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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지종가 통도사
경인년 첫 순례지는
경남 양산에 위치한 불보사찰 통도사이다.
대구에서 가깝다는 것과
또 개인적으로 다녀온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그동안 순위가 밀렸었는데
새해 들어 첫 순례라는 의미를 담아
우리들의 시아본사께 새배를 올리는 의미에서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불지종가 통도사를 참배키로 했다.
다들 몇 번씩 다녀온 곳이라
과연 인원이 찰까 했던 건
다만 기우였을 뿐이다.
버스에 마흔한 명,
승용차 편으로 세 명,
이렇게 마흔 네 명의 순례단이
불보사찰을 찾았다.
-사진: 통도사 홈페이지에서
늘 그렇듯이 버스는 아침 7시에
대구를 출발했다.
중간에 휴게소 한 곳을 들러
통도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이 9시,
사찰안내를 맡아 주실 분들과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이나 당겨진 이른 시간이다.
멀리 인천에서 출발해 미리 와 계신
인라인님과 한나님을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눈 뒤
부처님께 올릴 과일공양을 가지고
일행은 통도사 권역으로 들어섰다.
바람 한 점 없는 포근한 날씨가
종일 이어져 순례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부도전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조계종 제15교구본사 영축총림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께서 대장경 400책과
부처님의 금란가사와
정골사리를 모셔와
이곳에다 봉안하며
창건한 유서깊은 불보사찰이다.
자장율사께서 그때 통도사와 함께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에
정골사리를 나눠 모셨는데
그 다섯 사찰을
오대적멸보궁이라 부른다.
다섯 곳 중에서
유독 통도사만이
그럼 왜 불보사찰로 불리는지?
그 이유는 통도사에 모셔진 사리는
역사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만
다른 네 곳은 설화로만 내려와서 그렇다고
문화재해설사께서 뒤에 설명을 해 주었다.
통도사는 적멸보궁 중의 한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오대총림에 든다.
총림은 선원 강원 율원이 갖춰진
대도량에 붙는 이름이다.
통도사는 경내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도량 곳곳이 문화재의 보고이다.
부처님 정골사리와
금란가사가 봉안된
국보 290호 금강계단(대웅전)을 위시해
영산전앞 3층석탑 등
보물 35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일주문은 아니다.
영축총림 통도사 권역임을
표시해 둔 문이다.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자
사찰을 안내해 주실 분과 만나기로 한
성보박물관이 나온다.
약속 시간이 되기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인드라망총무님이 연락을 드렸더니
통도사 연수과장 스님께서 달려와 주시고,
이어 통도사의 불교문화해설반
청운회장님께서 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순례기에 올리는 글은 짧겠지만
해설사께서는 일주문을 비롯한
사찰의 여러 문이며
전각, 탑, 배례석, 주련까지
빠짐없이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셨다.
인드라망의 오늘 일정은
박물관 관람-사시예불 동참-
자유참배시간 20분- 점심공양-
사찰안내팀의 인도로 경내 순례-
극락암-자장암 참배의 순이다.
-사진: 梵心님 본격적인 안내에 들어가
성보박물관에 대한 소개부터 있었다.
일년 내내 같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기 사용량이 많아
태양과 지열을 이용한 전기,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의 전기를
함께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총 3만여 점의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는
이 곳은 도난이나 화재, 훼손 등으로부터
문화재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최상 최적의 시설이라는 설명이다.
(박물관 안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이 없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커다란 괘불 속의 부처님께서 반기신다.
이곳 괘불은 6개월에 한 번씩
바꾸어서 전시한다고 했다.
지금 걸린 괘불은 21점 째인데
이곳에 소장한 괘불을 다 전시하려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봐도
다 못 볼 만큼 많다고 했다.
설명을 한참 듣다보니
부산에서 명륜님이 오셨다.
동참하겠다는 꼬리글도 없었는데
불쑥 나타나서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해 주니
재주가 참 좋으시다.
-사진: 梵心님(후레쉬 없이 살짝 담은 사진)
통도사 사명에 대한 해설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통도사의 지형이
마갈타국 동쪽의 영축산,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법한
인도의 영축산과 닮았다고 해서
차산지형(此山之形)
통어인도영축산형
(通於印度靈鷲山形)에서
따 왔다는 설과,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신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는 뜻의
위승자통이도지(爲僧者通而度之)에서
유래했다는 설,
그리고 모든 진리를 회통해
중생을 제도한다
통만법도중생(通萬法度衆生)에서
나왔다는 설인데
이 중 세번째 설을
스님들께서는 가장 좋아한다는 설명이었다.
통도사 범종에 대한 설명이
또 인상적이었다.
범종은 사인스님의 작품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더해서
만든 뛰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종의 몸통에는
시주자의 이름이 적혀 있고
특이하게 8괘가 그려져 있다.
설명을 통해 알게 된 사실 한 가지,
종두에 나 있는 음통을 통해
빠져나가는 소리는
불협화음이라고 했다.
불협화음은 그리로 내 보내고
순수한 음 만을
맥놀이를 통해 멀리 멀리까지 보내기에
소리가 그토록 아름다웠나 보다.
통도사 범종이 밖의 종각이 아닌
이 곳 박물관에 보호중인 이유는,
사인스님의 또 다른 작품인
낙산사 범종이
화재로 녹아 내리면서
이곳 범종을 보호하기 위해
소방시설이 완벽한
박물관 내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사시 예불 시간이 임박해
2층 불화방의 진품은 구경(?)만 하고
설명은 나중에 현장에서
모사본을 보며 듣기로 했다.
- 통도사 적멸보궁 진신사리탑
박물관을 나온 순례단은 대웅전에 들러 사시예불에 동참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지만 이 곳은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서 내부에는 불상이 없고,
불단만 만들어져 있다.
그곳에서 진신사리탑을 향해 예불을 올렸다.
예불을 마친 시각이 11시, 점심 공양시간까지는 30분의 여유시간이 있어 진신사리탑에서 우요삼잡, 탑돌이를 했다.
- 아들의 아픈 다리가 낫기를 발원하며 김치수 거사가 건축비를 보시해서 세웠다는 삼성반월교, 다리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별셋, 초승달 하나로 마음心자가 된다고 한다.
개울을 따라 성보박물관 쪽으로 다시 내려가자니 건너편 자드락길로 스님들이 지나가신다.
언제 봐도 멋있는 안행(雁行)이다.
-모처럼의 산사나들이에 신이 난 우리 아이들, 창현이, 은빈이, 효련이, 민경이
공양을 마치고 다시 박물관 앞에서 만나 오후 일정을 시작하기로 한 시각이 12시 30분인데 또 시간이 당겨진다.
일주문 밖에 인원이 다 모인 시각이 12시 10분, 금당총무님이 청운해설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우리 공양 다 했어요.
-가지가 셋으로 나눠진 삼지닥나무
드디어 오후 일정의 시작이다.
일주문에 대한 설명부터 있었다.
기둥이 하나가 아니라 한 줄로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통도사 일주문은 들어가는 문이 세 칸으로 나눠져 있다.
이것은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라 했다.
성문 연각 보살승, 삼승을 설했지만 그것은 방편일 뿐 결국은 부처 하나로 돌아간다는 일불승 사상을 담은 회삼귀일을 표현해 놓은 일주문이다.
영축산 통도사 편액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글씨이다.
(주련과 석주에 새겨진 글도 해설을 다 해 주었지만 생략함)
그동안 영축산 통도사, 영취산 통도사로 같이 쓰였는데 영축산 통도사가 바른 이름이라고 한다.
-천왕문
-천왕문에서 바라본 하로전
천왕문이다.
사천왕은 28천 중 가장 아래의 하늘인 사왕천에 살며 불법을 수호하고 불자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이다.
동쪽의 지국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북쪽의 다문천왕.
일반인들에겐 무서워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불자들에겐 참으로 친근한 얼굴이다.
-동 남 서 북을 지키는 사천왕
-사천왕의 심사를 가벼이 통과하는 불자들.
통도사는 향각이 세곳에 있다고 한다. 이는 옛날에는 독립된 세 개 사찰의 기능을 했던 흔적이라 전한다.
지금은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나누어 불리고 있다.
-사진:梵心님, 통도사 동종 보물제 11-6호
아래 사진을 보면 가람각이라는 작은 전각이 있다.
원래는 문 밖에 있는 전각이지만 통도사는 담으로 둘러쳐져 있어서 담 안에 들어와 있지만 옆에서 보면 정확히 천왕문 뒷쪽에 서 있다.
해설사님 설명으로는 집지킴이라고 했다. 화엄경의 팔부신장 중 마후라가를 모신 전각이라고도 한다.
-통도사 가람각
-보물 제1471호 통도사 3층 석탑
사진: 범심님, 인드라망 회원들 뒷쪽으로 보이는 벽화가 견보탑품도, 해설사님 옆쪽이 팔상도
통도사 영산전 내의 팔상도 보물 제1041호, 진품은 성보박물관에 있고 이곳에 걸려진 팔상도는 모사본.
이곳에서는 팔상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통도사의 팔상도는 읽기가 좀 까다롭다고 했다. 빈 공간없이 빼곡이 차 있는 그림은 한 장에 그 사건과 관련된 여러 그림이 같이 그려져 있었다.
이 팔상도는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설산(雪山)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가 쌍림수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폭은 거의 빈공간을 남기지 않고 건물과 나무, 구름 등의 배경으로 적절하게 구도를 나누어 해당되는 장면을 잘 표현하였다.
또한 각 묘사된 장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써 놓아 이해를 돕고 있다. 산악이나 바위는 뛰어난 필치로 처리되었고 인물의 묘사도 생동감이 넘친다. -문화재청 설명글에서-
보통 법당에서는 불상이 있는 곳이 북쪽인데 이곳 영산전에서는 동쪽에 계시다고 한다.
이유는, 뒷쪽으로(서쪽) 보이는 견보탑품도의 다보여래와 마주보게 배치되어 있어서이다.
견보탑품도는 특이한 벽화라고 한다. 법화경 견보탑품의 내용을 그대로 그려놓은 그림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시는 장소에는 어디든 다보여래께서 나타나 증명을 해 보이신다는 대목이다.
종지용출, 땅이 갈라지고 그 속에서 탑이 솟아 오르고, 공중에 떠 있는 탑 속에 다보여래께서 계시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을 증명하시고, 같이 자리를 나누어 나란히 앉아 계시는 이불병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법화경을 유난히 좋아하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이 곳에 오면 푹 빠지게 된다는 벽화이다.
훼손된 아래 부분은 다시 복원할 계획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천 사백년의 풍우에도 끄덕없이 건재한 극락보전과 약사전,
물론 그 동안 수차례의 중수가 있었겠지만 천 사백년을 이어져 온 가람이다.
크지는 않았지만 당당한 기품이 흐르는 명품 문화재들이다.
-불이문에서 바라 본 중로전
중로전으로 들어가는 불이문이다. 해탈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모르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이곳에서도 재미있는 설명을 들었다.
천장을 보라는 말에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들어가는 편에서 본 천장에는 호랑이가 조각되어 있고
대웅전에서 나와 나가는 편에서 바라보는 천장에는 코끼리가 조각되어 있다.
이는 문수와 보현의 상징이라는데 문수의 사자 대신 우리 민족과 친숙한 호랑이를 대신 표현해 놓은 것이라 했다.
대웅전에 들어 갈 때는 부처님의 지혜를 증득하고자 대지 문수보살의 상징인 호랑이를 올려 놓았고, 지혜를 얻은 뒤에는 세상에 나아가 모든 중생들에게 회향하라는 뜻에서 대행 보현보살의 상징인 코끼리를 조각해 놓았다고 한다.
해설사님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불이문 천장이다.
-저 뒷편은 상로전의 대웅전, 앞은 중로전의 관음전
너무 잘 되는 단체라서 그런지 쳐지는 게 없다. 엄마 아빠를 따라온 아이들이 8명이나 되건만 이건 뭐 손발이 척척 맞는다.
-불이문에서 내려다 본 하로전, 멀리 종각과 극락보전과 천왕문이 보인다.
-오층석탑과 대웅전, 그리고 관음전
-관음전의 옆모습, 팔작지붕이 아름답다.
봉발탑은 용화전 앞에 위치해 있었다.
석가세존의 옷과 발우를 미래의 부처님이신 미륵보살에게 전수하는 뜻을 따 지은 조형물이라고 한다.
이 발우의 주인공이신 미륵보살의 출현을 기다리며 미륵전인 용화전 앞에 오늘도 우뚝 서 있다.
-보물 제471호 통도사 봉발탑
-개산조당, 안쪽으로 해장보각이 있다.
개산조당은 개산조이신 자장율사의 진영을 봉안한 조사당인 해장보각(海藏寶閣)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이다.
해장보각이라는 이름은 경전이 용궁속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인도고대의 전설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도 하고,
대장경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와 같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라고도 전한다.
-금강계단의 편액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작품.
드디어 상로전에 올랐다. 다시 진신사리탑을 한 바퀴 돌아 금강계단 앞에 모였다.
사시예불을 올렸던 곳이다.
통도사의 주전각이기도 한 이 곳은 전각 네 면의 현판이 모두 다르다.
정면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의미에서 대웅보전, 남쪽의 금강계단이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받은 계법이 금강(金剛)과 같이 단단하다는 뜻에서 붙여졌고, 북쪽의 적멸보궁이란 현판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붙은 이름이고, 서쪽의 대방광전은 화엄경과 관련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개산조이신 자장스님께서 사찰 창건시 가져오신 경전 400책 속에 화엄경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 플러스님
대웅전 올라가는 계단이다. 중간에 나 있는 저 길을 답도라 부른다고 한다. 임금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인데 연을 타고 올랐다고 한다.
답도는 비늘이 선명한 용꼬리이다.
그럼 용의 머리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반대편의 구룡지이다.
대웅전 금강계단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용의 머리가, 동쪽에는 용의 꼬리가 있다.
대웅전은 당연히 용의 몸 위에 있으니 반야용선을 표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통도사 구룡지
-명부전 포벽 벽화
명부전 벽화이다.
해설사님의 설명이 참 재미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통도사 명부전 벽화가 엉뚱하게도 삼국유사에서 유래되었다는 글이 있다고 한다.
모르면 그냥 안 올리면 될텐데 다른 사람까지 헷갈리게 만든다는 거다.^^*
그래서 똑바로 잘 설명을 해 주셨는데...
오른쪽은 삼국지의 삼고초려(三顧草廬) 장면을 그린 것이고,
왼쪽은 탄금주적(彈琴走賊)의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그의 초가집을 세번 찾아갔다는 대목이 삼고초려도로 그려져 있고,
제갈량이 전쟁에서 패한 후 사마의의 10만 대군과 맞설 때, 단 3천 병력으로는 적을 막아내지 못함을 알고 제갈량은 거문고를 타고 군사들은 유유자적 마당을 쓸고있는 평화로움을 가장해 적이 제 발로 달아나게 했다는 장면을 그린 것이 탄금주적도이다.
이곳에서의 설명을 듣는 것을 끝으로 통도사에서의 일정은 마무리 됐다.
불지 종가에 무려 네 시간이 넘도록 머물러 있었다.
사찰 해설을 이토록 자상히 듣게 된 것도 우리 순례단의 복인 거 같다.
아침 9시, 이른 시각부터 나오셔서 성심껏 열심히 해설해 주신 청운 김용관 통도사사찰문화 해설반 회장님께 회원 모두의 마음을 담아 한 번 더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언제 찾아와도 좋은 통도사는 큰집의 넉넉함이 있어 더욱 좋은 도량이다.
이제 우리는 극락암과 자장암을 찾아 영축산 더 깊은 곳을 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