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황 인삼’ ‘YS 멸치’ ‘태우 떡값’ 역대 대통령들의 ‘추석 선물’ 보니…
 박근혜 대통령의 2014년 추석 선물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3년 추석 선물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4년 설 선물
 노무현 대통령 설 선물 /국가기록원
▲... 보스 기질·고집·실리 등 대통령의 특성 반영돼
선물 통해 ‘지역 감정’ 해소도…박 대통령은?
2003년 8월31일,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마주앉았다. 추석을 며칠 앞둔 그날, 정 대표는 작심한 듯 대통령의 명절 선물 이야기를 꺼냈다.
“선물은 한국 문화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전혀 선물이 없어 자칫 정을 잃어버릴 수 있다. 대통령이 판공비로 선물 돌린다고 욕할 사람 없다. 나는 추석 선물을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노 대통령은 코드가 달라서 그런지 그런 게 전혀 없다. 내 정서에 맞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대통령들의 선물 이야기도 꺼냈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은 봉황 문양이 새겨진 인삼과 수삼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봉황 문양이 새겨진 인삼을, 노태우 전 대통령은 1백만~2백만원을 국회 의원회관으로 보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항상 멸치를 보내왔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시시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옆 자리에 있던 이낙연 당시 대표 비서실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 특산품인 김과 한과를 보냈다”고 보충 설명(?)을 했다.
당시 이 발언은 ‘청와대와 사이가 껄끄러웠던 집권 여당 대표가 현직 대통령에게 정치자금 지원을 에둘러 촉구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낳으며,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다.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정치적 맥락을 빼고 본다면, 역대 대통령의 명절 선물 내용과 스타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최초의 역사적 발언으로 기록될 만하다. 보스 기질이 있는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의 ‘봉황 인삼’이나, 천문학적 비자금을 다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태우 떡값’, 고집스러운 면이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YS 멸치’와, 실리를 중시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도 김’ 등 선물 내용 자체가 역대 대통령의 성격과도 일치하는 면이 엿보인다.(물론 박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봉황 인삼’ 외에도 정치권 및 각계에 거액의 ‘떡값 봉투’를 별도로 ‘하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어떨까? 박 대통령은 이번 추석을 맞아 강원도 횡성의 육포, 경남 밀양 대추, 경기도 가평 잣 등 세 가지 특산물을 담은 선물을 사회 각계 주요인사와 국가유공자 사회적 배려 계층 등에 보냈다.
지난해 추석 때는 전라남도 장흥 육포, 대구 달성군 유가면 찹쌀, 가평 잣을 선물했다. 불교계엔 육포 대신 견과류로 대체됐고, 소년소녀가장에겐 지난해 어학학습기가, 올해엔 학용품 세트가 대통령 선물로 전달됐다.
대통령의 명절 선물이 지금처럼 ‘지역 안배’를 고려한 지역 특산품 조합 형태를 띠게 된 것은, ‘지역 감정’ 극복이 평생의 화두 가운데 하나였던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다. 정대철 대표가 ‘선물을 보내라’고 요구한 지 얼마 뒤 청와대는 “이전부터 추석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호남 복분자와 영남 한과를 하나로 묶은 `국민 통합형 선물’을 보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 안배에 더해 지역 특산 민속주를 함께 보내기도 했다. 2004년엔 소곡주, 2005년 문배주, 2007년 이강주 등 한 해에 한 가지씩 돌아가며 전국 각지의 민속주를 선물했다. 2004년엔 남북 화해협력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더해 북한 금강산 원산 호두가 품목에 추가되기도 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도 전국 도별로 빠짐없이 특산품을 한가지씩 품목에 담았는데, 대통령이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탓인지 이때부터 술은 품목에서 제외됐다.
2008년 강원 인제 황태, 충남 논산 대추, 전북 부안 김, 경남 통영 멸치를, 2010년에는 충북 참기름, 제주 고사리를 포함했고,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에는 경기 여주 쌀, 충남 부여 표고버섯, 경북 예천 참기름, 강원 횡성 들기름, 전남 진도 흑미를 선택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2009년 설선물은 대구달성의 4색 가래떡과 전남 장흥·강진의 특산물인 표고버섯으로 구성됐는데, 대구달성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지역구라는 점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동서화합뿐 아니라 여권 내 화합의 뜻을 담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뒤 2008년 추석 때 처음으로 보냈던 강원 인제 황태와 충남 논산의 대추, 전북 부안 재래김, 경남 통영 멸치 가운데, 황태의 원산지가 러시아산이어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또 당시 황태와 멸치를 불교계 인사들에게도 보내려다 “불가에 생물을 보내는 것은 결례”라는 지적 탓에 황급히 차·다기 세트로 교체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대통령의 성향이 선물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선물도 이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소박해지고 이에 따라 선물의 단가 등도 이전에 비해 다소 낮아졌다고 한다. 청와대가 정확한 선물 숫자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9000여명에게 전달된 것에 비해 올해는 규모가 다소 줄었다. 비슷한 품목으로 이른바 ‘섭섭해 하는’ 이들을 위해 제작되던 비서실장 명의의 선물세트도 제작하지 않는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해엔 보내줬는데, 올해엔 왜 보내주지 않느냐는 문의를 받은 이들이 좀 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깐깐하고 냉정한’ 면이 선물에서도 드러나는 셈이다. 석진환 기자 ▒☞[출처] 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