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 자료없음 ------------------------------------------------------ =>자료에는 분명 평남 평원 출생이라 되어있습니다. 김의원은 만주출생인데 보좌관의 실수로 평남 평원으로 알려졌다 하였습니다. 설마 총선연대에 제출하는 자료조차도 본인이 확인하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되죠...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잘못된 자료를 올려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준 총선연대의 책임도 큽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최종학력이 분명 충남대진여상(대전여상이 아님) 중퇴에 대경대학겸임교수라 나와있습니다. 먼저. 충남대진여상은 없습니다. 혹시 예전에 상고가 정보고로 명칭을 많이 바꾸어 대진정보고를 검색해봤습니다. 대진정보통신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재지가 부산입니다. 중요한 것은 분명 <희선이야기>에서는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확실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충남대진여상이라뇨....???? 그래서 대전 소재 고등학교를 찾아봤습니다. 역시 대진여상 없습니다.
그리고 대덕대학겸임교수라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총선연대 자료에는 국회신고 되어있다고 나오더군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김의원 홈페이지에 이렇게 되어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대덕대학 강사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고교학력으로 돌아와서....
네이버 자료입니다 ------------------------------------------ 이름 : 김희선 (金希宣) 출생 : 1943년 10월 28일 학력 : 대전여자상업고등학교 2년 중퇴 약력 : 1974년 서울YWCA 주부클럽중앙회 부회장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 부회장 2000년 제16대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2004년 제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 모든 자료에는 김의원이 대전여상 중퇴로 나옵니다. 그래서 모두 김의원이 대전여상 출신인줄 알고있습니다. 선거용 공식자료와 대외용 학력이 다를 수도 있는가요?? 위의 네이버자료에는 대전여상 2년 중퇴로 나와있습니다.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분명 <희선이야기>에서는 졸업을 얼마 앞두고 그만둔걸로 적고 있습니다. --------------------------------------------------------- <희선이야기> 중....
“‘열과 성은 모든 고난을 극복한다. 힘들면 진해로 다시 와라!’
중학교의 교훈을 마지막 격려로 써준 교장선생님의 편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평범한 말이지만 모든 일에 열과 성을 닿나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할 줄 아는 내가 된 것도 여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해 5월 고등학교 입시가 끝난 두 달 뒤늦게 나는 대전에서 여고생이 되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맘껏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마침 사촌오빠가 대전에서 장사를 하는데 혼자 밥을 해먹어야 하므로 사촌오빠를 돕기로 했다. 처음엔 야간으로 입학했다가 나중에 주간으로 옮겼다. 사정이야 어쨌든 공부를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두 달 늦기는 했지만 문제되지 않았다. 중학교 성적이 우수한데다 황낙주 교장선생님의 추천서까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친구도 생기고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도 맘껏 빌려 보고 활달한 내 성격 탓에 차츰 학교 일도 맡아 하게 되었다. 그런 내게 또다시 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빨리 짐 싸. 짐!”
어느 날인가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는데 사촌오빠가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들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옷을 갈아입을 사이도 없이 짐을 꾸려 트럭에 올라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트럭을 타고서도 한참동안 내 앞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촌오빠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난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IMF 때문에 많은 분들이 부도를 맞거나 부도 위기에 몰려 있던 것을 알고 있다. 제 날짜에 어음이든 뭐든 막아내지 못하면 아무리 튼실한 기업도 무너지는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부도를 냈다 하면 큰 사기꾼, 도둑놈으로 취급되어 당장 감옥으로 갔다.
그해 겨울은 정말 우울하고 생각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기가 막히던 해였다. 한밤에 보따리 몇 개 던져넣고 올라탄 트럭은 다음날 아침 큰아버지 댁으로 들어섰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허공만 바라보았다. 친구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다. 행여 친구들에게 연락할까봐 큰댁에서는 나를 바깥 출입도 하지 못하게 했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나는 행방불명이 된 것이었다. “ ------------------------------------------------- 어떻게 보셨습니까? 분명 ....<대전에서 여고생이 되었다>...., 뒷부분 .... <졸업을 코앞에 두고 나는 행방불명이 된 것이었다>..... 저는 이글이 마치 소설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입시후 2달뒤 5월에 입학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
정리하면 ... 김의원 공식자료에는 충남대진여상 중퇴라 기재하였으나 충남대진여상은 존재하지 않는 학교이며, 대전에서 여고생이 되었다는 본인의 기록에 따르면 충남대진여상이라 할수없고(대전00학교라 하겠죠).. 대전에도 대진여상이 없으며, 모두가 대전여상 출신으로 알고있는 것은 본인이 대전여상 출신이라고 허위로 프로필을 기재 언론사나 단체에 뿌린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즉, 존재않는 대진여상을 공식자료에 넣고 점 하나차이의 대전여상을 출신고교로 적어 각 언론사에 배포한 것으로 판단합니다.(나중에 누가 출신교가 다르다고 물어보면 또 보좌관이 실수했다고 둘려대겠죠...점 하나 차이니까...)
참 어찌보면 어이가 없죠...
이제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력에 대해 풀어보갰습니다.
얼마전 까지 김의원 홈페이지 올려져있던 내용입니다. ------------------------------------------- 학력 : 평택 중앙초등학교 - 진해 충무중학교 - 대전여상 - 캐나다 제이버(Xeiver)대학 국제코디연구원 -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 김희선의원의 학력사항의 공통된 점은 정확한 연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 입학했고, 언제 졸업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의 단서 - 초등학교 3학년때 신문사설을 읽었다 - 초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였다. 이것 뿐입니다. 그리고 본인 프로필의 평택중앙초등학교 졸업....
특히 초등학교때의 일은 김학규선생님과의 생활을 기록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관심있게 보았으나 마땅히 증명할 방법이 없더군요. 단지 초등학교 입학할 때가 6.25가 터진 시기라 혼란기에 제대로 학교가 운영됐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다음 중학교의 단서
이건 <희선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을 차례대로 정리 한것입니다 - 정화여중에 합격하였으나 가정형편상 포기하였다. - 진해에서 대위로 근무하는 막내삼촌이 불러 해군관사에서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였다. - 다니는 학교가 남녀공학이었다. - 그 학교는 황낙주 전국회부의장이 설립한 학교다. - 중학교때 4.19가 일어났다. - 알고보니 유학까지 다녀온 해군대위 막내삼촌이 종말론자 였다. - 그래서 졸업을 앞둔 중3때 용문산(양평) 기도원으로 막내삼촌이 억지로 보냈다. - 기도원에서 지낸 50여일 고달팠다. - 또 그래서 서울 큰아버지 댁에 갔다.
김희선의원은 자신이 다녔던 중학교를 정확히 기록해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학교명, 입학시기 ... 그런데 입학을 포기했다는 정화여중은 두 번이나 실명을 거론합니다. 이상하죠???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그래서 추적을 해봤습니다. 황낙주 전국회부의장이 1955년 진해에서 설립한 학교가 있습니다. 진해서여중고 입니다.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학교법인 인가가 나지않아서가 아닐까 추정합니다만.... 그런데 김의원은 자신이 다니던 학교가 남녀공학이라 하였습니다. 진해서여중...여중인데 남녀공학이라...?? 그시대엔 남녀공학이 정말 드물었습니다... 거의 없다 봐야죠... 학생이 얼마안되는 벽촌시골에는 있었을 겁니다. 진해는 그 정도의 벽촌은 아닙니다. 고로 학생수가 그리 많지 않은 학교일 것입니다. 즉 학력인증 안되는 학교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보다 김희선의원은 조상사칭 의혹이 일기전까지 홈페이지에 진해충무중학교 졸업이라고 버젓히 올려져있었습니다. 진해 충무충학교 없습니다. !!!! 그러다 갑자기 진해서여중 졸업이라고 바꾸었습니다.. 아마 황낙주의원이 설립한 학교에 다녔다고 분명 거론한 것을 생각하고 진해서여중으로 바꾸었을 것입니다. 근데 이학교도 사라졌습니다... 참 내....
그건 그렇다치고... 그 뒷부분이 코메디입니다. 멀쩡하던 해군대위 삼촌이 종말론자???? 그리고 진해에서 양평 용문산 기도원까지...??? 그리고 50여일 지난후 서울 큰댁으로.... 그럼 진해로 같이 가서 생활했던 할머니는 어찌되었는가요???? 그 이후론 등장안합니다. 세상에 어느 가정이 어린손자가 멀리 양평까지 끌려가는데 할머니가 아무말이 없다 ??? 그것도 졸업을 앞둔 중3여학생이.... 하였튼 김희선의원은 그이후로 진해로 와서 졸업식에 참가하고 졸업장을 받았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양평에서 바로 서울 큰댁으로 그리고 대전에서 여학교를 다닌다고 했습니다. (진해서여중... 우등생이었던 여학생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도 찾도안하나 봐여...또 그렇게 오랬동안 무단결석을 해도 졸업장 주나요??? 그러니 학교가 없어졌나...)
김의원의 중학교 학력에 관한 결론... 졸업 못했다.
다시한번... 고등학교 .... 단서.. - 대전에서 장사하는 사촌오빠집에서 밥해줄려고 내려감 - 거기서 고등학교입시 2달후 대전 모 여학교 입학함(황낙주의원 추천서땜에 왕따 안당하고 잘다님) - 멀쩡하던 사촌오빠 마저 부도 남 - 그런데 졸업을 얼마 앞두고 학교생활 잘하는 있는 희선이까지 데리고 도망감. - 그래서 중퇴했음
=> 유치해서 말하기도 싫습니다....
김희선의원의 학력에 관해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다녔다는 중학교, 고등학교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학교입니다. 우연도 이런 우연도 없습니다. 초등학교는 졸업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희선이야기>중에 졸업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초등학교 밖에 없습니다 (우등생으로 졸업하였다...) 어쩌면 이것도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중학교... 어딜봐도 졸업했다고 추정할만한 증거 없습니다. 고등학교 .... 입학했다는 자체가 미스테리입니다.
저는 김우전 광복회장과 조카 김일진씨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김희선의원의 독립투사 조상사칭에 대해서도 아직도 많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학력에 관한 의문을 풀어보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김의원을 개인적으로 씹기위해 아까운 시간 버려가며 이러고 싶진 앟습니다. 단지 진실을 알고 싶고 내가 낸 세금으로 일년에 수억원의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이라는 공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객관적이고 공평한 자료만을 바탕으로 풀어봤습니다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시시비비를 피하기 위해서 입니다.
혹시 김희선의원이 이 글을 보시고 오류가 있으면 합당한 자료로 시정을 요구하시고 그렇지 않다면 도덕적 책임을 지셔야 될걸로 생각됩니다. 특히 학력 허위기재는 당선취소로 이어질만큼 심각한 걸로 알고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인정할만한 합당한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고생많이 하셨네요,
근데 저 아줌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거나 말거나' 인생이군요~
ㅎㅎㅎ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진해 충무중학교 있었습니다 한번 확인해보세요 동창모임도 있던데...
저 대전여상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대전여상은 현재 대전에 존재합니다...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