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을 시찰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는 집권기에 일제의 유산을 변용하여 국책화한 몇 가지 ‘사업’이 있었다.
일본 2ㆍ26사건에서 5ㆍ16쿠데타, 메이지유신에서 10월유신의 모방이 그렇고 새마을운동과 국민교육헌장 제정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는 1970년 초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농촌자조노력의 진작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이것이 새마을운동의 시발이다. 그가 느닷없이 새마을운동을 국책사업으로 내세운 것은 공업화우선 정책으로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촌의 후진성을 재건하려는 의지와, 북한의 ‘천리마운동’에 대응하려는 발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새마을 가꾸기 사업추진 및 벼 집단재배 평가대회(1970)
그러나 박정희가 처음으로 제창한 ‘새마을 가꾸기’란 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아타라시이 무라 쏘쿠리’를 글자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당시 조선총독 우가키의 농촌진흥책은 자립ㆍ근검ㆍ협동공영ㆍ충군애국이었고,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의 지표는 자조ㆍ자립ㆍ협동ㆍ충효애국이었다. 총독부의 판박이다.
청와대가 직접 관장한 새마을운동은 중앙에 새마을운동중앙총본부가 설치되고 중앙ㆍ시도ㆍ시군ㆍ읍면동ㆍ마을에 이르기까지 수직적으로 조직되었다. 중앙에는 새마을지도자중앙협의회ㆍ공장새마을운동추진본부ㆍ새마을문고중앙회ㆍ새마을청소년회중앙연합회ㆍ새마을조기축구회ㆍ새마을금고연합회ㆍ새마을교육연구기관 등을 설치하였다. 지방에도 유사한 기관이 구성되고 운영되었다.
초기에는 농어촌에서만 실시되었던 새마을운동이 1972년부터는 도시에서도 실시되었다. 박정희는 직접 <새마을 노래>를 지어 라디오와 전국의 마을에 설치한 스피커를 통해 부르게 하였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새마을운동은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았다.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나 함석으로 바꾸고 마을 도로를 넓히며 마을 환경을 개선하는 등 순기능의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지역의 특성을 무시한 채 관주도의 일방적인 지시와 개입으로, 그리고 정부 여당의 하부조직의 역할을 하면서 비판과 부작용이 나타났다.
’황소처럼 부려보자’ 등과 같은 현수막과 막걸리를 마시는 뉴스는 농촌에서 박정희를 지지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됐다 ⓒ 국가기록원
새마을운동이 구체화된 것은 1970년 10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정부가 전국 3만 5,000개 마을에 각각 300여 포대의 시멘트를 무상으로 나누어주면서부터였다.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가 각 마을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멘트를 나누어준 계기가 쌍용시멘트 소유주였던 김성곤이 박정희에게 시멘트 업계의 재고과잉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김성곤은 당시 공화당 재정위원장으로 박정희의 정치자금을 관리하는 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자이다. (주석 5)
1968년 쌍용시멘트 공장을 시찰중인 박정희와 쌍용 김성곤 회장 ⓒ 대한뉴스
김성곤의 재고 시멘트는 전국의 농촌에 보내어 마을진입로를 비롯 공동빨래터 만들기 등에 사용하였다. 도시새마을운동은 ‘10대 구심사업’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소비절약의 추진, 준법질서의 정착, 시민의식의 계발, 새마을 청소의 일상화, 시장 새마을운동의 전개, 도시녹화, 뒷골목 정비, 도시환경 정비, 생활 오물 분리수거, 도시후진지역의 개발 등이었다.
개중에는 필요한 분야도 있었지만 조선총독부가 통치수단으로 활용했던 것들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또 정부는 ‘새마을훈장’을 남발하고 개중에는 새마을운동 지도자를 통일주체대의원으로 선발하는 등 유신체제의 외곽조직으로 이용하여 국민으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시멘트는 제공됐지만, 개인의 재산과 무상 노동력으로 완성된 새마을운동 ⓒ 국가기록원
결국, 박 정권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최소 비용으로 농민들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고 농촌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정부 주도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농민들의 조직화는 정권의 변화와 함께 쉽게 와해되었고 마을의 공동체적 성격도 탈각되었다.
한편 박 정권은 유신체제의 선포 후 도시의 지식인, 학생, 노동자, 종교인 등 대항 세력의 저항이 거세지자 새마을운동을 농촌운동에서 전 국민적 정신운동으로 전환시켰다. (주석 6)
주석
5> 한홍구,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유신>, 287쪽.
6> 전재호,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81쪽, 책세상,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