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전남 완도 명사십리 앞바다 풍경 | | ⓒ 이승철 | | "이 섬은 섬 같지가 않구먼,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크기도 하고."
완도 땅은 좁은 해협을 다리로 연결하여 섬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다리를 건너자 조금씩 흩뿌리던 빗줄기가 그치고 먹장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파란 하늘이 곱고 화사하기 그지없다.
완도읍 쪽을 향하여 달리던 차는 왼편으로 방향을 바꿔 바다 위에 놓인 다리 위로 올라섰다. 신지도로 향하는 것이었다. 완도에서 신지도를 빼놓고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이 일행의 말이었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신지도에 가려면 배를 타고 건너야했었는데 언제 이렇게 멋진 다리를 놓았지?"
운전대를 잡은 일행은 큰 섬에 딸린 작은 섬 신지도를 이렇게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신나는 모양이었다.
섬 안 길은 정말 아기자기하고 정다운 느낌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2차선 도로를 오르내리며 달리다보면 길 아래로 작은 포구가 나타나기도 하고, 길가에 피어난 꽃이며 콩밭들도 여간 싱그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신지도는 그리 큰 섬이 아니었다. 잠깐 달리자 길옆 오른편에 '명사십리해수욕장입구'라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안쪽으로 펼쳐진 해안선은 상당히 길어 보이는데 바닷가에는 송림이 우거진 풍경이다.
| | ▲ 아득하게 멀고 고운 명사십리해수욕장 백사장 풍경 | | ⓒ 이승철 | | | | ▲ 바닷물에서 방금 올라온 해녀들 | | ⓒ 이승철 | | "들어오면서 보니까 이 섬에 동고리해수욕장이라는 곳이 있는 모양이던데 거기부터 한 번 들려보자고, 언뜻 듣기에 아주 멋진 곳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아서."
모두들 좋다고 한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멋진 곳이라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찾아간 동고리해수욕장은 우리들이 기대했던 곳이 아니었다. 작은 자갈로 뒤덮인 곳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구에서 안내하던 마을청년들은 친절하게 차를 돌려서 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아 아주 좋은 인상을 남겼다.
"이 해안가에서 잠깐 쉬었다 가지."
동고리해수욕장에서 차를 돌려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 나오는 길가에는 작은 선착장과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을 앞 선착장 공터에 차를 세우자 마침 바닷물 속에 들어가 물질을 마치고 나오는 해녀들 두 명이 바다 쪽에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다가가 많이 잡았느냐고 물으니 바구니를 들어 보이는데 제법 묵직해 보인다.
선착장 옆 얕은 바닷물에서는 남자들 두 명이 바닷물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상당히 익숙한 솜씨로 투망을 펼쳐 던지고, 다른 한 사람은 플라스틱 양동이를 들고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 ▲ 으라차! 그물던지기 | | ⓒ 이승철 | | | | ▲ 물고기는 몇 마리나 잡혔을까? | | ⓒ 이승철 | | 우리들이 다가가 살펴보니 양동이에 어른 손바닥만큼 큰 송어 몇 마리가 들어 있다. 그런데 투망을 던지는 것을 옆에서 살펴보니 물속을 헤엄치는 송어를 향하여 그물을 던지면 송어들은 그 그물을 피하여 잽싸게 달아나기 때문에 몇 번을 던져야 겨우 한두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마치 투망꾼과 송어가 술래잡기라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도 그들에게서 싱싱한 송어를 몇 마리 살 수 있을까 싶어 물어보니 그들은 광주에서 온 여행객들이었다. 우리일행들은 조금 전에 바닷물에서 나와 조합 건물로 들어간 해녀들이 생각나 그곳으로 찾아갔지만 이미 잡아온 해물들을 싣고 완도읍으로 떠나고 난 후였다.
우리들은 바다에서 금방 잡아 올린 생선 구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저만큼 언덕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은 바다와 하늘,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과 바다에 떠 있는 몇 척의 어선들이 어우러져 정말 기막힌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들은 해수욕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 왼편에 있는 방파제와 작은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언덕 위 공터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서 차를 세우고 방파제로 내려가자 오른편으로 길게 펼쳐진 명사십리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래사장의 길이가 십리나 된다고 해서 명사십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해수욕장은 이곳 이외에도 전국에 몇 개의 같은 이름을 가진 해수욕장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명사십리라는 이름의 해수욕장이 여럿 있지만 신지도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은 명사(明沙)가 아니라 명사(鳴沙) 즉, 모래가 운다는 뜻이다.
| | ▲ 명사십리해수욕장 옆 선착장 방파제 풍경 | | ⓒ 이승철 | | | | ▲ 방파제에서 바라본 해수욕장 전경 | | ⓒ 이승철 | | 이곳의 곱고 부드러운 은빛 모래밭이 파도에 쓸리면서 내는 소리가 십 리 밖까지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해수욕장은 완도뿐만 아니라 남해안 일대에서도 최고의 해수욕장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해안선의 길이가 4㎞나 되고 백사장의 너비만도 100m에 달하는 데다 수심이 아주 완만해서 특히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즐길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난 2005년에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연륙교가 개통된 이후 한해에만 12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올 만큼 남해안 일대에서도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손꼽힌다. 또한 모래입자가 곱고 부드러워 모래찜질을 하기에 알맞으며 특히 관절염과 신경통, 피부질환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모래찜질을 하려는 중년이상의 여성들과 피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해수욕장과 바다풍경도 일품이다. 이름처럼 십리나 된다는 길게 펼쳐진 모래사장은 뒤편에 짙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서 정말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그러나 해수욕장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어서 물속에 들어가면 추울 것 같았다.
방파제에서 낚싯줄을 드리운 낚시꾼들도 거센 바람 때문에 파도가 높아 고기들의 입질이 뜸하여 재미가 없는 표정이다. 그래도 바다에는 몇 척의 어선들이 떠 있고 저 멀리 바다 깊숙이 떠 있는 섬 위로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추억처럼 아름답다.
"우와! 정말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네요."
옆에 서서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있는 친구부인이 불쑥 말했다.
문득 만해 한용운이 쓴 시한 구절이 떠오른다. 승려였던 만해가 해수욕장을 찾아 바닷물 속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가 동해안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을 찾아 해수욕을 즐긴 것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 | ▲ 명사십리 바다에서 고기잡는 어선들 | | ⓒ 이승철 | | | | ▲ 만해도 그때 저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까? | | ⓒ 이승철 | | 쪽같이 푸른 바다는
잔잔하면서 움직인다.
돌아오는 돛대들은
개인 빛을 배불리 받아서
젖은 돛폭을 쪼이면서
가벼웁게 돌아온다.
걷히는 구름을 따라서
여기저기 나타나는
조그만씩한 바다 하늘은
어찌도 그리 푸르냐.
멀고 가깝고 작고 큰 섬들은
어디로 날아가려느냐.
발적여 디디고 오똑 서서
쫓다 잡을 수가 없고나. -만해 한용운의 시 '명사십리'
| | ▲ 하늘과 바다가 똑같이 푸른 빛이다. | | ⓒ 이승철 | | 그때 만해가 보았던 풍경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만해가 쓴 시의 구절구절에서 나타난 풍경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물론 만해가 찾았던 곳은 북부동해안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이었다. 시기는 또 얼마나 다른가.
그러나 수십 년 전, 어쩌면 백여 년 전에 만해가 찾아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시로 읊었던 동해안 명사십리해수욕장의 풍경이 분명히 이곳에도 있었다. 그때 그 풍경을 시공과 지역을 뛰어넘어 아주 멀리 떨어진 이곳 완도에 있는 같은 이름의 바닷가에서 다시 보는 것 같아 내게는 아주 절절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