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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0: 1 어두울 때에 - 요 20: 3 무덤으로 갈새
제 20 장 :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1. 빈 무덤 ( 20: 1 – 10 )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요 20: 1 어두울 때에 -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
안식 후 첫날은 유대인들의 일주일 기준이 안식일이기 때문에 안식일로부터 계산하는 습관이 있다. 안식일은 토요일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였다. 지금은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 일요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다.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빈 무덤에 대해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순서적으로 자세히 기록했다고 보인다.
주간의 첫날 즉 주일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바위에 판 새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았다.
(1) 안식 후 첫날
이는 일주일의 각 요일에 해당하는 명칭올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중심으로 요일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안식 후 첫날'은 하루의 해가 지는 시간부터 다음날 해 지는 시간까지를 하루로 계산하는 유대인의 방식에 따른다면 토요일 일몰 후부터 일요일 일몰 때까지의 어느 시점을 가리킨다.
본문의 '첫날'(*,미아)은 '하나'를 뜻하는 기수인데, 당시에 '첫째'(*,프로토스)를 뜻하는 서수로 표현했던 일반 용법과는 다른 표현이다.
혹자는 이것이 셈어(Sem 語)적 표현법의 영향이라고 보는데(Barrett),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히브리어나 셈어에 그런 표현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근거가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2) 아직 어두울 때
마태의 '미명'과 마가의 '해 돋을 때'라는 표현에 비해 다소 이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흑자는 복음서들의 표현을 종합적으로 해석하여, 집을 떠날 때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때였고 무덤에 도착한 때는 여명이 밝아올 때였다고 본다(Lenski).
아무튼 본문은 막달라 마리아가 매우 이른 시간에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이렇게 일찍 무덤을 방문한 것은 예수를 탄압한 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돌아가신 주님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본 절의 '이른 아침' 그러니까 아직 어둡기는 하지만 이제 날이 밝아지기 시작하는 시각은 하나님의 구원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역사적 시점이다. 그것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주일이 시작되는 시점이며, 시작으로서의 창조를 기념하는 안식일이 완성으로서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로 대치(代置)되는 시점이다.
2]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이 여인은 한때 일곱 귀신에 들려 고통을 받다가 예수께 고침을 받은 이후 예수를 따르며 섬겼던 여제자 격의 인물이다.
* 막 16: 9 -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 눅 8: 2 -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를 따르며 수종을 들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도 끝까지 남아 이를 지켜보았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 요 19: 25 -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이 여인은 마르다의 동생이자 나사로의 누이인 베다니의 마리아와 혼동할 수도 있으나 양자는 전혀 별개의 인물이다(11장).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a)라는 이름은 막달라라는 성읍은 디베랴(Tiberias) 북쪽 4.8km 지점에 있다. 본문에서는 무덤을 최초로 방문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인 것처럼 되어 있으나, 공관복음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 외에도 여러 제자가 함께 갔다.
* 마 28: 1 -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 막 16: 1 -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 눅 23: 55 -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 눅 24: 1, 10 – 1 안식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이런 차이는 요한이 막달라 마리아 외에 다른 여인들이 동행했다는 사실을 모른데서 온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2절의 '우리'라는 표현은 복수의 인물들이 무덤을 방문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아마 요한은 첫 방문자들 가운데 핵심 인물인 막달라 마리아에만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였을 것이다.
3]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예수의 무덤은 큰 돌로 닫혀져 있었다.
* 막 16: 3-4 –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로마 총독 빌라도의 명령에 의해서 봉인되어 있었다.
* 마 27: 65-66 –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막달라 마리아 일행이 무덤을 방문한 것은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 막 16: 1 -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향유를 바르는 것은 곧 시신을 돌보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유대인들은 시신이 썩기 전까지는 고인(故人)의 혼이 시신 곁을 떠나지 않는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장사 지낸 후 사흘동안 시신을 돌보았다.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왔을 때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문이 옮겨져 있었다는 것은 예수의 무덤에서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왜냐하면 무덤을 막았던 돌문은 장정 다섯 명이 힘을 합해야 겨우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웠으며 입구에 움푹 패인 홈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인 몇몇이 옮기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가는 여인들이 돌문올 여는 것에 대해 염려하며 길을 떠나는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 막 16: 3 -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요 20: 2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
막달라 마리아가 바위에 판 새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고 말하였다.
1]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요한은 공관복음서에서와는 달리 천사에 대한 언급을(12-13절) 비교적 간략히 다룬다.
* 마 28: 2-7 –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 막 16: 5-7 –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 눅 24: 4-7 – 4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본서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안을 확인해 보았는지 아니면 무덤 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시신의 도난을 생각했는지 분명치 않다. 여하튼 막달라 마리아는 시체가 없어졌다고 확신했고 그것을 급히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달려갔다.
요한은 베드로와 사랑하는 제자만이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빈 무덤의 사실을 전해 들은 것처럼 기록하고 있지만 다른 복음서들과 관련시켜 볼 때 모든 제자가 그 소식을 들었을 것이 확실하다.
아마 요한은 직접 무덤을 확인한 두 중심적인 제자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해 나갔을 것이다(눅 24: 12 주석 참조).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했던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다시 제자 중 대표격으로 언급된다.
18: 27 이후로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으나 이제로부터 다시 등장하고 있다. 본문에서 언급하는 바 '예수의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는 요한의 특징적인 표현으로(13: 23. 19: 26) 21: 20과 24절을 연관시켜 볼 때 이 인물은 본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요한이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표현 속에 자신을 숨기는 것은 그의 겸손한 태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본문의 '우리'라는 표현은 무덤을 방문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 혼자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1절 주석 참조).
막달라 마리아는 두 제자에게 누군가 예수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가져갔다'에 해당하는 혤라어 '에란'(*)은 비인칭 동사로서 예수의 시신을 훔쳐 갔으리라고 의심되는 대상을 분명하게 가리키지는 않는 표현이다.
아마 무덤 도굴꾼이거나 예수의 적대자들이 마리아에게는 혐의(嫌疑)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막달라 마리아의 보고 내용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음을 말한다.
그녀가 무덤을 찾아간 것이, 예수께서 생전에 부활을 예고한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는 해석은 전혀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요 20: 3 무덤으로 갈새 -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쌔 )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 즉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곧바로 무덤을 향해 달려갔다.
아마 이들도 막달라 마리아의 생각대로 누군가가 예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확인해 보고자 했을 것이다(9절).
누가복음 24: 11에 의하면, 사도들은 여자들의 말을 허탄한 소리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과 달리 베드로는 무덤으로 즉시 달려갔다.
* 눅 24: 11 -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갈새'(*, 에르콘토)는 미완료형으로 두 제자가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제자들이 이렇게 즉각적(卽刻的)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예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이 제자들에게는 전혀 금시초문의 뜻밖의 사건이었음을 시사한다.
만약 제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예수의 시신을 가져가 놓고 예수께서 부활했다고 하려는 계획을 진행시켰다면(마 27: 63-64) 베드로나 요한이 그것을 몰랐을 리가 없고 그들이 이렇게 서둘러 무덤으로 달려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 마 27: 63-64 – 63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눅 24: 12에 의하면 무덤이 비어 있음을 확인한 제자는 베드로 한 사람이다. 그런데 본문은 요한도 함께 갔다고 진술하고 있다.
* 눅 24: 12 -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본문은 거기에 더하여 ‘그 다른 제자,’ 아마 요한도 함께 무덤으로 달려갔다고 말한다. 그 둘이 같이 달음질하였는데 요한이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않았다.
본서의 기록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사복음서 가운데 남자 제자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목격한 사람은 요한 혼자이기 때문에(19: 26-27) 예수의 무덤을 알고 있던 요한이 베드로를 인도하여 무덤으로 함께 갔을 가능성이 많다.
* 요 19: 26-27 – 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4절에서 요한이 먼저 무덤에 당도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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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을 보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샬롬.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잠 11:31).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