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17~18)
아멘!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를 통해서 고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 서로 위로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무엇으로 위로하라고 하냐면 주님 오실 때 믿는 그들도 구원을 받아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합니다.
이천 년 전 성도들에게 위로는 구원 받아서 주님과 항상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원 받는 것만이 그들의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또다른 위로는 주님과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랬다고 합니다.
참 성도들은 그랬다고 합니다.
나는 어떤가 싶습니다.
나는 예수님과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위로가 되나 싶습니다.
이 땅에서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거나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위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구원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상을 받는 것이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위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의 위로는 이와 같은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의 위로는 주님과 항상 함께 있게 될 것이 그들의 위로였다고 합니다.
고난과 핍박을 받는 그들에게, 믿음을 지키겠다고 무덤에 들어가 있는 그들에게 위로는 주님과 항상 함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들에게 이것이 위로가 되었을까 싶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들을 구원해 주신 주님을 정말 사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이 가져다 주시는 선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선물을 가져다주시는 주님께 감사한 마음이 있었고 또한 그분께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께 관심을 두어야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천국에서의 생활이 즐거우리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서의 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순전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주님과 항상 함께 하기를 원하는 사람, 주님과 항상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되는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해야겠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 은혜 받고 성령을 받아서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리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야 이 길을 제대로 힘있고 즐겁게 갈 수 있고 또한 이 길 끝에서 우리 주님을 기쁘게 만나게 되리라고 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