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진화론에서 자연선택을 통한 解剖學的 구조적 본능은 당연한 것이다.
자연선택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쟁이다. 동물과 식물, 종과 종, 개체와 개체, 이루 말 할 수 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그 중에서 생존을 위한 번식은 더욱 치열하다. 진화를 통한 삶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진화론적 자연선택은, 곧 멸망과 생존의 갈림길이었다.
그 중, 번식을 위한 자연선택은, 더욱 놀라운 경쟁이 벌어졌다.
특히, 인간이, 현생 사피엔스로 살아남기 위한 성적 투쟁은 다른 종과의 싸움보다 섹스 상대방 즉, 아내와의 투쟁이 더 눈물겹다.
인간의 남녀, 포유류의 숫컷 암컷의 자손을 남기기 위한 전략은, 유전자 프로그램에서 부터 구분된다. 물론 다른 생물과 같은 자연선택의 결과다.
인간 남녀의 번식과 생존을 위한 진화 조건이 다르다는 이 잔인한 사실이, 인간의 역사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남녀의 영원한 딜레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거나 , 부화된 알이 부모의 도움 없이는 살아날 확률이 0퍼센라면, 이제 남자와 여자, 숫컷과 암컷의 갈등이 나타난다.
둘 중 어느 한 쪽이 아이의 양육을 떠넘기고 다른 섹스 파트너룰 찾아 떠날 수 있다면, 자신의 번식을 위한 유전적 이익은 증가하고, 배우자의 그것은 감소할 것이다.
결국 야비하게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떠난 남자의 유전적 이익은 진화론적 목표에는 가까워지는 것이다.
결국, 생존과 번식을 위한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여자 혹은 암컷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릴 본능은 존재하지만, 체내수정에서는 남자 혹은 수컷의 背信을 감수 할 수밖에 없다. 남자 와 수컷은 수정란을 버리고 가는 것이, 혹은 태어난 아이를 버리고 가는 것이, 아내와 아이를 내팽게치고 도망가서 바람을 피우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더욱 많이 후대에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 혹은 암컷의 난자는 남자의 정자와는 다르게 크다.
수정이 되었을 때 수정란이 자랄 수 있는 영양물질과 대사물질을 포함한다. 精子의 최소한 수백만 크기의 卵子를 생산해서 정자와 결합해서 수정란을 만들었고, 태어나더라도, 수정란을 성체가 되도록 젖을 먹이면서 키워야 했다.
결국, 번식을 위한 진화론적 자연선택의 결과, 남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트릴 수 밖에 없고, 여자는 수정란을 키우는 것이, 자연선택의 결과 인 것이다.
다른 종의 겨우는 다르다. 태어난 수정란이, 부모의 도움 없이도 생존할 수 있다면, 그리고 암컷의 난자가 숫컷의 정자처럼 흔하지 않는 경우라면, 둘 다 수정란을 내팽게치고 도망 갈 수 있고, 실제로 도망가도 아무 문제가 없다.
체외 수정을 하는 암컷 수컷은, 수정란이 태어나면 각자 알아서 사라지고, 각자 또 다른 수정에 몰두한다. 어류나 양서류의 경우, 그것이 일반적인 進化論的인 현상이다.
체내 수정을 하는 포유류 조류의 경우는, 다양하다. 거기에는 자신들의 수정란을 개체로 어떻게 완성 시킬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중요한 것은, 수정란을 지키는 것이, 암수 각자 자신의 유전자를 얼마나 많이 전달 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들의 몸 속에 프로그램 되어 있는 생식 방법에 따라 행동한다.
일반적으로 哺乳類와 鳥類는 체내 수정을 하고 나서의 결과물인 受精卵 또는 胎兒에 대해 서로간에 심각한 경쟁을 한다. 오로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진화론 적인 정당한 방법이다.
조류에 있어서도 수정란을 암수가 같이 키우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가 많으나, 예외의 경우도 수 없이 많이 발견된다. 포유류의 경우도 마찬가지. 거기에도 암수간의 놀랄만한 경쟁이 숨어 있다.
우리가 잉꼬부부라고 믿는 원앙새의 경우 부부가 같이 새끼를 돌보며 사이좋게 평생을 살아간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아니다.
암수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능한 광범위하게 퍼뜨릴 기회를 노리고 있다.
심지어 암놈이 수정란을 품고 있는 시기에도 숫놈은 먹이를 구하러 가서 다른 둥지에 알을 품고 있는 다른 암놈과 순식간에 사랑을 나누고 돌아온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암놈 역시 아무런 저항이 없다. 우리가 알던 원앙은 거짓말이다.
인간의 경우도 역시 별로 다르지 않다. 조사에 의하면, 정상적인 부부의 5에서 15프로 정도가 혼외자를 낳는다는 것이다. 조류의 경우는 30 프로 정도다. 만약 태아를 낳지 못하는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외도의 비율은 더 높을 것이다.
여자는 태아를 낳고 태아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야 한다. 그것은 이미 난자를 만들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난자는 정자에 비해 수백만에서 수조배 덩치가 크다. 수정 후 수정란이 자라기 위한 영양물질과 대사물질이 난자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자는 난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纖毛運動만 잠깐 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태아가 태어나면, 대부분 인간의 경우는 여자가 태아를 키울 수 밖에 없는 생리학적 특성이다. 그것을 우리는 모성이라 부른다. 그러나 유전자에는 모성 유전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모성은 자연선택이 아닌 사회적 관습이거나, gender 적 남녀 구별이 될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서는 태아를 돌 볼 명분과 유전적 이유가 상당히 적다.
남자의 경우 수정 후, 차라리 도망가서 다른 여자의 난자를 찾아헤매는 것이 유전적으로 이익이다.
여자는 수정 후 뱃속에서 10개월간 수정란을 키우고, 태어나서도 역시 오랜 동안 태아를 올바른 성체로 완성 시키야 한다. 그것에 남자가 도움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아닌 경우도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여자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남자는 바람을 피울 수도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모든 것이 진화론적 번식 프로그램에 내재 되어 있다.
진화론적으로 남자는 여자의 임신기간과 포유기간에 아이를 같이 키우는 것 보다 바람을 피우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바람직하다.
남자의 정자는 여자의 포유기간 동안 전 세계 여자 전부를 임신기킬 수 있는 숫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남자 역시 신체적으로 태아를 같이 키우게 되어 있다. 남자에게도 수유를 할 수 있는 유선이 숨어 있다. 실제로 태아에게 젖을 먹이는 남자도 간혹 발견되기도 한다.
여자 역시, 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정란을 만들고, 태아를 양육하는데 머믈러야 하는데만 생식 유전자가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번식을 위해서는 별로 효과가 없는 수정란을 뱃속에 품고 있는 기간 뿐만 아니라, 태아를 養育하고 나서도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당위성이 존재한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바람을 덜 피운다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여자도 유전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려야 하는 당위성이 존재하고 인정해야 한다.
다만 인간사회는 여자의 외도를 철저히 단속하고 감시해 왔을 뿐이다. 심지어 여자에게는 성행위 조차도 금기시 되어 왔다. 여자는 오로지 수정란을 만들고 태아를 키우기 위한 것만이 성적 당위성의 전부였다.
여자도 바람을 피울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고, 피우는 것이 남녀 만의 유전자가 아닌 더욱 다양한 遺傳子를 남기는 것이 인간에게도 이익이다.
不倫은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계속 될 것이다. 불륜은 유전자의 번식 뿐만 아니라, 우성 유전자와 우성 突然變異의 확률을 높이는 기회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바람직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간에 監視하거나 執着하거나 拘束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서로가 자유롭다면, 유전자의 多樣性은 증가하고, 夫婦간의 화합에도 좋은 일이다.
에스키모인의 경우는, 손님이 오면, 자신의 아내와 同寢을 시킨다.
그것은 기후와 지리적 특성상 외부인을 만나기도 힘들고, 그래서 近親 結婚을 할 수 밖에 없어, 기형아가 탄생될 확률이 많아, 외부의 유전자를 받기 위한 고육지책인 것이다.
유전자의 다양성은 번식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자연선택을 좀 더 슬기롭게 하기 위함이다.
중국 오지의 모소족은 여자가 남자를 일년에 한 번씩 바꿀수 있는 축제가 있고, 그것은 유전자 다양성을 위한 劃期的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