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1203 (우산리 419-1)
한국 천주교회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
천진암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초기 선조들이 선교사 없이 학문적 지식의 수준에 있던 천학(天學)을 자발적인 진리 탐구를 위한
다년간의 강학회를 통하여 종교적인 신앙의 차원인 천주교로 승화, 발전시키고 천주교 신앙 공동체를 시작한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다.
1779년 당시 이벽(李檗, 1754~1785, 세례자 요한) 26세, 정약전(丁若銓, 자 天全, 1758~1816) 21세, 이총억(李寵億, 1764~1822) 15세,
권철신(權哲身, 1736~1801, 암브로시오) 44세 등 주로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이 모여서 그 당시 아주 생소하고 이상한
천주교 책을 읽고 실천하는 일을 하였다.
천진암 강학은 한국 천주교회 공동체 형성의 배경이자 기원이 된 강학을 말한다.
권철신이 이끄는 성호학파 신진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학문 연구 모임으로, 주어사와 그 너머에 있는 천진암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특히 이벽과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요한)은 일찍이 천진암을 자주 찾아 함께 학문을 연구하곤 하였으며,
이 천진암은 주어사와 함께 녹암계의 강학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두 절이 모두 권철신의 집이 있던 양근의 한강개나 이벽이 살았던 광주, 정약용이 살았던 광주 마재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은 1970년대에 사적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였고, 1979년에는 경기도 포천에서 이벽의 유해가 이장되었다.
이어 1981년에는 화성군 반월면 사사리에서 정약종(丁若鍾, 1760~1801, 아우구스티노)의 유해가,
인천 만수동에서 이승훈(李承薰, 1756~1801, 베드로)의 유해가, 대감마을 뒤편의 효자봉 자락에서 권철신(權哲身, 1736~1801, 암브로시오),
권일신(權日身, 1742~1792,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유해가 각각 천진암으로 이장되었으며,
1981년 12월에는 경기도 광주 윗배알미리에서 정하상(丁夏祥, 1795~1839, 바오로) 성인의 유해가 수습되어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로써 이 성지에는 한국 천주교회 공동체의 성업을 이룬 이벽,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및 평신도만의 자율적 신앙 공동체가 보편 교회로의 접착 과정에서
주문모 신부를 도와 큰 역할을 한 정약종 등 한국 천주교회 초기 교회 지도자 등
5위 묘가 모셔져 있고, 조선교구 설립자 묘역에는 정하상, 유진길(劉進吉, 용심, 1791~1839, 아우구스티노) 및
한국 천주교회 초기 선조들의 직계 가족인 정약전, 정지해, 이석 등 선인들의 묘가 안장되어 있다.
이 성지에 한국의 민족 종교들과 유교, 불교, 천주교 등의 건축미 일부씩을 참고하면서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을 세우고 있다.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머릿돌에
친히 작성하셔서 친필 서명하여 주신 교황 강복문에서 좀 더 명확하게
우리 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한반도 평화통일 사목 시책을 밝혀주셨다.
즉,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에 건립되는 새 성전 머릿돌에 교황 강복을 베푸노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온 겨레가 영원히 화목하기를 비노라.”
▒ 허망의 잠을 깨며 (천진암에서) <김영수> ▒
꿈 깊어야
향내 맡을 수 있는 것입니까
목숨 걸어 대지 밝히며
골짜기 거느리는 이들 노래
나는 사랑이 부족해서
낮에도 아프게 기우는 별 하나 봅니다
가슴 안으로 파아란 선 예리하게 그어질 때
나는 비로소 허망의 잠을 깨며
천진암의 샘물에 닿습니다
추억과 꿈 속에 도는 비밀
문득 눈 뜨고 다가오는 물소리
나는 높이 오르는 바람 하나 타고
절벽 위 숨은 꽃잎 하나 흔들다
이곳 골짜기 묘지들 위로
한 올 햇살 되어 떨어질 수 있을까요
부활처럼 흰 구름 속으로
아득히 스며들 수 있을까요
◆ 순례지 안내
○ 한국 천주교회 초기 선조 5위 묘
이벽을 중심으로 젊은 학자들에 의해 한국천주교회가 시작된 곳인 천진암은, 여러 역사 자료에 의하면, 천주교 강학회가 열릴 당시,
폐허가 된 버려진 암자로 소개되고 있고, 후에 다산이 쓴 시에도 천진암을 가리켜 寺破無舊觀(절은 파괴되어 옛모습을 볼 수 없구나)라고
읊은 구절이 있다.
또 강학회 이후에도 절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은 홍경모의 남한지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원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약 150여 년 전에 절이 완전히 없어져 그 이후로 화전 논밭으로 변하였다.
이렇게 논밭이 되어버린 천진암 터를 1978년에 처음으로 변기영 신부가 매입하면서 본격적인 천진암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1979년에 경기도 포천군에서 광암 이벽 성조의 묘를 기적적으로 찾아 이장하였고 이후 1981년에 정약종, 이승훈. 권철신. 권일신 성현 등의
묘를 이장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한국천주교회 초기 선조 5위 묘역이 조성되게 되었다.
○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터
성역로를 따라 300m 정도를 올라가면 약 5만여 평의 광장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100년 계획으로 대성당을 짓고 있는 현장이다.
천진암 대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들의 자발적인 교회 창립정신과 거룩한 순교정신을 오늘에 기리고,
또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건립되는 민족 대성당인 동시에, 한민족이 대를 이어가며 건축함으로써 길이길이 민족화합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100년 계획으로 건립되고 있는 성당이다.
동서남북의 길이가 각각195m, 지붕높이가 85m인 천진암 대성당은. 유교의 서원과 불교의 대웅전 지붕과 처마 및 천주교회 성당의
내부 구조를 종합하여 설계되었는데, 이는 천진암이, 유교 학자들이 불교암자에서 천주교를 시작한, 儒ㆍ佛ㆍ天이 합류한 성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성당 터에는 교황 요한 바울로 2세의 천진암 대성당 강복문이 새겨진 머릿돌(27톤, 4m X 1.5m X 1m)과,
대성당 중앙 제단에 놓일 제대석 (길이 10.5m, 넓이 2.3m, 높이1.5m, 무게 87톤)이 있다.
○ 성모 경당
1988년에 터를 닦기 시작하여 1999년에 축성식을 가진 성모 경당(240평, 폭20m, 길이 40m, 천장높이15m)은
약 1000여명의 신도가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경당으로서, 20여 년간의 천진암 성역화 사업과 수많은 공사 중에,
무엇보다도 인사 사고가 없도록 특별히 보호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모님께 봉헌한 경당이다.
이 경당은 대성당이 지어지는 동안 다목적 용도를 겸하여 어머니 성당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 박물관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역화를 계기로, 신앙 선조들의 여러 묘소 발견, 발굴, 이장, 각종 유물과 친필,
관계 고문서 수집 및 103위 시성 추진 자료, 200주년 기념 관계자료 등 한국 천주교회의 소중한 유물과 자료들을 수집하여,
보다 안전하게 보전하고, 체계있게 정리, 전시, 활용케 하기 위하여, 1980년대 초부터 추진되어 온 천진암 천주교 박물관은
1992. 2. 15 김남수 주교님에 의해 정식으로 승인을 받았다.
박물관 건물은 1988년 터닦기 공사를 시작하여 지난 1997년에 기초공사를 완료하였고,
현재, 박물관 옆에 위치한 임시 전시관에 창립선조들의 묘 이장과 관련된 유물 일부가 전시되어 있어,
순례자들이 미리 신청을 하면 관람할 수 있다.
○ 조선교구 설립자 묘 : 성 정하상, 유진길의 묘
이 땅에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해 수차례 북경을 다녀오고 조선교구의 설립을 위해 헌신하신 성 정하상과
성 유진길의 묘가 조선교구 설립자 묘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묘역 앞에는 정하상 성인 기념비를 세울 계획이며, 또한 경기도에서 건립한 청소년 야영장이 바로 앞에 있다.
■ 순교자
◆ 한국 천주교회 초기 선조 5위
- 광암 이벽 성조/직암 권일신 성현/녹암 권철신 성현/만천 이승훈 성현/선암 정약종 성현 -
200여 년 전 우리 신앙의 선조들께서 선교사 없이 이루신 한국천주교회 공동체 성립 위업에 관해서는 역대 로마 교황님들을 비롯하여
모든 이가 경탄하며 존경하고 있으며, 이분들의 죽음 또한 장렬한 순교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조선 천주교회 공동체 성립에 기여한 이벽 성조 또한 격리 감금 중에 단식 아사(餓死)시켰으나, 문중 유림들의 말에 의하면,
독살(毒殺)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역병(疫病)으로 병사한양 소문을 내었다(1785년).
권일신 성현은 장타(杖打) 형벌을 당한 후, 귀양길의 첫 주막 밤에 장독사(杖毒死)한 것으로 처리되었으나, 밀행(密行)한 자객을 시켜
타살(打殺)하였다는 설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으며(1792년), 권철신 대학자는 형조에서 사형언도가 내려지기도 전에
65세의 노학자(老學者)로서 박해자들의 끓고 타는 증오심으로 먼저 타살(打殺)되고(1801년)나서 후에 판결문을 지어내리는
어처구니없는 참극도 자행되었다.
이승훈 성현은 박해자들이 이승훈 성현의 천주교 포기를 억지로 허위로라도 조작하여 발표하여, 자기들이 이겼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만 하였기에, 신앙을 포기했다고 보고하고 선전하면서도, 고집을 부리며 천주교를 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약종 성현과 함께 즉시 잔인하게 형벌한 후, 참수(斬首) 하였다(1801년).
한국 천주교회 초기 선조 5위
1. 이벽 (李檗, 세자 요한)
1754 :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화현리에서 탄생
1783 : 이승훈을 북경 천주교회로 파견
1784 : 이승훈에게서 영세
1785 : 명례방 집회로 을사박해 중, 가내 연금 상태에서 아사벌(餓死罰)로 단식순교(斷食殉敎)
2. 이승훈 (李承薰, 베드로)
1756 : 서울 중림동 만초천 언덕에서 탄생
1783 : 북경 천주교회로 파견
1784 : 영세 받고 귀국
1785 : 명례방 집회 참석
1787 : 북경 주교에게 보고서 저술, 발송
1801 : 서울 서소문 형장에서 참수 순교
3. 권일신 (權日身,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742 : 경기도 양평군 양근면 양근리에서 탄생
1779 : 천진암 강학회 참석
1784 : 이벽에게서 영세
1785 : 명례방 집회에 참석
1791 : 신해박해 때 서울 감옥에서 혹심한 장타(杖打)로 귀양 도중 순교
4. 권철신 (權哲身, 암브로시오)
1736 : 경기도 양평군 양근면 양근리에서 탄생
1779 : 천진암 강학회 참석, “유한당 언행실록” 서문 저술
1784 : 이벽에게서 영세
1801 : 신유박해 때, 서울 감옥에서 옥중고문으로 순교
5. 정약종 (丁若鐘, 아우구스티노)
1760 :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능내리 마재에서 탄생
1795 : 명도회 회장으로 활약
1801 : 서울 서소문 형장에서 참수 순교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