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나미비아의 독립 투쟁을 이끌어 건국의 아버지로 통하는 샘 누조마(Sam Nujoma)가 전날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나미비아 대통령실이 9일 밝혔다. 난골로 음붐바(Nangolo Mbumba) 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고인이 "회복할 수 없는" 질환과 싸우느라 3주 넘게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면서 "존경받는 우리의 독립 투사이며 혁명 지도자인 고인을 잃어 극도의 슬픔을 통감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오밤보(Ovambo) 부족의 가난한 농가에서 열 명의 자녀 가운데 맏이로 태어난 그는 1949년 빈트후크(Windhoek) 근처 철로를 닦는 일을 하며 야간학교를 다녔다. 그는 당시만 해도 남서아프리카로 알려졌던 나미비아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 통치를 끝내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있던 헤레로(Herero) 부족의 호세아 쿠타코 부족장을 만났다. 쿠타코는 그의 멘토로서 1950년대 후반 신도시로 이주하라는 정부 명령에 항거하는 흑인 노동자들을 이끄는 정치 활동을 펴도록 길잡이 역할을 했다.
그러다 쿠타코의 권고를 받아들여 1960년 아내와 네 자녀를 고국에 남겨 두고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해 그는 남서아프리카인민기구(SWAPO) 대표가 돼 전국을 누비며 독립운동 지지를 늘려갔다. SWAPO는 1966년 남아공이 독일 식민지였던 나미비아에 대한 잠정 통치를 끝내라는 유엔의 명령을 아프리카의 공산주의 팽창을 막는다는 미명을 내세워 거부하자 무장 투쟁을 시작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자원 부국인 이 나라는 1990년 3월 12일 독립을 성취했는데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나중에 독립을 이룬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누조마는 같은 해 최초의 민주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돼 세 차례 연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구가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정책적으로 잘 대처해 국제적인 찬사를 들었지만 자신의 SWAPO 해방운동에 투신했다가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의 스파이" 혐의로 앙골라 감옥에 투옥된 수백명 동지들의 환국을 거부해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그는 또 동성애에 극렬히 반대해 "광기"라고 하거나 2001년에는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체포되거나 추방될 것이라고 극언을 하기도 했다.
누조마는 또 김일성 북한 주석, 피델 카스트로 쿠바 혁명평의회 의장과 가까이 지낸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수도 빈트후크의 독립기념관 앞에 세워진 누조마 동상은 북한이 제작해 선물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후계자로 손수 지명한 히피케푸녜 포함바(Hifikepunye Pohamba)는 쉽게 당선돼 2005년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하지만 누조마는 여전히 막후에서 실권을 장악한 것으로 보였으며 그 뒤로도 2년 동안 공식적으로 은퇴하지 않았다. 그가 SWAPO 당을 이끈 것은 무려 47년이었다.
음붐바 대통령은 고인이 "우리가 두 다리로 서서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광대한 땅의 주인이 되게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당선돼 이 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다음달 취임하는 네툼보 난디은다이트와(Netumbo Nandi-Ndaitwah)는 고인에 대해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력과 독립, 국가 건설에 대한 헌신이 우리의 자유롭고 단결된 건국을 이끌었다"면서 "복원과 연대, 이타적인 헌신 등 그의 유업을 존중하도록 하자"고 밝혔다.
한편 독일은 1884년부터 나미비아를 점령해 1차 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남아공에 통치권을 넘겼다. 독일 식민당국은 1904년부터 수만 명의 나미비아인들을 학살해 세계에서 "잊힌 대량학살"으로 불렸다. 독일 관리들은 흑인 아프리카인들을 기니 피그들로 이용해 후일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는 평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