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 년의 사랑
정윤천
1.
너에게로 닿기까지 십만 년이 걸렸다
십만 년의 해가 오르고
십만 년의 달이 이울고
십만 년의 강물이 흘러갔다
사람의 손과 머리를 빌려서는
아무래도 잘 헤아려지지 않을 지독한
고독의 시간
십만 년의 노을이 스러져야 했다
2.
어쩌면, 십만 년 전에 함께 출발했을지 모를
산정의 별빛 아래
너와 나는 이제야 도착하여 숨을 고른다
지상의 사람들이
하나둘 어두움 속으로 물을 걸어 잠그기 시작하였다
하필이면 우리는 이런 비탈진 저녁 산기슭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는가
여기까지 오는 데 십만 년이 걸렸다
잠들어 가는 지상의 일처럼 우리는 그만 잠기어도 된다
더 이상의 빛을 따라나서야 할 모든 까닭이 사라졌다
3.
천 번쯤 나는 매미로 울다 왔고
천 번쯤 나는 뱀으로 허물을 벗고
천 번쯤 개의 발바닥으로 거리를 쏘다니기도 했으리라
한번은 소나기로 태어났다가
한번은 무지개로 저물기도 하였으리라
4,
물방울들이 모여 물결을 이루는
멀고도 반짝이는 여정을 우리는 왔다
태어난 자리에서 그대로 난다는 의미의
이름으로 불려지던 나비처럼
날고 또 날아올라서 여기까지 왔다
바다인들 거슬러 오르려는 거꾸로 붙은 비늘처럼
금빛의 역린같이
2011년 문학동네 刊
조금 다른 부분이 수정?된 시편도 참고바랍니다.
1너에게로 닿기까지 십만 년이 걸렸다십만 년의 해가 오르고십만 년의 달이 이울고십만 년의 강물이 흘러갔다사람의 손과 머리를 빌어서는아무래도 잘 헤아려지지 않을 지독한고독의 시간십만 년의 노을이 스러져야 했다2어쩌면, 십만 년 전에 함께 출발했을지도 모를山頂의 별빛 아래너와 나는 이제서야 도착하여 숨을 고른다地上의 사람들이하나 둘 어두움 속으로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하였다하필이면 우리는 이런 비탈진 저녁 산기슭에 이르러서야가까스로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는가여기까지 오는데 십만 년이 걸렸다잠들어 가는 지상의 일처럼 우리는 그만 잠겨져도 된다더이상의 빛을 따라 나서야 할 모든 까닭이 사라졌다3 천 번쯤 나는 매미로 울다 왔고천 번쯤 나는 뱀으로 허물을 벗고천 번쯤 개의 발바닥으로 거리를 쏘다니기도 했으리라한번은 소나기로 태어났다가한번은 무지개로 저물기도 하였으리라4 물방울을 길러 물을 이루게 하였을 십만 년 만큼이나 머언 여정을 왔다 강물의 깊은 살결들이 제 주름을 접었다가 푸는 푸른 水深을 거스르는 逆鱗처럼 너에게로 닿기까지 십만 년이 걸렸다.
출처: 시에/시에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무궁화(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