡사 교과서에서 본듯한 우리네 옛 풍경을 오롯히 간직하고 있는 벽화는 옥동리 마을의 잔잔하고 고즈넉함과 함께 합니다. 특히 유독 많은 그림중에 '감'을 매개로 한 벽화가 많은데요. 감나무가 많아서인지, 아니면 나무의 뿌리중 가장 견고한 것으로 알려진 감나무가 마을이 견고한 뿌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알리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수는 없습니다만, 담벼락마다 대롱대롱 달린 감들의 향연은 사실적으로 표현 되어 보기에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네 사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솟대가 그려지고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납니다. 장터를 묘사한 시장, 산꾼의 아낙은 산꾼이 캐어 내온 수고로움을 팔고, 뻥튀기를 팔고, 무쇠솥을 팔며, 쌀을 팝니다. 그리고 수선을 하는 늙은 아버지의 손끝이 애절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 골목 끄트머리에는 '의병장 김상태'의 마지막 절규가 쓰여진 독도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벽화의 위쪽으로 옥동리 마을 안쪽 산중턱에는 사당이 하나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조선말 일제가 조선을 탄압할 당시 의병장으로 이름을 드높인 김상태 의병장의 사당, 충절사입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우리의 주권을 빼앗은 나쁜놈들을 죽였을뿐이다." 라고 새겨진 글귀와 독도, 그리고 펄럭이는 태극기의 벽화는 만나는 순간 전율이 들 정도입니다. 평화롭고 한가한 그림들을 만나다가 숨이 턱, 막히는 벽화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묘하게도 스칩니다. 돈, 그리고 사리사욕, 그 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관심이 없는 의사당에 머물고 있는 이들과 그 곳에 들어가고 싶어 지금 이시간에도 온갖 감언이설을 내뱉고 있는 이들이 있지요. 결국은 모두 똑같은, 모두 제 배 채우기에 급급한 그러한 부류의 인간의 탈을 쓴 이들입니다. 

 

마을길의 벽화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소소한 우리네의 풍경들, 민초들의 삶이 그려지고 아름다운 꽃담장이 그려지고, 마지막 한 담에 그려진 벽화, 뿌리깊게 박히는 감나무가 유독 많았던 이유, 아마도 백우선생을 기리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一ㅇㅇ二' 선명한 수인복을 입고있는 백우선생

<사진출처 : 영월문화원>

 

"키는 육척, 골격은 크며, 태도는 호걸풍이며, 얼굴은 검붉고, 눈은 보통크기이나, 안광은 사람을 쏘는듯 하다."

백우 김상태(白憂 金商台, 1861~1911),

본관은 삼척이며, 자는 경륙(景六), 호는 백우(白憂), 본명은 상호(尙鎬)입니다.

단양 영춘리 태생으로 영월 하동면 옥동리로 이사해 거주하였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킨 운강 이강년(雲崗 李康秊, 1858~1908)과 의형제를 맺고 중군장으로 활약하며 많은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또한 영서지방의 의암 유인석(毅菴 柳麟錫, 1842~1915)과 합세하여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의 일본군경들을 죽이며 소백산맥 일대를 근거지로 신출귀몰한 작전을 펴며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일보은 백우선생을 찾으려 혈안이었으나 교묘히 포위망을 뚫고 다니면서 계속적인 일본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본과의 교전이 40차례가 넘으면서도 찾을 수 없자, 일본 경찰은 현상금을 내걸었고, 1911년6월14일 같은 조선인이었던 우중수(禹中守)의 밀고로 풍기군 소백산 자락에서 일본 수비대장 종편겸(宗片謙)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상투머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의병장 백우 김상태,

한국의병 사상 가장 빛나는 업적을 남겼던 그는 옥중 심문에서 "너는 많은 삶을죽이지 않았던가." 라는 질문에 "나쁜놈들은 모두 죽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 라며 의연한 대답을 하여 심문을 하던 일본인을 당황하게 말들었다고도 전합니다.

이는 당시 일본 수비대장 종편검이 보관하던 '거괴 김상태지약전(巨魁 金尙台之略傳)'의 내용입니다. 

훗 날 종편겸의 아들은 어머니의 짐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김상태의병장의 사진과 거괴 김상태지약전을 한국총영사관을 통해 전달하였으며, 수인을 입고 있는 사진은 영월 문화원 전시실에 걸려 있습니다.   

 

 

 

 

 

by 박수동

www.gils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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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6.26 11:01

    첫댓글 의병 김상태님의 일생을 알게되였고 자세한 설명과 함께 벽화를 읽으니 콘크리트 벽 아파트에서
    잠시나마 전원생활과 아름다운 마을에 머물를수 있었습니다. 언제 꼭 한번 가보아야 겠습니다.

  • 작성자 12.06.27 11:27

    영월 옥동리는 정말 조용한 전원마을입니다.
    그러한 마을에 벽화까지 그려지니 좀 더 새로운 마음이 드는 곳이지요.

  • 12.06.26 15:57

    좋은 여행 정보 감사합니다.

  • 작성자 12.06.27 11:27

    감사합니다.
    넉넉한 마음 주는 옥동리였습니다.
    즐거운 날 되세요.

  • 12.06.26 21:21

    언제 한번 ...갈곳은 많고 시간은 안되고.....

  • 작성자 12.06.27 11:27

    그냥 천천히..여유있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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