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올해 소 전염병이 대단하여 살아남은 소가 얼마 안 되는데
도살은 종전과 똑같이 하고 있어 장차 종자가 끊길 염려가 있습니다.
지난 정축년 소 전염병 끝에는 소를 도살한 자는 살인을 한 죄와 같이 취급하도록
법령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이에 따라 절대 금해야 하겠습니다.“
이는 《현종개수실록》 9권, 현종 4년(1663년) 9월 15일 기록입니다.
조선시대에 소는 농경 사회의 핵심 생산수단이자 가구의 가장 큰 자산이었으며,
국가적으로는 귀한 대접을 받는 동물이었습니다.
동시에 ‘소고기 탐식(探食)’은 나라의 강력한 금지령마저 무력화시킬 정도로 뜨겁고 유별났습니다.
조선 후기 양반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겨울철이 되면 소고기 화로구이 파티인 ‘난로회’를 즐기는 것이 엄청난 유행이었습니다.
음력 10월 초하루가 되면 숯불을 피운 화로 위에 번철(프라이팬)을 올리고,
소고기를 기름, 간장, 파, 마늘 등으로 양념해 구워 먹었습니다.
이는 김매순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나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조선 후기 소고기 탐식을 즐긴 양반들의 ‘난로회’(인공지능 ‘제미나이’ 생성)
연산군은 소고기 맛에 중독되어 법을 무시하고 매일 소를 잡게 했으며,
효종 때는 가뭄이 들어 우금령을 내리자, 신하들이 "정작 대궐 안에서도 날마다 소고기를 먹으면서
백성들에게만 금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상소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의 영어나 프랑스어는 소고기 부위를 25~35개 정도로 나누지만,
조선 시대 전통 조리서 등을 보면 소고기 부위를 무려 120여 가지로 잘게 나누어 맛을 음미할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