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핑계로성공한사람은김건모뿐이였으나'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돈 계산에 영 소질이 없는 나는
걱정을 한가득 안고 첫 출근을 했다.
그동안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왔지만
카운터는 대학시절 한 달 남짓 일한 게 전부다.
며칠간의 인수인계가 끝나고
혼자 일을 하며 참 많은 실수를 했다.
시재와 정산 금액이 맞지 않았고,
손님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으면 허둥지둥됐다.
이마와 코에 땀이 맺을 정도로 당황하여 일은 더 꼬였다.
무슨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급한 성격을 가졌지만 행동은 굼뜬 탓에
마음만 앞서서 더욱 정신이 없었다.
암기로 재빠르게 계산을 못 하는 까닭에
연신 계산기를 두들겨댔다.
손님들께 고지해야 하는 말을 까먹기도 했다.
그렇게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3주를 보냈다.
아직도 실수를 한다.
그러나 그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어떤 날은 아무 실수도 하지 않고 퇴근하여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기도 한다.
여전히 숫자 ‘0’ 하나도 빼지 못하고 계산기를 두들기고
포스기를 찍을 때 버벅거리기는 하지만.
손님이 몰려도 당황해서 땀이 날 정도는 아니며
계산이 맞고 또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덤벙거리고 잘 잊어버리는 단점을 보완하고자
할 일 목록을
핸드폰 화면에 고정시켜주는 어플도 다운 받았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을 일하지만 계속 해야 할 일들을 상기시키고
확인하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예전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회사를 다니며 일에 대한 칭찬을
들은 적도 없고 노력한 적도 없다.
실수를 해도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고, 또 실수를 했다.
실수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저 ‘오늘도 예쁘네~’ 라는 칭찬과
참 밝고 친절하다는 말들에 교만하게 회사생활을 했다.
밝고 친절하다는 성격의 칭찬을
내 일처리의 칭찬으로 착각한 것이다.
회사는 그저 인형처럼 화장을 하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몸에 꽉 붙는 원피스를 입고 앉아서
웃기만 하면 되는 곳이었다.
마주치는 직원들과 시시한 농담이나 하고
싫은 사람에게 일부러 못되게 구는 곳이었다.
이제 나의 머리는 길지 않다.
꽉 붙는 원피스를 입어본지가 언제인가.
간단한 화장만 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출근을 한다.
고작 파트타이머 아르바이트에
뭔 이런 정성이냐는 이도 있겠지만
지금 일 하는 이곳 역시
내가 거쳐 가는 나의 삶의 일부분이자,
과정이기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 하는 연습을 한다면
큰일에는 더욱 최선을 다 하게 될 것이다.
회사를 다니게 된다면 또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고
내 자신을 자책하고 자괴감에 빠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들은
무언가를 시작할 때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빠른 사람도, 느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균적인 시간이 지나면
느린 사람도 점차 제 몫을 해낼 것이다.
일을 뛰어나게 잘 하지는 않더라도
제 몫을 해낸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은,
먹고 사는 일은 결코 시시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을 해온
사람들을 대단히 존경한다.
나의 성향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기에 더욱 존경한다.
수년, 수십 년간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결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깊은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져있을 동안에도
내 친구들은 계속 일을 했다.
그래서 나는 정서적 아픔의 경험을 한 내가 더 고매한
영혼과 정신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친구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몫을 해내기 위해,
내가 침대에만 누워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있을 때도
그들은 울면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방을 크게 맞은 것이고
친구들은 매일 매일 작게, 작게 잽을 맞고 있었던 것이다.
실수를 한 가득하고 자괴감에 빠져 퇴근 한 어느 날.
나는 새로 배우기 시작한 복싱을 하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복싱장을 향했다.
마음이 무거워서인지 몸도 잘 따라주지 않았다.
줄넘기에 번번이 발이 걸렸다.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샌드백을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관장님은 왜 그렇게 심각하게 운동을 하느냐고 하셨지만
실수의 나날들 속에서 나는 복싱과 기도에 의지했다.
(사실 술에 의지한 날이 더 많지만)
복싱이라도 잘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느님께 나의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시라고 많이도 기도했다.
그렇게 샌드백을 내리치다가
문득 내 몸짓만한 샌드백을 꼭 껴안았다.
어느 나라에서 코로나로 힘든 국민들이 나무와 포옹 하는
캠페인을 한다는 것을 TV로 보고 난 직후였다.
샌드백을 나무라고 생각하고 삼십초 간 꼭 껴 앉았다.
‘괜찮니?’
‘괜찮아’
샌드백의 무게와 감촉에 위로를 받던 날들이었다.
내 주먹의 힘이 내는 소리로 자괴감을 떨쳐버리려고 애쓴 날들 이었다.
실수해도 된다.
그건 우리가 아직 배워야 할 것, 경험할 것들이 많이 남았음을 뜻한다.
우리는 아직 안배우거나 못 배운 것들과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한 가득이다.
여행 가고 싶은 나라
해보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
읽어야 할 책, 봐야 할 영화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참 다행이다.
아직 젊다는 증거다.
서툴러도 된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계산기가, 핸드폰이, 컴퓨터가 있다.
메모지와 펜이 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볼 사람이 있다.
시간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배신한다면,
그래. 한두 번 배신 당해주자.
백년 넘게 살지도 모르는 인생에서
한두 번, 아니 세 네 번, 열 번의 KO를 당해도 괜찮다.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다시 일어날 힘을 가지고 있다.
도저히 혼자서는 일어날 수 없다면
가족이나 친구를 찾거나
병원에 가서라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은 결코 수치스럽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 도움들로 다시 일어나면
우리는 예전의 우리처럼 넘어져버린 누군가들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더 친절하고,
깊고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더 뛰어야 할 경기가 많이 남아 있다.
오늘도 비장한 표정으로 손목에 붕대를 감고
글러브를 낀다.
원투 원투
원투원
잽 잽 투
나의 친구 샌드백을 3분간 힘껏 내려친다.
30초의 시간이 지나고 라운드는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눈을 부릅뜨고 샌드백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참 괜찮았다.
첫댓글 글 너무 좋다 위로받고 가는 기분이야
글 너무 좋다 올려줘서 고마워ㅠㅠ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은 결코 수치스럽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 도움들로 다시 일어나면 우리는 예전의 우리처럼 넘어져버린 누군가들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장 정말 위로가 된다 여시야...
고마워 좋은 글 읽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너무 좋은 위로가 된다..
글 출처 알 수 있을까? ㅠㅠ 개인블로그에 퍼가고싶어 물론 비공개로
너무 잘 써서ㅠㅠㅠㅠ눈치채지 못했네ㅠㅠ고마워 여시 너무 위로가 되는 글이야 공유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10.01 22:14
일 적으로 고민이 됐었는데 고마워ㅠㅠㅠ
많이 위로받고가 고마워 여시 또 읽으러 올게 괜찮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눈물난다 ㅜㅜ
악토버 ㅡ 로맨스 노래가 틀어져있었는데 이 글에 읽으니까 좋네
좋은 글 공유해줘서 고마워 좀 이따 다시 정독할래
진짜 삭제하지 말아줘 ... 진짜 너무 너무 너무 좋다
읽다 눈물났어. 다음주 출근 앞두고 쌓인 일, 가서 또 얼마나 잘해내기위해 아등바등할 내가...ㅠ진짜 덕분에 위로받고가
위로받고간다 고마워,,ㅜㅜ
흙ㅠ 글좋다
고마워
글 너무너무 좋다 많은 위로가 되었어 정말 고마워!!
글 잘 읽었어! 정말 좋은 글이다. 써줘서 고마워 🌿
우연히 검색을 하다 들어왔는데
위로받고가 여시야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