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 영원한 철부지로 남고 싶다 / 마광수
어렸을 때부터 나는 ‘현실’보다는 ‘꿈’ 안에서 사는 쪽이었다. 몸이 허약하다 보니 자연히
행동력이 부족하게 되었고, 육체적 열등감을 정신적 공상이나 백일몽으로 보상받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도 주로 책에 묻혀 지냈고, 그림을 그리거나 붓글씨
를 쓰며 무료한 시간을 때워 나갔다. 그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주로 문학, 미술, 연
극에 심취했다. 나는 아주 말라깽이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목소리만은 커서, 연기하
는 것이 퍽 재미있었다.
지금 나는 학교 선생이 되어 일종의 일인극(一人劇)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고, 입
으로 떠드는 것을 다시 글로 쓰고 있는데, 내 육체적 조건에 생업(生業)이 맞아 들어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고 있는 일이 ‘본능의 대리배설’ 작용을 해주면서 동
시에 호구지책도 될 수 있다면, 이 풍진(風塵) 세상을 그럭저럭 연명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마음만이라도 야(野)하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 ‘야한 마음’이란 어린아이
처럼 본능에 솔직할 수 있는 마음이요, 별다른 관념적 선입관이 없는 ‘텅 빈 마음’이다.
나는 예수가 말한 대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을 받는다’고 믿었고, 불교에서 말하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이치를 믿었다. 나는 공즉시색을 ‘마음이 공(空)해야만 색(色)이
생긴다’는 뜻으로 풀어, 죽은 뒤의 천당이나 극락에서가 아니라 현실 안에서도 어느 정
도 ‘천국의 상태’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그때 닥쳐오는 본능적 욕구에
따라서 살려고 노력했고, 원대한 이상이나 포부, 또는 형이상학적 잡념이나 이데올로기
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것도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내게 가장 적합하고 편한 직업이 될 것
같아서 (대인관계에 서툴러도 되고, 입으로 실컷 배설할 수 있어서 좋고, 또 명예욕도 적
당히 충족시켜 주므로) 그랬던 것이지, 위대한 학자나 스승이 되고자 했던 것을 아니었
다. 글을 쓰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복받치는 우울감과 고독감을 풀어 버리려
고 썼지, 미리부터 야심 있게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습작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얼마 전(1990)에 나는 장편소설 『권태』와 『광마일기』를 출간했는데, 소설로는 내가
처음으로 써본 것이다. 소설로 실컷 울화를 풀어 버리고 싶던 차에 마침 잡지사에서 청
탁을 하길래 한번 들입다 써본 것이지, 오래 전부터 구상해 왔던 것을 아니었다.
예수는 ‘내일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있다. 말하자면 ‘순간의 욕구’에 충실하면서, 능동적으로 계
획을 세워 설쳐대지 않고, 가만히 마음을 비우고 앉아 어떤 계기가 마련되기를 수동적
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발표행위든 연애행위든, 요행히 기회가 주어지면 좋고 안 주어
진다고 해도 하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야(野)한 기도, 즉
당장의 본능적 욕구 (주로 식욕과 성욕에 관련된 것, 글 쓰는 것은 두 쪽에 다 관련이
있다) 에 솔직한 소망은 언제나 이루어진다고 본다.
우리가 이타주의적(利他主義的) 시혜의식(施惠意識)이나 정신우월주의에 빠져들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이 세상은 재미있는 세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나의 쾌락을 위해 남을 해치기까지 하는 지독한 이기주의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어
디까지나 ‘남’보다는 ‘나’로부터 출발하자는 말이다. 석가 역시 ‘천상천하유아독존(天
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하여 ‘나’로부터 출발했고, 예수는 현실의 아버지를 부정하고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가족관계의 좁은 울타리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다.
조국이나 부모, 또는 동포나 이웃에 대한 참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
신의 욕망’에 충실할 수 있어야만 한다. ‘나와 너’가 서로 찐득찐득한 유착관계로 맺어
져 있을 때, 그리고 개인적 욕망이 그럴 듯한 대의명분이나 이데올로기로 위장될 때,
개인이든 사회든 걷잡을 수 없는 변태적인 형태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수
밖에 없는것이다.
어찌 보면 인생은 어차피 허무한 것이고 부질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악을 써봤
자 결국 남는 것은 씁쓸한 절망감뿐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내세에 대한
공연한 기대심리로 이어져 광신(狂信)을 낳는다. 유한한 육체의 본성에 대한 부정은
편협하고 가학적인 성품과 신경질적 적개심을 가져온다. 그래서 나는 학문이나 예술
역시 ‘대리배설’에 불과할 뿐 ‘직접배설’은 못 된다고 생각한다.
학문이나 예술보다는 ‘사랑’이 더 재미있고 쾌락을 준다. 허망한 인생살이에 있어 순
간적으로라도 짬짬이 사랑의 정열을 불태우는 것이, 그래도 그 중 재미있게 삶을 살
아나가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랑’ 이전에 ‘식욕’이 충족되어야 한다
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그런 순간적인 사랑조차 제대로 불
태우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우선 육체적인 노쇠현상과 함께, 경직된
사회분위기나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협한 사랑관(觀)이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
래서 뼈저린 외로움을 지탱해 나가려다 보니 나는 자연히 더 발악적인 ‘대리배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딱딱한 이론보다는 창작에 더 몰두하고 싶다
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작년(1989) 봄에 나는 우연히 첫 수필집을 내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꽤 많은 원고
청탁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이리저리 미친놈처럼 붓을 휘둘러대고 있다. 시(詩)
는 아무래도 변비증 걸린 사람이 끙끙거리며 누는 배설행위 같아서, 나는 최근 시원
한 설사 같은 쾌감을 주는 소설 등의 산문에 집착하고 있다.
지금(1990) 세 번째 소설인 『즐거운 사라』를 끝냈고, 네 번째 장편소설인 『자궁 속
으로』를 쓰고 있다. 에세이집 『사랑받지 못하여』와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도 나왔고, 시나리오도 한 편 썼다. 얼마 전에는 이외수, 이목일,
이두식씨와 함께 <에로틱 아트전(展)>을 열어 그림에도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내가 갑자기 돈이나 명예에 욕심을 내어 미친놈처럼 붓을 휘둘러대고 있는 것은 절
대로 아니다. 대리배설이 필요했던 차에 내게 대리배설 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
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언제나 ‘벼락공부’와 ‘직관력’에만 의지하여 지금까지 근근이 버텨
왔다. 그런데 그만하면 실컷 대리배설 할 수 있는 기회가 마흔 살 가까운 나이에 찾
아와 주었다는 것이 썩 다행스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더 이른 나이에 내가
글로써 설사를 했더라면 별로 오래갈 수 없었을 것 같다. 직관력도 중요하지만 아무
래도 직접, 간접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별다른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죽 학교 연구실에만 묻혀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꽤 잡다한 독서를 할 수 있었
고, 이런저런 정신적 방황을 겪을 수 있었다.
요즘은 내가 늙어간다는 것이 좀 겁이 나기도 하고, 아직도 철부지 어린애처럼 칭얼
칭얼 사랑 얘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쩐지
내가 영원한 철부지 소년으로 머물고 말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이른바 의젓하고 늠
름한 인물이 되는 건 단념하기로 했다.
나는 오직 솔직한 ‘순간의 연소’만을 위해서 살아가려고 한다. 될 수 있는 한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이기보다는 좋은 친구이고 싶고, 문학은 물론 다양
한 예술 장르를 통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런저런 가지각색의 똥을 누는 ‘푸근
한 배설꾼’이고 싶다. (1990)
(마광수 지음 <나의 이력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