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장만(俄田引水式)
牧師와 교인 서로 허물 덮어주는 태도 필요
俄田引水격 문제해결은 더 큰 문제 낳을 뿐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4).
이 한 구절의 말씀을 받는 대로 주님을 기쁘게 충만한 기쁨을 더하시게 하는 길이 어디 있음이 드러난다.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주는 일을 그렇게 기뻐하심을 알겠다. 이로써 주님 자신이 직접 주신 교훈도 기억이 된다.「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교훈도 그 근본 뜻을 더욱 알만하다(눅1:30-37). 그러함에 불구하고 교훈은 이렇게 바로 교시된 바인데 이렇게 살고 있는가 하면 이는 실로 큰 문제이다.
어떤 일이 발생할 때 모든 허물은 다 남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일이 내 주변에 많이 있다. 내 자신도 그렇기가 쉽다. 더욱 주의 몸된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 간에 약간 문제가 생겨 덕이 되지 않을 때 목사편으로 얼른 떠나는 것이 덕이 되매 교회도 유익한 점이 있어보여 그렇게 하라고 종용도 해본다.
교회편으로서 떠나시면 하는 그 심정이 확실하다. 떠나면 좋을 것 같아서 떠났다. 목사가 떠나면 후유증이 생기게 됨도 흔히 보는 일이다.
이 후유증을 장로이든 목사이든 자신에게 돌리게 된다면 일은 순하게 될터인데 기어이 자신은 빠지고 다른 이에게 씌우는 일이다.
목사 자신도「내가 부덕해서 여러분에게 골고루 만족을 못드렸습니다.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새 목자를 모시는 것이 더 유익하다 사료되어 떠나게 되었읍니다」식으로 자신이 책임을 지고 떠나면 얼마나 덕이 되겠는가. 그렇지 않는가. 정든 교인들은 누가 목사를 떠나시게 했는가?의 여운을 남기는 일이 있다면 목사 자신의 덕에 손해는 물론 교회에 손해가 이만저만 하지 않다.
반면에 장로측이라 할까 교회 직원 중에선 내가 부족해서 목사님을 떠나시게 했다고 그 책임을 지면서 가시는 목사님께도 죄송함을 일반 교인들께도 이런 덕을 나타낸다면 후유증이 쉽게 해결되어진다. 가는 목사도 원망조로 떠나고 보내는 교회 측에서 목사가 그렇게 떠나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 꼬투리만 잡으려 하면 교회로서 일반 사회보다 부덕하다 함을 면치 못한다.
몇 달 전부터 간다 간다 하며 교인을 소란케, 또는 이런 불안조장을 하게 될 우려는 십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기에 별로 말없이 있다가 떠날 때 깨끗이 떠나야 한다. 떠나기를 그렇게 바랐던 이들도 목사가 떠남으로 흔들리는 교인들이 있을 때 자기 부족을 말하면 순하게 풀리어질 것인데 떠나기를 주장하다시피 한 그가 도리어 목사가 그렇게 떠날 수가 있는가? 하는 일은 너무 부덕한 일이다.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는 전연 고려도 않고 목사를 원망함은 안 될 일이다. 이런 일을 아전인수격이라 할 것이다.
신앙인에겐 덕은 논할 것도 없다. 믿음은 자기희생, 자아포기투항인데 나는 없어진 바인데 자기희생에 덕이란 도의적 용어는 그 햇빛 앞에 촛불 같은 것이다. 덕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희생하는데 희생했는데 덕 같은 것이 문제 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덕이 없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해가 밝히 비추일 때 촛불의 역할이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이다. 덕은 자연히 그 속에 들어있게 되는고로 문제조차 될 것 없다는 말이다.
내 논에 물을 대는 식, 남의 논의 물론 하기에 극히 이기적으로 남을 손해시켜도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은 도전의 심산이다. 이런 정형에도 덕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다 좋고 잘했는데 상대방이 안되었다고만 주장하면 이는 덕은 무시한 도적의 심사라 할 것이다. 이런 식의 삶은 신앙자의 삶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께서 싫어하신다. 마음 아파하신다. 남의 일을 돌아보아주는 삶을 주님은 기뻐하신다. 그렇기에「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이라 바울의 말이거니와 주님의 심정으로 한 말이다. 이렇게 삶을 주님은 기뻐하신다. 윤리적 도덕적 삶을 햇빛 앞 촛불 같게 훤하게 빛을 비취는 삶이 내 희생에 비례한다.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은 나를 어둡게 만들 뿐이다. 덕망 없는 무례한 무지한 금수에 하락한다 할 것이다. 이러한데도 남의 일을 무시하고 나만 위해서 살아야 할까. 내 논에 남의 물을 대어 놓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