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목)
아침에 순이네민박집에서 소개받은 인근 7번가해물탕 식당에 갔더니 아주 싹싹한 여사장(황미숙)이 반갑게 맞아준다. 고구마밭에서 순을 뜯다가 민박집으로부터 연락받고 왔다면서 해물된장찌개를 가리비 조개와 홍합을 넣어서 맛있게 끓여 내놓는다. 황사장의 유려한 입담에 웃음이 절로 난다. 구조라 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상세히 설명해준다. 이곳 지형이 자라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조라’라고 했는데 하늘에서 그 모습을 보면 자라 머리에 해당하는 수정산이 바다를 향해 목을 길게 뻗고 있고 목의 왼편은 구조라선착장, 오른편 목은 구조라해수욕장이다.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민박집에 돌아와 짐을 챙기고 있는데 유람선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오늘은 유람선 배편이 모두 취소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이곳에 온김에 오전 중에 외도와 해금강을 둘러보려고 예약했었다.
뜻밖에 시간 여유가 많이 생겼다. 배낭을 메고 나와 해변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쉰 후에 구조라성이 있는 수정산을 오른다. 가파른 산길을 용을 쓰며 올라가니 산정에 제법 널찍한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발 아래 왼편에는 망산 바로 앞에 내도(안섬, 높이 131m)가 지척에 있고 그 뒤로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외도(높이 80m) 그리고 오른편으로는 둥그런 봉우리의 해금강(높이 161m)이 육지와 조금 떨어져 서 있다. 수평선 너머 먼 바다에는 대마도(높이 173m)가 길게 누워 있는 모습이 아련하게 보인다. 수정산은 수정석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서낭당과 조선시대에 왜적을 막기 위해 만든 구조라성이 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멋진 경관을 즐기고 내려오니 산중턱 쯤에 견고한 성벽이 나온다. 구조라성은 조선시대 왜적을 막기 위해 전방의 보루로 축조된 것으로 인근 지세포성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높이 4m, 길이 860m이었으며 현재는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허물어진 성벽 아래 시원하 대나무숲을 통과하니 구조라해수욕장 모래사장이 길게 뻗어 있다. 해수욕장을 가로질러 언덕을 넘어가니 망치해변이다. 해변 언덕 생선구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한참 쉰 후에 뒤편 산을 또 넘어간다. 망치고개를 거쳐 학동고개까지 산길을 약 5km 걸어서 오늘 목적지인 23코스 종점인 학동고개에 도착했다. 오늘은 23,000보 14km를 걸었다.
9월 18일(금)
이번 여행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지난 나흘 동안은 아주 맑고 쾌청했다. 거제도에는 8개의 명승지가 있는데 거제1경은 해금강, 거제2경은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거제3경은 외도 보타니아, 거제4경은 학동흑진주몽돌해변, 거제5경은 거제도포로수용소, 거제6경은 동백섬 지심도, 거제7경은 여차홍포해안비경 그리고 거제8경은 내도와 공곶이이다.
오늘 걷는 23코스는 거제 1,2,4경이 있는 곳이다. 또한 학동은 동백나무숲과 팔색조 번식지로 유명하다. 출발점 학동고개에서 산길을 약 5km 걸어서 거제도에서 제일 높은 가라산 정상(585m) 봉수대에 도착했다. 가라산 봉수대는 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조망이 가능한 최적의 봉수대 장소로 특히 맑은 날에는 대마도까지 조망이 가능하여 침입하려는 왜구의 동태를 가장 먼저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봉수는 기간통신망으로 운영되었는데 봉수의 신호는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의 개수로 구분했다. 즉 매일 평상시에는 한 개, 적이 출현하면 두 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개, 국경을 침범하면 네 개, 적과 교전이 이루어지면 다섯 개를 올렸다. 봉수대 앞 바다에 왼쪽부터 내도, 외도 그리고 해금강이 나란히 내려다 보인다.
가라산에서 내려와 해금강이 바로 앞에 보이는 도장포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의 원래 지명은 ‘띠밭늘’이었으나 네델란드풍의 풍차가 세워지면서 2002년부터 ‘바람의 언덕’으로 부르게 되었고 각종 TV 드라마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비옷을 꺼내 입고 비가 흩뿌리는 풍차가 있는 언덕 위에 서니 바람이 세차서 바로 서 있기가 힘들다. 바람의 언덕 앞에 우뚝 서 있는 해금강의 원명은 ‘갈도’인데 자연 경관이 뛰어나 1971년 명승 제2호로 지정되면서 ‘거제 해금강’으로 등재되었다. 해금강에는 기기묘묘한 기암들(사자바위, 미륵바위, 촛대바위, 신랑바위, 해골바위 등)로 둘러싸여 있고 중국의 서복(서불)이 진시황의 불로장생초를 구하러 왔다 하여 ‘약초섬’으로도 불린다. 또한 수십 미터 절벽에 새겨진 만물상과 열십자로 드러나는 십자동굴과 사자바위에서의 일출 모습이 장관이다.
해금강 조망을 끝내고 함목해변과 다포항을 거쳐서 23코스 종점인 저구항에 도착했다. 오늘은 17,000보 10km를 걸었다. 여기서 이번 여정을 끝내고 점심 식사 후에 버스로 고현터미널로 가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 도보여행에서는 5일간 총 16만 보, 100km 가량 걸었다. 힘든 길을 함께 즐겁고 안전하게 걸어온 네 명의 도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베트남의 평화사상가 틱낫한 스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번 여행기를 끝낸다.
“우리는 대개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 걷습니다. 그러다 보면 걷는 이 순간은 사라지고 오직 목적지만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걷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어디엔가 도달하기 위해서 걷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발걸음 한걸음마다 평화로움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아름다운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축복입니다. 평화는 바로 여기 지금,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 보는 모든 일에 깃들어 있습니다.” 끝
첫댓글 5일동안의 여정을 무사히 마친 다섯명의 젊은(?) 늙은이들의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힘든 여정에도 게으른 친구들을 위해 장문의 여행기를 올려준 희국옹께 감사! 또 감사!!
대단한 강행군이네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