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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신비한 체험
기미히토 교수님 , 여행은 어떠셨습니까?'
너무 짧은 거리라 여행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짐을 꾸리면 피곤한 법이죠.
아닙니다. 정말 여기 오고 싶어 병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셨다면 원없이 많이 보고 가십시오.
모든 걸 알게 될 때까지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려면 한국 사람이 되셔야 할 텐데요.
못 될 것도 없죠.
하하하.
둘은 웃었다. 그러면서도 기미히토는 한 아이를 떠올렸다 어
린 시절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한국인 아이였다. 징용 온 노무
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 아이는 무척이나 일 본인으로 행세하고
싶어했다. 자신이 일본인 조종사의 아들이라고 거짓말하던 그
아이는 어느 날 자신의 신분이 탄로나자 수업 도중에 교실을 나
가버렸다. 다음날 학교에 와서 울부짖는 그 아이의 어머니를 보
고 기미히토는 그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을 알았다.
유년 시절 내내 기미히토는 괴로운 기억에 시달렸다. 그 아이를
놀리는 데 앞장섰던 것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제게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하는 것보다 무엇이 옳으냐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한평생 과학을 신봉하며 살아왔는
데 과학의 법칙 바만에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면 나는 인
생을 헛산 게 되고 맙니다. 무당이니 풍수니 하는 것의 정체를
파헤치는 일이 지금의 제게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김포공항에서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자동차를 탄 기미히토는
이제껏 해왔던 그 어떤 여행보다도 이번의 한국 여행이 중요하
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기미히토의 얼굴이 반대편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광선을 받아 한결 다부지게 보였다.
하토야마와 스기하라를 만나본 기미히토는 토우의 정체를 파
헤치려면 일본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는 곧 동경대학교의 조선사연구실을 찾아가 한국의 교수들을 소
개받았고 곧장 한국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토우와 그 배후의 조선의 힘을 밝혀내는 일이
인생의 숙제가 되어 있었다.
김일성의 죽음을 예언해서 유명해진 무당이 있지요?~
한국에 오기 전 나름대로 공부를 한 기미히토는 예정했던 관
광이 끝나면서부터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다. 그가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무당이었다
네, 있었지요.
그 구체적 과정은 어땠습니까?'
거기에는 그 예언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재미있는 일
화가 있습니다.
그 일화는 검증받은 것입니까?'
대학에서 국문학을 강의하면서 무속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변익중 교수의 눈길이 기미히토의 얼굴에 멎었다. 일화를 듣기
도 전에 객관적 검증의 여부를 물어오는 기미히토의 태세가 심
상치 않았다. 동경대학 조선사연구실의 교수로부터 얘기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기미히토 교수는 한국의 정신 세계에 상상 이상
으로 집착하고 있었고, 특히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무속적 일화란 것은 대개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인식되게 마
련입니다. 대개의 경우 있지도 않은 신통력을 선전하기 위해서
당사자가 지어내죠. 그러나 우연히도 이 경우는 기자가 개입돼
있습니다 아마 믿어도 될 것 같군요.
기미히토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번졌다 사실 기미히토 교
수가 집착하고 있는 것은 일화의 내용이 아니었다. 그는 그 형
식, 즉 비과학적인 것의 진실성 여부에 집착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전공인 컴퓨터를 제쳐두고 토우에 집착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기미히토 교수는 이 세계에 대한 자기 인식의 틀을 검증하고
싶었다. 이번의 여행도 사실은 너무도 철저히 과학 일변도로 살
아온 자신의 인생에 대한 중간 정검 같은 것이었다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 무당이 김일성의 죽음을 예언한 것은 김일성이 죽기 이틀
전입니다. 당시 김일성은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갖기로
되어 있었고,그는 묘향산의 집무실에서 한창 정상 회담 준비를
하던 때라 누구도 그렇게 갑자기 급사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랬지요. 그는 갑자기 사망했지요.
그 무당은 무속 연구를 하는 한 교포 여인의 방문을 받고 대
화를 하던 중 갑자기 영감을 얻어 김일성이 이틀후인 음력 5월
30일에 사망한다고 단언을 했던 겁니다.
김일성은 정말 음력 5월 30일에 사망했습니까?~
그랬습니다 정확하게 그날 사망했습니다.
음 교수님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믿느냐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마도 이 일화는 김일성이 죽고 나서야공개되
었겠지요?'
몇몇 사람 사이에 얘기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모두에게 알
려진 것은 김일성 사후겠지요.
왜 그 무당은 갑작스럽게 김일성의 죽음에 대해 얘기를 했을
까요? 또 들었다는 사람 역시 무속을 연구하는 사람이라 하셨
죠? 그렇다면 객관성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아까 얘
기하셨던 기자는 어디에서 등장합니까?'
기미히토는 철저히 파고들었다
그 무당이 불쑥 김일성의 죽음을 얘기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
실 그 예언은 몇 달 전인 1994년 4월에 시작됩니다. 그 무당의
집에 한 젊은이가 찾아왔습니다 젊은이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한 사람의 사주를 들이 밀었습니다.
변 교수는 기미히토에게는 철저히 논리적으로 얘기를 해야 한
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단순한 흥미의 수준이 아니라 기어코
진실을 가리고야 말겠다는 오기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그 사주를 이웃집 아저씨의 것이라고 했고, 그 무당
은 아무런 의심 없이 사주를 보고 점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무당이 풀이했던 점괘가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잠간만요.
변 교수는 책상 서랍에서 스크랩북 하나를 꺼내왔다.
병색이 짙고 실권에서 물러난 형국입니다 올해 음력 2월 아주
엄청나게 안 좋았겠는데요. 뼈 마디마디에 병이 침투해 보약을 먹더
라도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심장이 나쁘고 혈압이 높고 당뇨기가 있
습니다. 이 노인께선 빠르면 올해 음력 56월, 늦으면 동지섣달에
하직할 것 같습니다. 설사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목숨을 구하더라도
밖으로 나다니기 힘들 것입니다. 내년부터 이분의 권력은 다른 사람
에게로 갈 것입니다
사주 자체만으로는 어떻습니까? 어떤 운명을 타고난 사주입니
까?
생사 여탈권이 있는 사주입니다. 임금님 사주이지요
여자 관계는 어땠을 것 같습니까?
-복잡했을 것입니다. 하나 둘이 아닙니다. 한 번 상처해서 두 번
장가는 갔겠는데 세 번. 네 번 장가가지는 못합니다
자식은 어떻습니까?
-제 점에서 나오는 자식은 아들만입니다. 딸은 나오지 않습니다
죽은 아들을 포함해서 네 명이었습니다. 죽은 아들은 하나 같습니다
실상은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눈 하나 깜짝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부모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부모는 대단한 분은 아니었겠습니다.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셨
는데요. 이분은 부모 덕을 입은 게 없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 격으로
혼자 일어난 운세입니다. 부모에게서 교육을 받는 식으로 평범하게
자랄 수 없었기 때문에 굴욕감 등을 느껴 원래 착했던 심성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 젊은이는 기자였고, 사주는 김일성의 것이었던 모양이군
요?'
기미히토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기자는 다시 말없이 한사람의 사주를 내놓았습
니다.
변 교수는 다음 장을 펼쳐 보였다.
아까 그분과 부자 관계인가요? 아버지가 없으면 큰일을 할 수
도 있는데 아버지의 압력으로 꿈을 펴지 못하겠습니다. 재물은 있으
나 덤으로 딸려가는 사람 자기 뜻대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기
를 펴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버지에게 순종. 복종은 하겠지만 많이
부딪힐 것입니다 천심은 좋은데 아버지가 너무 큰 분이라 지
금 이분은 사형 선고가 내렸다고 할 정도로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이분의 사주는 아버지만 못합니다
그 사주는 누구의 것이었습니까?'
김정일, 김일성의 아들이죠.
음
사주와 예언이 얽혀 있는 얘기였다 그러나 기미히토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과학의 시각으로 보면 사주도 예언도 믿
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둘 중의 어느 하나만 진실이라 하더
라도 과학만을 신봉해 온 자신의 지식 체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
는 일이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 무당은 사주를 바탕으로 점을 쳤습니
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같은 사주를 보고 점을 친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그 기자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다른 점술가
에게 그 사주를 가지고 가서 물었습니다. 역시 기자의 신분과 사
주의 주인이 김일성이라는 사실은 숨겼죠.
올해 돌아가시겠는데요. 올 음력 7월이나 9월을 넘기시더라도
내년 7웜이나 9월에는 돌아가십니다 사고로 돌아가시는 것은 아니
고 노환의 형태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이분의 자식은 몇이나 되겠습니까?
-점괘대로 하면 죽은 자녀를 포함해서 7남매입니다. 틀렸다면
숨겨놓은 자식이 있겠지요. 아들과 딸이 각각 한 명씩 죽은 것 같습
니다.
부모 운은 어떻습니까?
-이분의 부모는 이 양반만 못합니다. 이분은 그냥 농가에서 태어
났겠는데요. 개천에서 용 난 모습입니다. 이분을 낳은 부모가 있고
기른 부모가 따로 있겠습니다
결혼 생활, 여자 관계는 어떠했겠습니까?
요 새끼(동자신의 목소리이다) , 여자라면 모두 관계하는 놈이구
나. 계집질을 많이 했겠는데. 관계를 가진 여자, 즉 부인은 일곱인데
이미 셋이 죽었습니다. 머지않아 네 번째 부인이 죽는데 그분의 넋이
남편을 데리고 갑니다. 넷째 부인의 죽은 넋이 남편을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사주대로라면 이분의 운명은 91세까지이나 죽은 부인이
데려가, 사고는 아니지만 명대로 못 사는 것이기 때문에 비명이라고
도 할 수 있습니다.
-사주 자체로는 어떤 일을 할 사람입니까?
-아주 큰일을 할 사람입니다. 나랏님이 되었더라도 높은 나랏님
이 되 있겠는데요. 재물이 있고 여자가 많고 장수하고 권력을 잡을
수 있으니 아주 큰 나랏님이 될 사주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품었던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겠습니다. 이분이 한 일은 큰
것이지만 자기가 품은 뜻을 다 이루지는 못합니다
성격은 어떻습니까?
다양합니다. 이분의 통솔력은 인자함과 결단력에서 나왔습니
다. 원래는 인자한데 안 되겠다 싶으면 결단력을 발휘하는 분입니다.
또 수하에 부하가 잘 들어와서 삼합(三合)을 갖추었습니다. 인자함
과 결단력, 좋은 부하의 삼합이 갖춰진 형국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기울었습니다. 백퍼센트 정도의 확률로 금년에 돌아가시겠습니다.
이 사람이 김일성인데 전쟁을 일으키겠습니까?
못 일으킵니다.
이 기자는 다시 김정일의 사주를 넣었습니다.
빛이 나는 일이 있겠습니다. 감옥소에 있는 사람이면 출감을 하
겠고 지위에 있는 분이면 승진하겠습니다. 날개 다는 형국입니다. 그
러나 아버지만 못한 사주입니다
- 월간조선 1994년 4월 이정훈 기자
각각 다른 두 사람의 무당이 본 점괘는 놀랍도록 일치했다. 기
미히토는 머리털이 쭈뼛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
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무당들 아니라 누가 봐도 건강하고 장
수한다고 말하기에는 김일성의 나이가 너무 많지 않았는가.
기미히토는 이런 정도의 미신이나 우연에 물러서서는 안 된다
고 생각했다. 자신이 태어나 지금까지 신봉해 왔던 과학이 여기
서 무너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사주나 팔자에 관한 책을 보고 예언을 하는 것입니
까?'
책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의 영감에 의해 예언을 하는 경
우가 많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특출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
니까? 타고나는 것입니까?'
타고나는 것은 아닙니다. 대대로 무당의 가계를 잇는 세습무
가 있긴 하지만 거의 없어지고 지금의 무당들은 대부분 강신무
입니다.
강신무란 것은 무엇입니까?'
문자 그대로죠. 신이 내려 무당이 되는 것입니다.
신이 내린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강신 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먼저 무병을 않습니다. 이 병은
매우 독특해서 까닭 없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합니다. 대개 밥을
먹지 못하고 몸이 말라 허약해지며 마음은 들떠 안정하지 못하
고 꿈이 많아집니다. 결국 미쳐 산이나 들, 거리를 헤매고 다니
면서 중얼거리죠. 대개 상당 기간 이런 상태로 지내게 됩니다.
병원에서 고칠 수 없나요?'
병원에 가면 오히려 증세가 악화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의사
들은 병명을 대찌 못하고, 심하게 앓는 경우에도 치료를 포기하
고 집으로 돌려보낼 따름입니다. 결국 환자는 치료를 포기한 상
태에서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여 무당에게 가봅니다. 무당은 첫
눈에 진짜 정신질환자와 신이 들린 무병환자를 구분합니다 진
짜 정신질환자에게는 잡귀를 쫓는 굿을 하지만 이 무병환자에게
는 내림굿을 해서 무당이 되게 합니다 제자로 받아들이기도 하
지요.
그 다음부터 특출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무당이 가진 특출한 능력은 어떤 것들입니까?'
기미히토가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냈다.
원하신다면 한번 보러 갈까요?'
기미히토의 마음을 읽은 변 교수가 흔쾌히 제안했다.
네. 정말 한번 보고 싶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찔 변 교수는 기미히토를 데리고 나섰다. 서울
근교의 한 산이었다. 기슭을 지나 조금 똘랐을 즈음,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려왔다. 위로 오를수록 북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마침내 가파른 산길을 돌아들자 아침인데도 촛불을 두 대 밝혀
둔 바위가 보였다.
북소리 사이사이로는 간간이 여자의 흐느낌이 들렸다 그 속
에 역시 여자의 것이면서도 굵고 탁한 목소리가 때로는 높게, 때
로는 낮게 섞여 나오고 있었다. 굵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무당이
었다.
무당은 두 가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 번은 흐느끼고 있는
여자에게, 또 한 번은 누구에겐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열심히
묻고 있었다.
지금 저 무당은 혼을 불러놓고 대화를 중계하고 있습니다.
혼과 대화를 한다구요?'
기미히토는 변 교수의 얘기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
상에 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설사 있다 한들 살아 있는 인간이
어떻게 대화를 한단 말인가. 강신무가 앓는다는 무병은 그렇다
치더라도 혼을 불러 대화를 한다는 사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그러나 변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설명을 계속했다.
지금 목소리가 바뀐 것은 다른 혼을 불러냈기 때문입니다.
무당은 이제 남자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남자
의 목소리를 듣자 젊은 여인의 흐느낌이 더욱 서러운 통곡으로
변했다.
아마 죽은 부친의 혼을 불러낸 것 같군요.
그런데, 이상하군요. 저 여자무당이 이젠 남자 목소리를 내
고 있지 않습니까?'
단순한 남자 목소리가 아닙니다. 죽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내
는 거지요.
뭐라구요? 죽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네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평소에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의 동작이
나 습관이 그대로 배어나오기 도 합니다.
기미히토는 어떻게 추스를 수 없는 커다란 혼란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부정하고 싶지
만 눈앞에서 번연히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일본에도 수많은 귀신이 있고 그들을 모시는 신사가 있지만
이렇듯 신비한 체험을 한 적은 없었기에 기미히토는 귀신이란
그냥 장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목전에서 벌어
지고 있는 광경을 어떻게 장난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젊은 여인은 더욱 큰소리로 통곡을 하더니 종내는 목을 놓아
버렸다.
오십대로 보이는 무당은 통곡하는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야
릇한 목소리로 굿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넋을 모시러 나가세
넋을 모시러 나가세
피기 젓대 사민 육각 징 장 참겨들고
영정 낵기 가자스라
혼정 낵기 가자스라
子망제 앞을 실고 신망제 뒤를 따라
망세님의 넋을 모시러 가자스라
이윽고 무당은 여인을 부축해 일으키더니 잠시 나지막한 목소
리로 무언가를 설명하면서 말했다.
화덕벼락장군님, 이제 술 한잔자시고 돼지머리 한점 드시고
화를 풀어주셔요. 앞으로는 조상님 잘 모시고 부모 잘 모시고 산
다고 맹세했으니 제발 화를 푸시고 이 불쌍한 젊은 여인 잘 좀
보아주셔요.
연방 춤을 추며 빌던 무당은 갑자기 신이 들렸는지 삼지창을
들어 돼지머리를 푹 찔렀다. 시퍼렇게 갈아둔 삼지창은 관통하
다시피 돼지머리를 푹 뚫고 들어가 박혔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
이 떡시루를 세우고 그 위에 널판지를 깔자 무당은 삼지창을 세
우더니 그 위로 펄쩍 뛰어 올라갔다
용케도 쓰러지지 않고 그 위에서 한참 춤을 추던 무당은 그 밑
으로 남자 두 사람이 커다란 작두를 놓고 어깨로 받치자 다시 작
두날 위에 서서 연신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춤을 추었다. 날카
로운 작두 위에서 맨발로 펄쩍펄쩍 뛰면서 춤을 추는데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것이 기미히토는 너무나 신기했다.
저 것은 연습으로 가능한 건가요?~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마 신이 통해서 저런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군요.
신이 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저런 일을 하는 무당은 나름대로 자
신감이 있어서 저 시퍼런 날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모
시는 신이 이런 것쯤이야 해주겠지 , 보호해 주겠지 하는 자신감
말입니다. 일단 그들이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다치기는커녕 다
른 사람까지 그렇게 전염을 시키지요.
다른 사람을 전염시킨다구요?~
나는 그런 모습을 수없이 봤습니다. 평범한 동네 여자 중에도
무당 옆에서 구경을 하다가 신이 터지면 같이 올라가 춤을 추어
대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이 한 번도 추어 보지 못한 춤을 저 시
퍼런 작두 위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정신없이 추어 내는지 두 눈
으로 보면서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더군요.
무당이 아닌 보통의 여자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것은 알고 보면 별게 아니죠.
변 교수의 말에 기미히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무슨 소립니까, 별게 아니라뇨?'
신이 내리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거죠.
기미히토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그런데 무당들이 모시는 신은 어떤 신입니까? 전지전능하고
천지를 창조한 유일신입니까?'
아닙니다. 처음 내림굿을 할 때 모시게 되는 신이지요. 칠성
님, 서산대사, 사명대사, 천신대감, 부처님, 옥황님, 일월성신,
화덕벼락장군, 대신할머니 , 산신령 등 다양합니다.
첫댓글 넘 길어서--- 이모두가 한가지 마음을집중한다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