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적으로 따스한 경주였지만, 웬일인지 불안함이 몸 안으로 다가오며 추위까지 한걸음 더 가까워진다.
민진은 꽁꽁 얼은 손은 호호, 불어대며 예쁘게 웃는다. 그리고는 망원경으로 자신을 보고 있을 히우의 시선을 따른다.
범인을 잡기 위한 잠복수사. 엄청난 위험을 동반하는 일에 모두들 반대했지만, 민진은 기어코 하고야 만다.
나루가 노렸던 피해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그저 닥치는 대로 인 듯 했다. 그래서 민진은 5번 째 피해자의 생김새와 비슷하게 입고는 늦은 밤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전혀 두려움에 떨지 않는 민진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있다. 담담함이 묻어나는 얼굴이다. 모든 걸 받아드린 그 날의 한애의 표정과 겹쳤다.
-전화 받아라! 주민진! 얼른!
작년 해 죽은 한애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벨소리에 민진은 저도 모르게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며 전화를 받는다. 1년이 지났어도 핸드폰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경찰청 사람들이다.
“여보세요?”
-이제 다 웃었냐?
“응, 오랜만에 듣네.”
민진이 회상하듯 살며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근처 건물에 기대어 눕는다. 그러자 히우는 노발대발하며 민진에게 화내듯 말한다.
-여자가 어디서 길거리에서! 차갑게!
히우의 말에 민진은 그저 아무 대답 없이 히우가 보고 있는 옥상을 향해 메롱과 함께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려준다. 까만 망원경 렌즈를 통해 보이는 민진의 모습에 피식, 웃어버리는 히우. 하지만 그 웃음은 이내 사라져버렸다.
탕-이라는 총성과 함께 민진의 핸드폰이 떨어지며 히우에게는 툭, 이라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고, 멀지 않은 곳에서 커피 두 캔을 사서 돌아오는 히윤은 힘없이 커피를 땅에 떨어트리고 만다.
민진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새빨간 피. 어두워도 선명하게만 보이는 피에 다른 모든 게 흐려지기 시작한다.
따뜻했던 캔커피는 거리의 냉기에 금방 식어버렸고, 민진의 몸도 총알의 냉기에 점점 식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히우는 망원경을 내던지고는 건물을 빠르게 내려간다. 핸드폰을 던져버리기엔 역부족 이였다.
3층 건물에서 빠르게 내려온 히우는 민진을 부둥켜안는다. 점점 눈을 감으며 의식을 잃으려는 민진의 얼굴에 눈물을 떨구며.
“민진이 누나.. 민진이 누나. 왜 이래, 왜 이래, 약한 모습 보이지 마! 여자애가 신히윤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아무대나 누워있어... 일어나!”
히우는 세상을 다 잃은 듯,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진을 꼬옥 안는다. 절대 민진을 보내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보여주듯.
민진의 심장에서 나오는 피가 히우의 검은 점퍼에 흘러들었지만 히우는 개의치 않았다.
“우리 수하...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알려줘... 수하가 강해졌을 때... 지금은 그냥... 그냥 숨겨줘... 나 거추장한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무덤 찾아오지 마. 오면 이렇게... 울... 거...”
“말하지 마! 살 생각해야지! 야! 신히윤! 119!”
“어? 어?”
얼떨떨한 히윤을 깨워주는 칼바람. 칼바람에 한애를 따라 길렀던 머리가 찰랑이며 따스한 바람을 잠시 느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119를 급하게 눌렀지만, 이내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만다. 목숨 보다 소중히 여겼던 핸드폰을.
“민진아아!! 일어나!!! 일어나라고! 제발! 흐으윽...”
히우의 외침이 경주 시내를 쩌렁하게 울렸고, 히윤은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민진의 몸이 점차 싸늘해지고, 심장은 멎어버렸다.
살짝 민진을 내려놓은 히우는, 고개를 저으며 그 둘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나루를 향해 간다. 벌써 점퍼에는 피가 스며들 공간이 없었는지 뚝뚝, 히우의 움직임에 따라 떨어진다.
“이 새끼야! 왜 그랬어!”
“흐으윽, 나루 때리지 마... 나루... 나루 때리지 마! 더 이상 싫어! 아아악!!!”
히우가 다가가자 바짝 긴장하며 몸을 움츠리는 나루의 모습에 히우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주먹은 들었지만, 민진의 마지막 감촉을 잊고 싶지 않았다.
“워... 원래 초... 총알 한 개 남았어, 이게 마지막 이였다? 운도 안 좋아. 근데 내가 더 운 안 좋아. 나는 계속 밟혀왔어. 내가 제일 불쌍해. 하하하!”
갑자기 바뀐 나루의 모습에 긴장한 히우. 민진이 잡게 해주자... 눈물을 흐르면서도 초점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히우.
한순간 다가가 나루를 제압해버린다. 그리고 빛을 잃은 은색의 차가운 수갑을 손목에 달칵, 채우고 나루를 쓰레기통에 던져놓고는 아직 피가 흐르는 민진을 안아들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히우.
히윤은 나루를 끌고 차에 태운 후 서로 향한다.
히우는 민진과 함께 동국대병원으로 도착했다. 민진이 가는 곳 마다 흥건한 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악!”
여자의 가는 미성에 모두들 빠꼼히 내다본다. 하지만 히우의 표정이 너무 얼어있어 함부로 다가가지 못한 채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그런 시선에 히우는 싸늘하게 입을 연다.
“환자보고도, 치료 안 해요?”
히우의 말에 의사가 급히 뛰어나왔고, 이동침대에 민진을 눕혔다. 히우의 손에 흥건한 피가 히우의 마음을 아프게 짓누른다. 민진이 누운 침대가 잠시 이동하다 말고 우뚝 선다. 히우가 무슨 일이냐는 듯 하얀 가운 의사를 바라보았고, 의사는 표정을 심각히 하고는 히우에게 입을 연다.
“이미... 죽으셨습니다.”
의사의 말에 확실히 깨달게 된 히우. 그저 다친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설마 그 총 한 방에, 그렇게 흥분한 사람이 쏜 총에 정통으로 맞았을 리 없다고..
결국 스르르, 바닥에 주저앉은 히우는 바닥에 흥건한 피를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묻힌다. 그리고 섬뜩한 미소를 띠며, 보는 이들의 팔에 소름이 돋게 만든다.
“민진아.... 너랑 나랑, 하나다.”
히우의 말이 끝나고 히우는 쇼크로 잠시 기절했고, 뒤늦게 히우의 행방을 찾아온 히윤은 민진의 장례식을 쓸쓸히 경주에서 치룬다.
2001년 웬일로 더 싸늘했던 경주. 시계바늘은 제자리를 위해 달리고 있었고, 하얀 국화 송이들이 너저분히 널린 장례식장에는 혼자 통곡하고 있는 히윤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무 늦은 밤이라 차마 연락을 못한 민진의 장례식. 그저 쓸쓸할 뿐이다.
“민진이 누나... 경주에 있어?”
히우의 얘기를 마치고 히우에게 제일 먼저 묻는다는 소리가 민진의 산소 위치였다. 수하의 물음에 히우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이불을 걷어내는 수하의 모습이 다부졌다.
“어딨어.”
“나도... 몰라...”
“왜 몰라!”
일인 병실 안을 휘감는 수하의 남자치고는 제법 카랑한 목소리에 히우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어버리고 만다. 히우의 행동에 당황한 수하는 그저 히우의 새카만 머리 위로 눈물을 흘려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히윤이 누나만 알아... 경감도 알 수도 있겠다.”
수하도 힘이 풀린 건지 무릎을 꿇어버린다. 히우의 앞에 마주보며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히우는 있는 힘을 다하여 수하를 일으켰고, 수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미 병실 바닥은 눈물로 흥건했다.
“미안해... 이제 말해준 거... 정말 미안해. 하지만.. 흐윽, 하지만...”
“선배. 그만해요. 나 퇴원해야겠어요.”
“수하야!”
울음이 섞여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귀에 꽂히는 낮은 보이스에 수하는 스르르... 고개를 살짝 돌려 히우를 바라본다. 그 모습이 섬뜩해오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범인 잡아야지. 범인.”
수하는 이 말을 끝내고는 얇은 환자복 상태에 옷걸이에 잘 걸려있는 바바리코트를 두르고는 밖으로 나가다 문득, 맨발 상태인 자신의 발을 보고는 중얼거리며 운동화를 신는다.
첫댓글 으앗, ㅜ_ㅜ 슬픕니다.
ㅜ^ㅜ계속계속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