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있는 그대로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자비의 마음을 주님께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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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12/연중 제2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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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6장 27-38절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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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너-우리
자비(misericordia)라는 말은 어원상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며 그의 애처로운 처지를 단순히 그의 능력이나 노력의 부족 정도로 치부하거나, 그의 불성실한 삶의 결과로 바라보지 않고, 그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한 인간으로 바라보아야 진정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에게 돈을 꾸어주는 것보다,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이나 티브이에 등장하는 난민, 굶주린 이들에게 선뜻 지갑을 열기 쉬운 것도 이와 같습니다. 보여지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금방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십니다. ‘너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학대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 다음의 구절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 분명 예수님께서는 남(타인)과 나를 구분해서 말씀하시지만, 이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그 경계가 없어져버립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의도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삶, 남이 곧 나이고 내가 곧 남인 삶, 우리라는 틀 안에서 나와 남의 경계가 사라져버리는 삶의 경지, 그게 아버지의 모습이고, 그런 모습이 진정 자비의 모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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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감 안젤로 신부(광주대교구)
생활성서 2024년 9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