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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덕분에 주말마다 비 구경을 하게 생겼습니다. 월드컵이라도 있어서 주말이 다행이긴 합니다.
그렇게 비가 쏟아지고 햇볕 하나 안 나지만 날은 후텁지근하고, 입맛은 없고, 찬물에 샤워 한 번 하고 나면 뭔가 시원하게 목구멍을 밀어줄 것이 필요한데... 아아, 시원한 냉면이나 한 사발 땡기러 가까...
그렇쯤다. 찌는 듯이 덥거나 비가 오거나 요즘 같이 온 몸과 마음이 장마전선의 영향하에 놓였을 때 따끈한 밥을 먹으며 '입맛 없다'고 투덜대는 것은 밥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이에 면의 계절, 차가운 국물의 계절의 한복판에서 여름 입맛을 돋구어 줄 울끈불끈 여름면빨 사총사를 소개하니 올여름은 이들의 애무에 돌돌 휘말려 보도록 하자구요. 이름하여 여름특선 麵食隨行! 출발합니다.
1. 영양만점 콩국수 - <면과육>
보충수업 때문에 여름방학인데도 찌는 오후까지 학교에서 고문당하다 돌아오면 식탁 위 파란 플라스틱 바가지에 한 가득 노오란 콩이 물에 잠겨 있곤 했다. 그 배색만 보아도 파블로프의 개 마냥 고소한 기운이 코끝을 때리는 기분이 들던 학창시절.
양념이나 육수를 준비해야 하는 냉면류에 비해 콩국수는 삶은 콩으로 콩국을 만들어 면만 넣어 먹으면 되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도 여름별미로 사랑을 받는 음식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해 주시던 손맛이 콩국수의 맛있음과 없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즉 '울 엄마표 콩국수가 제일 맛있다' 라는 것.
또 콩국수는 호불호(好不好)가 확실히 구분되는 음식이다. 그 특유한 고소함과 혀와 목구멍을 자극하는 칼칼함이 사람에 따라서는 느끼함과 음식으로서 적응하기 어려운 퍽퍽함으로 느껴지곤 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은근히 까다로운 메뉴가 되어버리는 콩국수... 장안에 잘 한다고 알려진 집도 콩국이 걸쭉해서 맛있는 집, 묽어서 맛있는 집으로 갈리곤 하는데 <면과육>은 그 중 선자에 해당한다.
아파트 숲 사이 상가 건물 지하 그것도 가장 깊은 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 면과육은 그 자리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5 년여밖에 되진 않지만 원래 자리의 앞집, 옆집 그리고 그 옆집까지 자리를 확장해 손님을 모실 정도이니 그 맛에 대해선 우선 안심하고 들어간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 내 자식에게 먹일 음식이다 라는 생각으로 가장 좋은 재료를 선별해 쓴다는 주인장은 자신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분이 좋을 때 만든 음식은 손끝을 통해 엔돌핀이 음식에 전달되는지, 기분이 나쁠 때 만든 것과 맛이 다르기 때문이라 한다. 그날 만든 재료가 다 떨어지면 장사를 마감하는 것도 기본 원칙.
(좌) 비오는 평일 점심, 손님이 많다. (우) 바쁜 중에도 밝은 웃음으로 손님을 대한다.
이런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 콩국수는 어떨까. 우선 충청도 도고온천 근처에서 친지가 재배하는 콩을 전량 매입해 그 콩으로 만든 콩국이 떨어지면 콩국수 메뉴를 내려버린단다. 콩국은 물론 콩 100 %. 비타민이 파괴되는 믹서가 아닌 전동맷돌로 갈고 물을 전혀 타지 않아 진하고 고소하다.
의례 콩국수라 하면 소금이나 설탕을 담뿍 넣어 간을 맞추곤 하는데 여기의 콩국은 약간의 소금간이 미리 되어 나오니 맛을 먼저 본 후 간을 맞추는 것이 좋고 그보다는 별도의 간을 하지 않고 매운 겉절이 김치와 함께 먹는 것을 추천한다.
(좌) 콩국수가 나오기 전에 먹는 보리비빔밥. (우) 열무김치와 겉절이 김치
<면과육>
* 즐길 만한 메뉴 : |
2. 남양주 <개성집> 오이소박이 냉국수
애당초 요 주위는 냉국수나 동치미국수집이 많은 동네로, 그 중 개성집은 추어탕 전문집으로 유명한 집이다. 또 그 유명이 얼마나 유명하냐면, 전 김영삼 대통령이 남양주 운길산을 찾았을 때 하산길에 들려 수행원들과 추어탕과 만두, 그리고 이 냉국수를 먹고 갔을 정도이며, 그 사실이 이 집의 벽에도 사진으로 걸려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고... 그렇다는 거다. 사람이 대통령이었던 거지, 입맛이 대통령이라는 건 아니니깐. 암튼 그렇다. 그 얘기로 유명하다는... 사실 그전에도 맛좋기로 유명했는데 역시 대통령 빠워가 한몫 한다는 그런 얘기다.
이 집의 오이소박이냉국수(5,000원)는 서걱서걱 얼음 동동 뜬 김치국물에 오이소박이 덩어리가 몇 개 그리고 소면국수가 한 주먹 떡하니 몸을 담그고 반신욕 하듯이 수건처럼 머리에 무를 둘러 얹은 형상인데, 언뜻 보기엔 뭐 그리 대단한 거라거나 여름 한철 대표음식인 냉면보다 비쥬얼이 낫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국물에 술술 말아 한 젓가락 말아올려 한 입 척 하니 얹어 씹으니 상큼한 국물맛과 함께 차갑고 쫄깃하게 씹히는 면발의 맛이 썩 훌륭하다. 거기에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소박이와 풋풋한 향이 묻어나는 씨언~한 김치국물이 목구멍을 차갑게 훑어 내려가니 오한이 느껴질 정도다. 차가운 국물맛도 맛이지만 전혀 불지 않은 쫀쫀한 면발은 국수 먹는 맛을 한층 더해준다.
그리하여 그 면발의 맛을 공공연하게 물어봐서 그 비결을 비교적 수월하게 입수, 독자 여러분께 공개하나니... 뭣이든 이렇게 국수를 삶아 그 쫄깃면발의 극치를 즐겨보시라.
우선 물을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국수를 '풍덩' 넣고 다시 물이 끓으면 차가운 물을 한 바가지 붓는다. 그리고 국수가 익으면 건져서 찬물에 담궜다가 뺀 다음 소쿠리에 건져내어 손으로 비벼대면 국수가 쫀쫀해진다고 한다. 그럼 한 번씩들 해보시길.
양이 조금 부족하시다.. 그럼 한 그릇 더 시켜 먹지 마시고 소면사리(2,000원)만 시켜드셔도 된다. 아니면 이 집의 만두도 깔끔한 맛으루다가 호평을 받고 있으니 찐만두라도 한 접시 드셔도 좋겠다. 또 아예 전문메뉴인 추어탕을 드셔도 좋은데 가마솥에 푸욱 삶은 우거지맛이 국물에 진하게 배어있으며 통짜를 드시고 싶으시면 갈지 말고 달래면 된다. 어느 매체의 기사를 보니 으레 주는 게 통짜고 갈아달래야 갈아준다더니, 바뀌었는지 으레 주는 건 갈아주고 말해야 통짜로 준다.
[개성집] 031-576-6497 * 즐길만한 메뉴 : |
3. 매콤새콤 쫄면 - <김가네 칼국수>
인천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 쫄면이라는 음식은 모 만두 체인의 강력한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맛의 평준화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쫄면 하나로 맛집으로서 명성을 떨치는 집도 딱히 없거니와 있다 하더래도 독창적인 맛보다는 깔끔한 맛을 유지하는 정도이다.
이렇게 그저 '그 맛이 그 맛일세' 라고 넘어가기엔 서운하니 깔끔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함을 가진 쫄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것이 왠 그리스로마 시대 과일 쟁반인가 하겠지만(오바해서) 이 집 쫄면은 스테인레스나 플라스틱으로 된 오목한 대접이 아닌 이런 널찍한 쟁반에 담겨져 나온다. 이름하여 '쟁반쫄면'
'다른 집이랑 별로 틀릴 게 없는데...' 라는 주방장의 말처럼 오이, 당근, 콩나물, 상추, 깻잎으로 일반적인 재료를 쓰고 반으로 갈라 올린 달걀도 별다를 것이 없다. 이 집의 쫄면이 가진 장점은 면발에 있다. 쫄깃쫄깃하다 하여 쫄면이라 이름 붙혀진 것이라 할 지라도 그 면이 초등학교 시절 불량식품 씹는 듯 질겅질겅 하는 느낌을 주면 낙제점. 김가네 쫄면은 우선 두께가 얇고 부드러워 씹어서 잘라내어야 하는 부담감을 덜어 준다.
양념의 맛은 다른 집보다 새콤하고 매콤한 맛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한 자리에서 10 년을 해 온 가게이고 또 그 가게의 10 년을 주방에서 한결같은 맛을 내온 주방장의 손맛에 아주 깨끗한 맛을 낸다.
[김가네 칼국수]
* 즐길만한 메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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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색다른 여름 면빨 - <연변 냉면>
날이 좀 더워진다 싶으면 빵집 유리창에 '팥빙수 개시' 라는 종이가 내걸린다. 그보다 조금 빨리 그리고 강렬한 빨간 색 글씨로 자장면집이며 분식집 유리창에 '냉면 개시' 라 쓰여진 길다란 종이가 걸린다. 마치 '여름이 왔다! 나를 따르라!' 며 선동하는 문구가 되어 사람을 흥분하게 만든다.
그렇다. 위에서 열심히 썰한 국수류는 아무리 콩국으로 뽀얗게 단장하고 오이소박이로 화려하게 치장해도 여름 면빨의 큰 형님 자리는 냉면에게 고스란히 내 놓아야 함에는 별 이의가 없으렷다.
냉면은 그 종류가 참으로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평양 냉면과 함흥 냉면, 근 몇년 전부터 선전하고 있는 냉면계의 총아 칡냉면, 기타 야콘냉면, 녹차냉면 등등 재료에 따라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
그리고 여기에 한국에서 팔리는 냉면의 종류로서 한 자리 차지하기엔 아직 멀었지만 독특한 맛에 찾아볼 만한 것이 있다. 바로 '연변 냉면' 이 그것이다. 지역상으로 따져보자면 우리 나라의 영역를 벗어난 냉면이라 아무래도 생소하긴 하나 그 맛에 적응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고급냉면... 우리 나라에선 음식엔 가져다 붙히지 않을 것 같은 단어 '고급'...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수박 화채 담는 보울 만한 유리그릇에 면과 육수, 그리고 메추리알, 고기완자, 편육, 수박, 방울 토마토, 게맛살, 은이 버섯 등이 담겨 나온다. 먹는 방법 역시 특이하게 작은 국자를 이용해 면을 담고 그 위에 고명을 얹어 후루룩 마신다.
사골 등을 넣어 푹 고은 비법육수는 첫 맛에 새콤함이 먼저 전해지나 갈수록 매운 맛이 시나브로 쌓여 마지막에 가서는 수박이나 방울 토마토를 찾아 먹게 된다. (그 다양한 고명들의 역할을 아시겠는가?)
연변냉면의 가장 독특한 매력은 면에 있다. 메밀과 도토리 전분 등 열 가지가 넘는 곡물로 만든 면은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바로 뽑아내기 때문에 젓가락에 감겨 올라오는 모양새 부터 탱탱함이 느껴진다. 또 전혀 질기지 않아 아이들이 먹기에도 부담이 없을 듯.
가격면에서 비싼 감이 있으나 한 계절의 별미로서, 그리고 중국으로 이주해 간 우리 민족들이 개발해 낸 음식을 한국에서 맛본다는 의미로 찾아본다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가게 성격상 연변족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주류와 함께 요리를 시킨 후 나중에 냉면을 따로 시켜 먹었다. 그 요리라는 것은 역시 우리가 보아서는 무엇인지 모를 것들.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면 주인장에게 물어물어 먹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 천지에서 중국 요리가 아닌 연변 요리를 맛볼 곳은 흔치 않을 테니까 말이다.
* 닭고기, 소고기 등을 갈아 만든 고기완자에 고기의 뼈까지 갈아서 들어가니 씹을 때 놀라지 말도록
[연변냉면] 02-844-5544 * 즐길 만한 메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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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이렇게 여름 한철을 주무대로 보내는 네가지 면발 사총사를 소개해보았습니다. 아마도 혹자는 '엣끼! 내냉큼 물렀거라.. 그런 것들은 내가 아는 이 집만 못할 걸' 하는 독자가 있다면, 아래 리플을 달아 맛있는 면식찾아 삼천리를 떠돌고 있는 다른 독자들에게 요긴한 정보를 선사하기를 주저하지 마시길...아울러, 독자들이 주신 정보를 수집해, <2탄 면발 왕중왕전>을 취재 후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개념 여행미디어그룹 노매드(www.nomad21.com) 원미동/양갱
첫댓글 오늘 저녁엔 잔치국수로 ~참 맛이 좋았어요.. 와~ 냉면도 먹고싶어랑~~ 사주실 분~!!!!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