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가지 곰삭은 맛이 꼬들꼬들 톡톡,밥 두공기로도 부족하오.
가게만 100여곳 젓갈고장 강경
조선시대 3대장 형성 유통 중심
수산물 보관할 자체 염장법 발달
토굴형 저장고 365일 저온숙성
짜지않고 저마다 특색있는 맛
조개젓 감칠맛 토하젓의 구수함
종류마다 각기 다른향취와 풍미
시골 인심 가득 시래기 된장은 덤
온동네가 젓갈 삭는 냄새로 구수하다,콤콤하면서도 웅숭깊은 짙은 감칠맛의 절정 참으로 참기힘든 흥미로운 자극이다, 깊고 풍성한 곰삭음 의 풍미가 이렇게 주체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깅렬한 식욕으로 다가 온다, 강경젓갈의 시장을두고 하는말이다,논산시 강경을 흔히 젓갈의 고장이라고 부른다,그도 그럴것이 강경하면 젓갈 젓갈하면 강경이 생각날 정도로 전국최대 규모의 젓갈 생산지이자 유통시장이 소재하고 있다. 전국 젓갈 유통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읍 전체가 젓갈 상점일 정도로 읍네에만 100여게의 젓갈 가게가 소재해 있기도 하다.
강경은 조선시대만 해도 원산포구와 더불어 조선의 양대포구였다.천혜의 내륙항으로서 일찍이 수운이 발달한 강경포구는 서해에서 들어오는 각종해산물과 교역물이 금강을 통해 이합되고 집산됐다.이때문에 포구 주변으로는 강경장이라는 큰 장시가 들어서,평양장.대구장과 함께 조선 3대장을 형설ㅇ할 정도로 물류와 유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해서 서해의 수산물이 모두 강경에서 모이고 인근 농산물 또한 강경을 거쳐 각지로 실려나갔다.
개항 이전부터 중국과 일본 제주의 상인들이 드나들며 번성했던 포구였고 1930년대에는 강경포구로 출입하는 배들이 하루에80척 90척 많을대는 100척이 넘었다고 전한다,전국 각처의 상인이 매일 2먼명 이상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일제 강점기에는 충청도 최초로 전기가 들어옸고. 수도 관계시설이 완비될 정도로 일제 착취의 역사 또한 점철된 곳이기도 하다.당시 강경에는 수 많은 객주가 포구를 중심으로 전국 단위의 농수산물 유통으로 업을 이어옸는데. 당시 팔고 남은 수산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하여 자체 염장법 또한 발달 했었다.그 시절의 젓갈 담는 비법이 오늘날에 이어져 전국 제일의 젓갈시장 명성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강경젓갈 협동조합을 설립한 초대이사장 출신의 심철호(60)씨는 옛 부둣가인 강경읍 염천리 일대에는 30여개의 대규모 젓갈가게가 자리하고 있는데.모두 50평 이상의 대형 토굴형 저장고를 갖추고 있다며 "이 저장고들은 일년내내 섭씨 10~15도를 유지해 고유의 숙성 발효법으로 직접 젓갈을 생상항다"고 했다.
대문에 첨편일률적인 맛이 없고 저온 숙성 방식이라 짜지 않단다. 이것이 강경젓갈의 맛의 비밀중 하나라고 .
강경읍내에서 유명한 젓갈백반 식당에 들어선다, 젓갈 백반을 주문하니 강경에서 담근 모든 젓갈들이 한상 가득하다.
상위에 젓갈이 하나씩 오른다,젓갈 수만 눈짐작으로 헤아려봐도 스무가지가 넘는다,크게 나누어 생선 젓갈과
조개젓갈 두족류의 젓갈 알젓 등이 눈에 들어온다,
첫댓글 배 이사님 음식칼럼니스트 최원준 선생님 글을 올려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