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할아버지는 삶의 마지막을 칠레 남부의 칠로에섬에서 보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칠레는 아주 긴 나라라, 그 섬에 가려면 내가 살던 산티아고에서 14시간이나 육로로 이동하고도 다시 배를 타야 합니다.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한 슬픔에 빠진 채 장례식장으로 가던 그날 밤, 저는 시 한 편을 떠올렸습니다. 그 시가 이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혼자 살며 대학 공부를 하던 제게 일요일마다 전통 음식과 홍차를 들고 찾아오셔서, 함께 산책하면서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둘이 함께 작은 섬으로 여행을 떠나 새벽 4시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축제를 즐긴 일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삶을 즐기는 분이었지요. 할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을 기꺼이 섬세하게 담아 주신 임효영 작가에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내가 생일마다 즐겨 입었던 빨간 원피스 입은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그려 주셔서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임효영(그림)의 말
제게 이 작품은 파울리나 하라 작가의 기도문으로 들립니다. 시각적인 표현으로 함축된 시어가 마치 낭송되듯 읽힙니다. 할아버지가 당신의 마지막을 알고 지난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려 노력했습니다. 저는 모두가 행복과 감사함으로 다음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길고 푸른 수염 안에 그가 기억하는 것들, 잊힌 것들, 그리고 붙잡고 싶은 것들을 담았습니다. 이 장면은 제가 2018년에 작업한 〈이상한 수염, 선장〉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미처 완성하지 못한 초안으로 남은 작업이었는데, 마침 파울리나의 할아버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장면에서 20년 전 돌아가신 저의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때로는 이제 여러 손주의 할아버지가 되신 저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그러다 때때로 제가 할아버지가 되어 부엉이 기관사의 기차를 타고 의연하게 먼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책이 누군가에게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그래서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다정하고 부드러운 속삭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