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금딸 돌격이라고 희화화되는 이 무식하고도 어이없는 병나발같은 전법이 일본제국군의 주요 전법 혹은
마무리 전법으로 정착된 게 언제부터인가요?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게, 일본군이 화약무기를 처음 사용한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일본군은 전국시대부터
조총부대가 있었고, 당시 총검도 없던 조총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돌격이 아니라(근데 어느 나라 사극에서는
개머리판 전술을 사용하는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찍으셨지요. 아놔 쪽팔려 진짜) 화력의 집중 혹은 화망을 형성
하는 것이었을테고, 그것이 이어져 내려오다보면 그보다 개량된 무기로 화력과 화망을 더 중점적으로 생각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엔하위키의 무진(보신)전쟁, 서남(세이난)전쟁 부분을 살펴보면, 무장이 잘 되지 않은 막부군이나
사이고 측 병력에 비해 화력전을 위주로 했느니, 탄약소비량이 엄청났느니 하는 기술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물론
상대편은 이름만 들어도 전술이 어떤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발도 돌격 ^^;;) 간간히 영국식 화력방어전술(한마디로
제자리에서 그저 냅다 갈기는 것)이란 말도 나오구요.
근데 이런 전술을 쓰던 사람들이 어찌하여 반자이 돌격이라는 수준 이하의 전술을 구사하고 교리로까지 배우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 성이나 진지를 공격할 때는 화력전을 쓰던 사람들이 갑자기 러시아, 유럽, 미국군을 상대할때는 닥치고
돌격만 해대니............
서남 전쟁때 발도돌격이 상당히 효과적이었나요?(당시 전황을 보니 그런것 같긴 하더군요) 그래서 거기에 취한 탓인가요?
첫댓글 1차대전 프랑스 돌격전술교리에 갇혀 있어서(그게 써먹히는 중국때문에)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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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인지 중국에는 항일대도라는 칼이 지금도 유행이더군요. 접근전에서 맞서 싸워야 하니까..
하긴 제1차 세계대전에서 그 전쟁에 닳고 닳은 전쟁기계 유럽국들이 딱 고 수준의 전투를 한 거 보면, 결국 일본은 제대로 된 적을 만나지 못한채 그런 식으로 싸우다가 돌격만능주의 + 물자 후달림이 겹쳐서 막장으로 갔다고 보면 되겠군요. 근데 보신전쟁이나 세이난 전쟁때의 일부(엔하위키) 기술들이 전혀 그렇지 않길래 어떻게 이렇게 전술이 퇴보될 수 있나 하고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기술들을 좀 봐야겠군요. 엔하위키에 기술된 걸로만 보면 내전할때는 정부군은 화력전 위주였기에(상대방의 발도 돌격에 대항한 발도 경관들도 있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반자이돌격은 전술의 퇴보지요.
그나저나 메이지유신이니 공업화니 그렇게 난리 부르스를 쳤는데 러일전쟁 하나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경제력이라니......(그런데 당시 막장 러시아보다는 훨씬 뛰어났던 미국을 상대할 생각을 하다니 이건 깡이 아니라 돌았군요)일본은 애초에 군국주의적으로 전면전을 펼쳐나갈 물질적 토대가 없었던 것인지.............
애초에 러일전쟁은 일본의 '승리'가 아니였고, 만주에서 벌어진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선 사실 굉장히 열세였고 발트함대와의 한판 승부에서 승리와 공산주의 혁명 크리로 러시아가 전쟁에서 얻을것보다 잃을게 많다고 판단해 물러난것에 불과합니다. 세계 2차대전처럼 '총력전'한게 아니였죠. 다만 러일전쟁은 러시아와 그럭저럭 주먹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란건 증명 했을뿐입니다.
당시 일본의 국력으로는 중일 전쟁조차 상당한 무리수였습니다.1930년대는 되야 '산업화'가 완전히 끝나면서 '세계 열강'의 반열에 들만한 국력을 확보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대로 국력을 갖춘 뒤 '전쟁'을 걸었던 상대가 세계 최강의 국가이던 미국이란건 ;; 뭐 멍청한거지요.
사실 일본이 공업화에 성공한건 한일합병 이후입니다. 1910~20년 사이에 미국에 의존한 경공업수출로, 20~30년에는 중공업으로 돈을 벌었죠. 특히 중공업으로 돈을 번 이유가 전쟁으로 인한 일시적인 공급의 감소때문이고요.
만주전역에서 일본군은 '전투' 에서는 매번 러시아군을 이겼습니다. 문제는 국력차가 너무 나서 이기고 또 이겨도 국력차에 압살당할 위기였다는 거죠.
재 생각엔 항복을 거부하고 적 한명이라도 죽이고 죽자는 생각으로 그럿것아닐까 생각됩니다..
러일전쟁때 러시아군의 총검돌격에 큰 피해를 본 뒤부터입니다. 러일전쟁때는 러시아군이 체격의 유리함을 이용하여 러시아군진지를 공격하는 일본군에게 총검돌격으로 역습을 가해 여러번 물리친 적이 있습니다. 이때부터 일본군도 총검돌격을 중요시하게 되고 다루기 힘들 정도의 긴 총검을 채택하게 됩니다. 또한 러일전쟁 직후 일본이 승리한 원인을 찾는 논문을 공모했는데 당시 1등을 한 논문의 요지는 일본군이 러시아군보다 정신력과 전투의지가 강해서이라라는 내용이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일방적인 정신력 강조가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원래는 독일식으로 간지나게 제압포격하고 각을 칼같이 맞춰서 전진하고 싶었는데... 문제는 그게 다 돈 이라서요(....)
그런데.......우째 전쟁은 자본주의 사회가 오기 전부터 자본주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는 느낌이......보급이니 돈이니 물자니.
전쟁에 제일 필요한건 돈, 돈, 더많은 돈입니다.(...)
역시 무장공비님. 한 줄로 간단 요약 ㅋ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삼는게 제일 타당할것 같군요.
러일전쟁 전에는 화력덕후에 가까운 독일식 교리에 따른 전쟁을 따르다가, 러일전쟁시에 일본의 공업력으로는 독일식 교리를 펼처줄만한 공업력부족과 러시아군대의 총검돌격에 피해를 많이 본 후로는 공업력이 좀 딸려도 정신력 강화에 의한 교리를 따르고 있던 프랑스식 전술교리를 따르게된후라고 봐야할듯합니다.
답변 주셔서 다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음.....러일전쟁이라, 그건 몰랐군요. 사기 시망인줄 알았던 제정러시아군대가 의외로 총검돌격을 해서 피해를 주다니 의외군요. 저걸로 논문이 나올 정도면.......일본은 러일전쟁에서 뭔가 단단히 잘못배운듯. 물론 당시 일본의 경제적 상황을 나름 반영한 결과이긴 했지만 말이지요.
러시아에서는 우라돌격이 군인들을 합니다!
러시아의 총검 돌격에 받은 피해를 보고 자기들도 총검 돌격의 중요성을 깨닿기는 했지만 가장 중요한 성공 동기는 여순 요새 함락입니다. -_-;; 부족한 화력 때문에 사실 일본군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엄청난 피칠을 해가면서도 노기는 뚝심으로 밀어붙여 돌격으로 여순 요새를 함락시켜 버립니다. 당시에 일본 수뇌부는 화력 부족을 절감했는데(오죽하면 본국의 요새포까지 뜯어가서 투입;;;) 정작 시간이 지나면서 화려한 선전만 남고 엄청난 희생은 잊혀졌죠;;; 아름답게 미화되어서 말이죠;;;
게다가 중일 전쟁이 벌어졌는데 여기서도 총검돌격은 대단히 유효했습니다. 중국 군벌의 군대는 사기도 낮았고 정치적인 문
제로 각 군벌간 협조도 개판이기도 했거든요..
사실 돌격 자체는 지금도 유효한 공격 수단입니다. 그러나 일본군의 경우 이 돌격에 너무 많은 성공을 거두었고, 돌격 이외의 방법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으며, 이런 돌격의 쇼크 효과를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거죠.. 태평양에서 미군 상대로 돌격을 했는데 막상 붙어보면 미군 병사들이 일본 병사들을 백병전으로 제압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ㅡ.ㅡ;; 성공에만 취해 후속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죠;;;
203고지 전투에서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러시아군 진지 앞으로 일본군이 무모하게 정면 돌격을 하다가 러시아군의 기관총 사격에 무려 2만 명이 죽어나갔죠... 그리고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군 전사는 8만 명인데, 일본군 전사자는 10만 명으로 일본군이 더 많이 죽었습니다. 러일 전쟁 종전 회담에서도 일본이 흘린 피에 비해서 얻은 성과가 너무 적다고 여겨서 분노한 일본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서 경찰서를 습격하는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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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1차대전에서 입은 손실이 너무 크니까요. 1시간에 1개 사단씩 날라가고 나면 어머 뜨거나 하는 거죠.
그리고 독일식 교리의 근본은 화력전이 아니라 기동전입니다. 일본은 기동전 교리는 종전까지 지켰어요.
기본적으로 불란서는 덕국보다 인구숫자가 너무 차이가 낫죠..
러일전쟁으로 소모된 막대한 기회비용이 경제에 투입되었더라면 전쟁직후의 불황도 없었을테고 더 빠르게 경제가 성장, 태평양전쟁쯤엔 좀 더 미국과 평수를 이룰수도 있었을테죠. 5프로씩 10년만 더 쌓여도 대략 프랑스나 독일급 GDP가 되었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일본이 인구가 많으니까요.
러일전쟁이전에는 그 점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해서도 관대할 수 있었고 대외정책 역시 너무 무리수는 두지 않는 쪽이었죠.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라고 하는데 기실 전략적으로는 패배입니다. 명백하게 일본의 실효지배하에 있는 조선을 그것도 당시엔 명백하게 독립국인 조선, 청으로 남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러일전쟁 없었으면 불평등조약 그대로, 러시아는 한반도 너머로 계속 남하할껀데 뭔소리? 일본의 실효지배하의 조선? 러일전쟁 전에? 실로 경악스런 주장입니다.
러일전쟁 아니었으면 만주지역과 중국에서 밀렸겠죠. (게다가 조선에 관대??실효지배???)
또 소설쓰시네요.
파렴치한의 그 것이고, 전쟁 후에도 단 한푼의 배상금을 내놓지 않은 것까지 일본으로썬 간신히 막아냈을 뿐 아닌 밤중에 싸다구맞고 말한마디 못한 것이 러일전쟁이죠.
경제면만 보자면 러일전쟁만 아니었다면 일본 경제는 한층더 성장, 태평양전쟁 당시에 보급에 부담된다는 이유로 반자동식주력으로 채택안하고 볼트 액션식을 주력으로 채택하는 짓과 같은 뻘짓은 안했을거라 봅니다. 단지 그 것만으로도 어쩌면 미국이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인 호주, 뉴질랜드까지 남방전선 확대해서 쳐묵한뒤 태평양 한쪽편에 긴항해거리로 된 바다의 장벽구축에 성공했을지도 모르죠.
볼트액션식은 독일군도 주력 소총으로 썼는데 독일군도 뻘짓이라 깔 기세.
볼트액션식은 영국군도 주력 소총으로 썼는데 영국군도 뻘짓이라 깔 기세.
볼트액션식은 소련군도 주력 소총으로 썼는데 소련군도 뻘짓이라 깔 기세.
아! 신난다!
쇼미더머니의 미국이 간신히 세미오토 라이플이었고, 외계인 고문의 독일이 전쟁 후반부에 가서나 어썰트 라이플의 개념을 잡았으니..... 이거 가지고 까면.....뭐 좀.. 그렇죠 잉?
거기다 더해서, 일본군이 막판에 그렇게 보급문제에 시달린 이유 중 하나가 과달카날같은 머나먼 지역까지 억지로 보급하다가 밑천 다 날려먹었기 때문인데 호주, 뉴질랜드까지? 일본이 그렇게 확장했다면 44년 지나기 전에 망하고 멸망할 수도 있는데...
사실 당시 일본이 처한 현실에서 가장 최선의 전략을 찾아낸 것이긴 하죠. 저 돌격은 1944년까진 영국군은 막아내질 못했고 미군도 1943년 과달카날전투까지 막지 못했습니다. 총기가 완전 자동화 + 요새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들이 뛰어가서 돌파하는 것은 꽤 유용한 전술이었죠. 다만 임팔전투 이전 영국이 원형진지해놓고 탱크까지 가져다가 만들고 항공지원으로 막아낸 이후에 약발이 크게 감소했죠.
일본군이 연합군의 방어선에 정면돌격을 감행했던 것처럼 보이는 건 대부분의 전선이 우회하고 기동하고 할 공간이 없는 '섬' 이였기 때문이기도 하죠.
상대가 중국군이라서 잘 티가 안나긴 하지만 중국전선에선 얘네도 기동-포위전술을 즐겼어요. 방어선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도 피할수 있으면 피했고. 근데 섬에서는 그런 우회할 공간도 없죠.
일본군이 발라준 영국군은 대부분 영국 본토 군대가 아니라 현지 자원병 자원들이 대부분인데다가 장비-보급에서 완전히 3급 수준이라;;;;(아시아 식민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뭐..ㅡ.ㅡ;; 인도 방어를 위한 전초기지 감각이기도 하고..) 일본군의 상대가 중국 군벌, 영국-네델란드의 식민지 군대-필리핀 주둔 개허접한 미육군 정도였고 나중에 막상 미 해병대가 본격적으로 투입되면서 지상전에서 탈탈 털립니다. 섬을 하나하나 공격하고 애들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버릇 때문에 미군 애들이 크게 고전하긴 합니다만 장비빨 떠나서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에 교리, 훈련 수준에서도 모두 일본군을 압도했죠..
자국의 공업 기반 때문에 잘 구축된 진지를 돌파하는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한 건 사실인데, 그나마 있는 자원인 공군(해군 항공대 포함)과의 연계도 개판이었다는 것은 일본군이 가진 본질적인 각 군간 알력이 심대하게 발목을 잡은 것 & 러일 전쟁에서 성공기억이 너무 컸기 때문이죠.. 어찌되었던 피칠해가면서 점령하긴 했어도 여순 요새 점령하긴 했으니;; 원래는 노기 장군을 포함해 일본군의 문제에 대한 문제 인식은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긴 했는데, 10년도 되지 않아 그 교훈을 다 까먹어 버리죠.. 중국 군벌 군대야 워낙 사기가 낮으니 일본군의 돌격이 워낙 잘 먹히기도 했고..
뭐 보병이긴 해도 고통에 잘 견뎌내는 일본군의 특성상, 생각보다 기동력이 부족하진 않았습니다. 정글, 산악, 비포장 도로 같은 곳을 유럽 군대라면 상상도 못할 열악한 상황을 감수해내며 터덜터덜 걷고, 자전거 타가면서 돌파에 성공하곤 했으니까;;; 문제는 나중에 무다구치가 일본군의 그런 장점을 너무 과신했다는 거고..(그 이외에 본인의 체면 중시 문화도 한 몫하고;;) 게다가 중국 군벌들은 장교들의 레벨이 좀 심하게 떨어지는 데다가 정치적 문제 때문에 각 군간 연계가 개판이죠.. 그런 점을 노린 일본군의 전술-전략 기동은 대단히 효과적이었습니다. 뭐 애초에 퍼부을 화력도 부족하니 이걸로라도 때워야죠;;;
무식하고 용감한게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