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유명한 일러스트(At a Roadblock on the Road to Bataan)를 그대로 재현한 것. 1941년 12월 26일 바탄반도 전투중 제149 전차연대(149th Armor Regiment)의 Emil Morello 상사가 최후의 수단으로 대전차포에 들이 받는 장면으로 캘리포니아 Camp San Luis Obispo 주 방위군 기지에 있다. 이 전공으로 모렐로 상사는 1983년에 은성훈장을 받았고, 그 이후 생산되는 전차에 리벳 대신 용접을 하게 된 이유중에 하나가 되었다.
M3/M5 Stuart Light Tank. 스튜어트 장군의 이름을 딴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미국제 경전차.
M3
1940년, 유럽과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비하여 이전의 M2 경전차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등장 당시 기준으로 일부국가(독일과 소련)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의 중(中)전차 수준의 화력인 M3 37mm 대전차포를 개수한 주포를 탑재했는데, 이 주포는 당시 37mm급 전차포중에서 성능이 1-2위를 다투는 물건인지라 500미터에서 약 61mm의 장갑을 관통할수 있었다. 여기에 정면 장갑 50mm, 최대 속도 58km를 자랑했기 때문에 당대의 경전차를 뛰어넘어 영국의 초기 순항전차에 근접하는 스펙을 가진 경전차였다.
아프리카 전선의 영국군에 랜드리스법에 의해 공여되었는데, 전선의 병사들에게는 "허니"로 통했지만 공식문서상 호칭은 "스튜어트"였으며, 나중에 미군도 "스튜어트"로 부르게 되면서 "허니"라는 호칭은 점차 사라졌다.
1943년도에 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이 노획해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대의 모든 경전차를 능가하는 스펙이었기 때문에 영국군은 정찰, 수색, 추격 등 경전차 본연의 임무 뿐만 아니라 대전 초기에는 순항전차 대용으로도 사용했다. 다만 유럽전선 기준에서는 어디까지나 경전차였으므로 후반에 가면 빛을 잃게 된다.
하지만 치하나 하고 따위를 굴리고 있던 아시아-태평양 전선의 일본군은 "강력한 중(中)전차"로 인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치하에는 기껏해야 57mm 보병지원용 곡사포라고 읽고 박격포라고 불릴 물건을 장착했으니 공격력이 고자일 수밖에 없었고, 하고의 37mm 대전차포는 동급의 포 중 가장 낮은 성능을 자랑한 것이었으니 경전차 치고는 중장갑인 스튜어트를 제대로 상대할 수 없었다.. 당시 일본군 기준으로 10톤 초과 20톤 이상의 전차는 중(中)전차로 분류하기도 했고... 간신히 47mm 대전차포를 장착해서 스튜어트는 잡을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그후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 스튜어트보다 훨씬 무서운 진짜 중(中)전차가 등장하게 된다. 그후 일본전차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담으로 스튜어트의 방어력, 기동력은 다른 일본군 전차들보다 뛰어났을 뿐더러, 37mm 포의 성능은 그보다 구경이 큰 일본의 47mm 대전차포보다 딸리지 않았는지라, 스튜어트는 일본군이 전선에 투입한 전차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차였다. 참고로 이러한 평가는 일본 위키피디아에서도 나왔다.
M5
수냉식 V형 엔진이 발달한 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성형엔진쪽에 더 노하우가 있었으며, 그때문에 M3 스튜어트 역시 성형엔진을 달아 후방 차체는 높고 전방차체는 낮은 특이한 외형을 가졌으나, M3 후기형과 M5는 내부 공간을 늘리고 전면 방어력을 강화하면서 전후방의 높이차를 없앤 신형 차체를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기간 동안 미국, 영국, 자유 프랑스, 소련, 중국 국민당군, 유고슬라비아 빨치산 등 대부분의 연합국 육군에서 사용했으며, 우수한 성능 덕에 평가도 좋았지만, 전쟁말 신형 경전차인 M24 채피의 등장과, 전후 전술의 변화로 경전차의 입지가 줄어들어 무더기로 퇴역, 대부분 고철신세가 되고 소수는 박물관으로 갔다.
M3s는 (스튜어트 II) : 생산량은 1285대. Guiberson 디젤엔진을 장착했다. M3s의 최후기 생산형은 포탑 바스켓없이 M3A1용으로 개발된 포탑이 장착되어 스튜어트 하이브리드라는 별명이 붙었다.
M3A1 (스튜어트 III) : 1942년 5월에서 1943년 2월까지 4621대가 제작되었다. 포탑 바스켓없이 큐폴라가 있는 새로운 포탑 및 주포에 수직안정장치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과다한 차체기관총이 제거되었다.
M3A1s (스튜어트 IV) : M3A1에 Guiberson 디젤엔진을 장착했다.
M3A3 (스튜어트 V) : 생산량은 3427대. M5에서 적용된 차체 개선을 M3에도 적용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포탑 후면에 무전기를 추가하고 전면과 측면에 수직에서 20° 정도의 경사장갑 및 용접차체를 적용했다. M5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전면 기준으로 측면의 경사장갑이 전면과 같은 각도가 아니라 후방으로 기울어진 각도이다.
M5 (스튜어트 VI) : 생산량은 2075대. 트윈 캐딜락 엔진을 장착했다. 차체는 M3A3과 비슷하지만, 측면이 수직이며 엔진룸이 늘어났고, 포탑이 M3A1과 동일하다.
M5A1 (스튜어트 VI) : 생산량은 6810대. M3A3의 포탑을 사용했다.
T56 GMC : 1942년 9월에 M3A3 스튜어트 차체에 3인치 주포를 장착한 자주포 개발이 시작되었다. 11월에 애버딘 병기 시험장에서 시험 운행을 진행했지만 경전차 차체에 장착하기에는 주포가 무거워서 양산되지는 않았다.
T18 HMC : 75 mm 곡사박격포 캐리어 자주포에 기초를 둔 M3 클래스이다. 75mm M1A1 곡사포를 네모난 상부 구조물에 탑재 시켰다. 프로젝트는 1941년 9월 부터 시작되 어 1942년 4월에 폐기 되었다. 오직 2대만 생 산되었으며, 그대신 75mm 곡사박격포 캐리 어 M8이 선택되어 생산되었다.
M8 HMC : 생산량은 1778대. M5의 차체를 사용하고 주포를 75mm M2/M3 곡사포로 교체한 상부개방식 포탑을 장착한 자주포다.기병 정찰부대에 화력 지원을 제공했다.
M8A1 HMC : M5A1 차체를 사용한 M8 HMC 변종.
T82 HMC : M5A1 차체를 기반으로 설계된 정글전 전용 자주포다. 개방형 차체에 105mm 경곡사포를 장착했다. 1943년 1월 개발이 시작되어 1944년 8월에 시제 전차 두 대를 애버딘 병기 시험장에서 시험 운행했다. 1945년 6월 21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양산되지는 않았다.
1970년에 브라질 기업인 Bernardini가 브라질 군대를 위해 스튜어트 업그레이드마개조를 제안함.
X1A : M3A1을 기반으로 해서 엔진을 샤브 스카니아 디젤 엔진으로 교체했다. 이로 인해 280HP으로 출력이 증가했다. 그 외에도 현가장치를 개선하고 포탑과 차체 상부의 장갑을 신형 디자인과 재질로 완전히 교체했으며, 주포로 DEFA 90mm를 채택하고 신형 화기관제시스템을 도입했다. 총 80대를 생산했다.
X1A1 : X1A에 2개를 1조로 묶은 3개의 신형 현가장치로 기존 현가장치를 교체한 물건. 양산되지 않았다.
X1A2 : X1A1을 기초로 해서 완전히 차체까지 교체가 완료되는 바람에 기존의 스튜어트와는 거의 관련성이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중량 17t에 승무원은 3명, 주포는 90mm, 엔진은 300HP 의 사브 스카니아 디젤엔진이다. 1979년에서 1983년까지 30대가 생산되었다.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미국 경전차트리로 나오는데 M3는 3티어, M5는 4티어로 나온다. 중국 경전차 트리에도 중전차 치하 다음의4티어로 나오고 영국 경전차 트리의 3티어로도 나온다. 그리고 T18 HMC가 구축전차트리 2티어로 나오다가 자주포트리 3티어로 변경 되었다... M8A1은 4티어 구축전차로.나온다. 또다른 파생형인 T56 GMC 3티어 구축전차로.나온다. 또 그리고 T82 HMC가 자주포트리 4티어로 나온다.
히어로즈 앤 제너럴스에서 미군 2티어 경전차로 등장한다. 대부분이 스튜어트에서 중형전차 테크로 넘어가기 때문에, 미군측 전차의 주력이다. 2호 전차와 조우전 시 겨우 이기고 38(t)는 스튜어트의 포를 도탄낼 때가 있어서 선빵 치고도 대부분 패배하나 많은 전차장이 스튜어트에서 중형테크를 탄 만큼 수가 많아 밀리지는 않는다.
[M3스튜어트 탱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대표적인 경전차로써 구경이 작은 37mm 주포에 30구경 3~4문을 장착한 전차였다]
M3스튜어트 탱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대표적인 경전차로써 구경이 작은 37mm 주포에 30구경 3~4문을 장착한 전차였다.
7.62mm 30구경 기관총은 전차의 마운트와 측면및 주포옆에동축기관총으로 장착되었고 포탑 상부에 또 1정이 장착되었다.
[M3 Stuart 전차는 길이 약 4.5 미터 넓이 2.24 미터 높이 2.3 미터 정도의 작은 전차로 M3 37mm 주포와 다수의 중기관총을 장착한 경전차 (Light Tank) 로 설계되어졌다]
M2A4형 전차와 M3A1 형 스튜어트전차의 차체에는 7.62mm 기관총이 무려 4정이 장착되었다.
[M3 스튜어트 전차는 37밀리 주포의 부족한 화력을 메우기 위해 다수의 중기관총을 장착하고 있었는데 이점은 훗날 동남나의 정글전에서 일본군의 상대로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즉, M3A1 전차는 이제까지 세계각국의 경전차 제작역사상 가장 많은 기관총을 장착한 전차였다.
이러한 형태는 태평양전쟁의 정글전에서 일본군들을 상대로한 근접전에서대단한 화력을 발휘하였다.
[M3 스튜어트 경전차는 남북전쟁당시에 남군의 장군으로 큰 활약을 펼친 제임스 이월 브라운 스튜어트(James Ewell Brown Stuart) 장군의 이름을 딴것으로 영국군은 이를 가르켜 허니(HONEY) 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렀다]
이 스튜어트 경전차는 미국 Car & Foundry사에서 생산되었는데 Continental W670-9A 250 HP 7 실린더 래디얼 엔진이 장착되었다.
[M3 스튜어트 전차에 장착되는 Continental W670-9A 250 HP 7 실린더 래디얼 엔진의 모습 약 250마력을 을 내는 이 엔진은 차체무게 14톤에 불과한 스튜어트 전차를 시속 50킬로 이상(도로상 야지에서는 평균시속 28킬로)으로 이동하는데 별문제가 없었다 다만 가솔린 엔진이라 경악스러운 항속거리 (약 185킬로가 고작) 는 문제였지만..]
[M3 스튜어트 전차에 장착된 Continental W670-9A 250 HP 7 실린더 래디얼 엔진은 작고 성능이 우수했지만 정비를 위해 후방의 작은창을 좌우로 열어 제끼고 정비해야 하는 정비성면에서는 최악의 엔진이였다 이는 M4와 M26퍼싱전차에 이를기까지 공통적인 문제점중 하나였다]
스튜어트 전차의 중량은 14톤으로 가솔린 갤런당 1.1마일의 소비율로 최대주행거리는 60마일 정도였다.
37mm주포의 포탄은 총 103발을 적재할수 있었으며 30기관총의 실탄적재수는 5500발로써
소형 경전차였지만 대단한 량의 포탄과 실탄을 적재시킬수 있었다.
[M3스튜어트 저너차는 2차대전 초기 북아프리카와 유럽전선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특히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본군을 상대로 무적의 중전차(뭥?)로 일본군을 향해 악명을 펼쳤다]
그리고 승무원들의 보호를 위하여 45구경의 기관단총도 내부에 적재되었다.
1941년 3월 부터 미국의Car & Foundry사에서M3 스튜어트탱크를 생산 하기 시작했으며이듬해인 1942년 5월 부터는 M3형의 한단계 진보형인 M3A1전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M3스튜어트 전차는1941년 3월 부터 미국의Car & Foundry사에서M3 스튜어트탱크를 생산 하기 시작했으며이듬해인 1942년 5월 부터는 M3형의 한단계 진보형인 M3A1전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M3A1전차는 그전에 나왔던 M3 모델보다 포탑 내부의 장갑을 강화하였고초기의 M3 모델 포탑이 리벳으로 조립된 형태였던데비하여 M3A1형은 주조된 포탑으로 교체되었다.뒤늦게 생산한 몇백대는 가솔린엔진에서 Guiberson이 고안한T-1020 디젤 엔진으로 장착되었다.]
M3A1전차는 그전에 나왔던 M3 모델보다 포탑 내부의 장갑을 강화하였고초기의 M3 모델 포탑이 리벳으로 조립된 형태였던데비하여 M3A1형은 주조된 포탑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뒤늦게 생산한 몇백대는 가솔린엔진에서 Guiberson이 고안한T-1020 디젤 엔진으로 장착되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스튜어트 전차는 태평양전선과 유럽전선의 전투에서 속력이 빠른
쾌속 경전차로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M3스튜어트 전차는 2차대전 개전당시 이미 구형전차에 해당되는 전차였지만 경쾌한 속도와 견고성 그리고 다수의 중기관총 장착으로 정찰차량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전 전선에 걸쳐 널리 이용되었다]
[스튜어트 전차는 미육군을 비롯해 영국과 소련군 그리고 자유프랑스군과 중국군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연랍군측이 랜드리스로 공여되기도 하였는데 비록 37밀리 주포의 위력은 개전당시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경쾌한 속도와 튼튼한 내구성을 가진 경전차로 인기리에 사용되었다]
[M3스튜어트 전차를 특히 소련군에게도 랜드리스로 공여되기도 하였는데 전차에만은 이미 다른 연합군에 비해 우수한 성능을 내는 T-34나 KV전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다만 빠른 기동성과 부족한 전차수량을 메우기 위해 보병지원용으로 꽤 많은수가 소련군에 의해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포구경이 작은 37mm로 화력이 약하여 뒤에 생산된 75mm 주포를 장착한 M4 셔먼전차가
스튜어트 전차의 지원전차가 되었다.
이후 스튜어트 전차는 주로 측면공격의 지원과 정찰전차로 활용된다.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부터 이 스튜어트전차를 전투에 활용했던 영국군은
이 전차에 Honey 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M3스튜어트 전차는 특히 영국군에서 널리 이용되었는데 전차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영국군 입장에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처지가 못되었다. M3 스튜어트 전차를 공여받은 영국군은 이를 가르켜 허니 (HONEY) 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렀으며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군의 전차를 대상으로 꽤 많은 활약을 펼쳤다]
M3/M5 Stuart Light Tank. 스튜어트 장군의 이름을 딴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미국제 경전차.
포탑 옆에 달린 구조물은 일종의 증가장갑이다.포탑에 장착된 기관총을 사격할 경우 전차장이 직접 포탑 바깥으로 나와야 했는데, 이 경우 적군의 사격에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에 빠지기 때문에 이런 증가장갑을 더 달아서 전차장을 보호했다.
1940년, 유럽과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비하여 이전의 M2 경전차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등장 당시 기준으로 일부국가(독일과 소련)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의 중(中)전차 수준의 화력인 37mm 주포를 탑재했으며, 이 주포는 당시 37mm급 전차포중에서 성능이 1-2위를 다투는 물건인지라 500미터에서 약61mm의 장갑을 관통할수 있었다. 여기에 정면 장갑 50mm, 최대 속도 58km를 자랑했기 때문에 당대의 경전차를 뛰어넘어 영국의 초기 순항전차에 근접하는 스펙을 가진 경전차였다.
[M3스튜어트 전차는 1940년, 유럽과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비하여 이전의 M2 경전차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등장 당시 기준으로 일부국가(독일과 소련)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의 중(中)전차 수준의 화력인 37mm 주포를 탑재했으며, 이 주포는 당시 37mm급 전차포중에서 성능이 1-2위를 다투는 물건인지라 500미터에서 약61mm의 장갑을 관통할수 있었다. 여기에 정면 장갑 50mm, 최대 속도 58km를 자랑했기 때문에 당대의 경전차를 뛰어넘어 영국의 초기 순항전차에 근접하는 스펙을 가진 경전차였다]
M3 37mm 대전차포는 1930년대에 미국에서 대전차포로 설계되었다. 이 때 제작에 참고한 대전차포는 독일제 Pak 36, 스웨덴제 37mm 보포스포, 체코슬로바키아제 vz.34와 vz.37, 심지어는 일본제 94식 37mm 대전차포와 1식 37mm 대전차포까지 다양하였다. 이중 독일제 Pak 36을 주로 참고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에 해당 대전차포의 카피판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M3 37mm 대전차포는 1930년대에 미국에서 대전차포로 설계되었다. 이 때 제작에 참고한 대전차포는 독일제 Pak 36, 스웨덴제 37mm 보포스포, 체코슬로바키아제 vz.34와 vz.37, 심지어는 일본제 94식 37mm 대전차포와 1식 37mm 대전차포까지 다양하였다. 이중 독일제 Pak 36을 주로 참고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에 해당 대전차포의 카피판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발기간이 Pak 36보다 10여년 후이기 때문에 기본적 구조만 같다. 일단 경량화되었으며 구경장이 더 커서 관통능력이 500미터에서 최대 61mm를 관통했다. 더불어서 발사속도가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탄약도 더 크고 무거우며 강력한 것을 사용하는 바람에 호환성이 없다. 따라서 카피판이라기보다는 강화판이라고 보면 된다. 외견상으로도 포방패가 전혀 다른 모양이라서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M3 37밀리 대전차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북아프리카 전역과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미 해당 시점에서는 37mm 대전차포는 종류를 막론하고 2선급 무기가 될 정도로 독일군과 연합군 전차들의 장갑이 강화되어 이도 안먹히는 안습을 연출.. 특히 막 데뷔한 티거같은 괴수에게는 그야말로 도어노커. 심지어는 이탈리아군의 허접한 M13/40같은 전차도 격파하기 힘들 지경이라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상륙한 미군이 대전차전을 위해 구축함과 순양함의 함포를 동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북아프리카 전역과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미 해당 시점에서는 37mm 대전차포는 종류를 막론하고 2선급 무기가 될 정도로 독일군과 연합군 전차들의 장갑이 강화되었다. 특히 막 데뷔한 티거같은 괴수에게는 그야말로 도어노커. 심지어는 이탈리아군의 허접한 M13/40같은 전차도 격파하기 힘들 지경이라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상륙한 미군이 대전차전을 위해 구축함과 순양함의 함포를 동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M3 37mm 대전차포는 개전이전에 이미 성능이 한참 모자르는 포로 운영에는 6~7명의 병사가 필요했다. 인력으로 견인도 가능하지만 보통 하프트랙이나 지프에 메달고 이동하였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일선의 대전차포 부대에서의 수요가 바닥을 쳤고, 1942년에 11,812문이 생산되었으나 상당수가 차량탑재용이나 태평양 전선으로 배치가 변경되었다. 공수부대에서 사용하는 안도 있었으나 차라리 비슷한 크기에 위력이 강한 75mm 경야포가 더 좋다고 해서 거절당했다. 결국 1943년에 4,298문이 생산된 것으로 생산이 종료되었고, 일선 대전차포부대의 무장은 영국제 QF 6파운더 포를 라이센스 생산한 M1 57mm 대전차포로 교체됐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선 전혀 상황이 달라서 종전때까지 1선에서 다양한 활약을 할 수 있었다. 일본군의 전차는 치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 장갑강화를 경시한데다가 성능이 열악하기 때문에 37mm 대전차포로도 충분히 관통이 가능했다. 덤으로 주요 전장이 대형 기갑차량이나 대형포가 들어가기 힘든 정글이나 밀림, 그렇지 않으면 매우 좁은 산호섬같은 곳이라 가볍고 인력으로도 쉽게 이동이 가능한 37mm 대전차포는 정말 사용하기 편리한 물건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군의 전차는 물론 일본군의 진지에 대한 공격용으로도 사용되었다. 물론 일본군의 진지는 37mm 포탄 1발로 침묵할 수준의 물건이 아니지만 이건 분당 25발의 빠른 발사속도와 충분한 탄약으로 만회할 수 있었다. 또한 대인유탄과 M2 카니스터 산탄을 사용해서 반자이 돌격을 하는 일본군을 한방에 쓰러뜨리거나 밀림에 숨어서 저격을 하는 저격수를 때려잡는 화력지원용으로도 이용되었다. 심지어는 밀림의 수목제거를 위해서도 포탄을 쏘는 등 많이 사용되었다.
이로 인해 37mm 대전차포중 종전까지 가장 다양하고 유용하게 사용된 대전차포로 기록되었다.
개발기간상 M3 37mm 대전차포는 미군의 초기 전차와 장갑차에 널리 탑재되거나 심지어 윌리스 MB 지프에도 탑재되는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 M3 37mm 대전차포는 미군의 초기 전차와 장갑차에 널리 탑재되거나 심지어 윌리스 MB 지프에도 탑재되는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일단 M3 스튜어트 경전차와 M3 리 전차에 각각 주포와 부포로 탑재되었는데, 북아프리카 전역 초기에 빈약한 무장을 가진 영국군이 유용하게 사용했다. 영국군도 관통력에서는 더 우수한 2파운더 대전차포가 있었지만, 이 물건은 대인유탄이 없어서 적의 대전차포를 제압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비슷한 위력을 가진 37mm 전차포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37mm 급 대전차포가 1선급 대전차능력을 상실하자, 각종 정찰 장갑차에 탑재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M8 그레이 하운드 장갑차다. 이외에도 M3 하프트랙에 탑재되는 등 다양한 장갑차에 탑재되었다.
태평양 전쟁에 주로 쓰인 상륙장갑차에도 화력지원을 위해 탑재되었으나, 아무래도 이런 임무에서는 대인유탄 위력이 뛰어난 편이 더 좋기 때문에 무장이 75mm 급으로 교체된다. 하지만 37mm 도 일본군을 상대로는 뛰어난 대전차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종전까지 37mm 를 탑재한 상륙장갑차도 사용되었다.
아프리카 전선의 영국군에 랜드리스법에 의해 공여되었는데, 전선의 병사들에게는 "허니"로 통했지만 공식문서상 호칭은 "스튜어트"였으며, 나중에 미군도 "스튜어트"로 부르게 되면서 "허니"라는 호칭은 점차 사라졌다.
[M3스튜어트 전차는 2차대전 개전시 이미 구형전차로 가치는 적었지만.. 경전차로 운영이 쉬웠다]
[특히 별다른 상대가 없던 동남아시아의 정글에서는 일본군을 상대로 무적의 중전차로 통했고 다수의 기관총을 탑재하여 근접전에서 많은 활약을 펼칠수 있었다]
[일부는 랜드리스법에 의해 소련군으로 공여되기도 하고..]
당대의 모든 경전차를 능가하는 스펙이었기 때문에 영국군은 정찰, 수색, 추격 등 경전차 본연의 임무 뿐만 아니라 대전 초기에는 순항전차 대용으로도 사용했으며,[7]치하나 하고 따위를 굴리고 있던 아시아-태평양 전선의 일본군은 "강력한 중(中)전차"로 인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치하에는 기껏해야 57mm 보병지원용 곡사포를 장착했으니 공격력이 고자일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47mm 대전차포를 장착해서 스튜어트는 잡을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그후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 스튜어트보다 훨씬 무서운 진짜 중(重)전차가 등장하게 된다. 그후 일본전차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담으로 일본군이 노획한 스튜어트는 종전 때까지 일본군이 보유한 최강의 전차였다.
[길이 4.5 미터 폭 2.21 미터의 작은전차에 5명이나 구겨넣어 거주성은 최악...] M3
[훗날 장갑을 강화한 M5로 발전을 하기도 하고..]
수냉식 V형 엔진이 발달한 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성형엔진쪽에 더 노하우가 있었으며, 그때문에 M3 스튜어트 역시 성형엔진을 달아 후방 차체는 높고 전방차체는 낮은 특이한 외형을 가졌으나, M3 후기형과 M5는 내부 공간을 늘리고 전면 방어력을 강화하면서 전후방의 높이차를 없앤 신형 차체를 사용했다.
[장착된 Continental W-670-9A, 7 Cylinder air-cooled radial 엔진은 250마력을 내는 성형엔진으로 내구성과 성능은 우수했지만 한번 급유로 119킬로 밖에 가지 못하는 항속거리의 부족과 정비응 뤼해서는 후방의 엔진실을 모두 드러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기간 동안 미국, 영국, 자유 프랑스, 소련, 중국 국민당군, 유고슬라비아 빨치산 등 대부분의 연합국 육군에서 사용했으며, 우수한 성능 덕에 평가도 좋았지만, 전쟁말 신형 경전차인 M24 채피의 등장과, 전후 전술의 변화로 경전차의 입지가 줄어들어 무더기로 퇴역, 대부분 고철신세가 되고 소수는 박물관으로 갔다.
[M3스튜어트 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 전기간 동안 미국, 영국, 자유 프랑스, 소련, 중국 국민당군, 유고슬라비아 빨치산 등 대부분의 연합국 육군에서 사용했으며, 우수한 성능 덕에 평가도 좋았지만, 전쟁말 신형 경전차인 M24 채피의 등장과, 전후 전술의 변화로 경전차의 입지가 줄어들어 무더기로 퇴역, 대부분 고철신세가 되고 소수는 박물관으로 갔다.]
[중국 국민당에서 사용된 M3A1스튜어트 경전차의 모습]
[전차개조의 달인 이스라엘군도 건국초기에 이것저것 사들인 전차로 널리 사용하기도 하였다. 다만 이때는 건국초기라 급했던지 이스라엘군 특유의 마개조는 하지 않은 영국군 사양으로 사용한 모양]
첫댓글 저도 월탱해요 ㅋㅋ 워쉽도 하고 웤선더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