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산
미 해군
도산 안창호의 딸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미국 해군 최고의 여성 포격술 장교로 복무하였습니다.
안수산은 191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로스앤젤레스에서 도산 안창호의 3남 2녀 중 셋째이자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헌신적인 독립운동 활동에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고교시절 스포츠에 재능을 보여 이후 대학에서 대학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여자야구 선수로 활약하였습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인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아버지의 뜻을 이어 일본과 싸우기 위해 자원입대를 하게됩니다.
당시 미국 내에 만연한 인종차별 때문에 입학이 한차례 거절되었으나 끝내 사관 후보생이 되었고, 1942년 미 해군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군인이 되었습니다. 1943년에는 성차별을 딛고 미 해군 최초로 여성 포격술 장교로 임명되었습니다. 종전 후인 1946년에 전역하여 흥사단 및 3.1여성 동지회 활동 등의 한인 교민사회의 권익 신장에 힘썼습니다.
"일본에 맞섰던 아버지의 싸움을 이어가기 위해 미 해군에 입대했다. 당시만 해도 여성에다 동양인이라는 약점 때문에 힘겨웠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해서 이를 악물고 일했다"
인종차별로 인해 '키 작은 아시아 여성'이라는 편견에 늘 부딪혔지만, 결국 대공포병 장교로 활약한 인물입니다. 또한 인종차별로 6개월간 암호해독 업무에서 배제되었으나, 추후에는 국방 정보 분야에서 일하며 부서장을 맡아 300여 명의 요원을 거느리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아버지 친구분과 함께 LA 동쪽 윌슨 산으로 소풍을 갔어요.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다가 보니 아버지가 그 친구분과 함께 애국가를 쉴 새 없이 부르셨어요. 계속해서 부르고 또 부르고… 그러다 결국에는 엉엉 소리 내서 우시더군요. 저도 영문도 모른 채 그냥 슬퍼서 같이 따라 울었어요. 아마 그때야 아버지의 삶을 언뜻 이해하게 됐는지 몰라요."
안수산은 미국에 살면서도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훌륭한 미국인이 돼라. 그러나 한국인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아버지 도산 안창호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11세에 생이별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헌신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해나간 안수산. 남성 위주의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딛고 자신의 위치를 개척한 인물로서 2016년 3월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이름 없는 여성 영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안수산은 도산공원 건립 계획이 진행되면서 자신이 소장하던 도산 관련 자료를 한국에 기증해 조국의 독립기념사업을 도우며 한인사회를 위해 헌신하기도 했는데요, 2015년 100세의 나이로 별세하면서 그녀가 남긴 한마디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했다. 무슨 일이든, 어디에서건 절대 겁을 낸 적은 없었다."
-2014년 KTLA와의 인터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