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드라마 미생(未生)을 보면서
글-德田 이응철(수필가)
드라마를 안보는 게 꽤 오래되었다.
재미있게 아내와 보던 때가 있었긴 한데 전혀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내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면 그야말로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면서 그 앞을 고수한다.
나와는 달리 국내보다 주로 외국 드라마만 나오면 마치 조각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즐겨 이젠 척하면 드라마의 줄거리 결론까지 꿰뚫을 정도다.ㅎ
나의 경우는 어떤가! 나이를 더해가면서 건강관련 드라마와 국내외 시사 뉴스에 신경이 쓰인다.
연속극도 멜로드라마보다는 팩트를 다루는 쪽에 채널을 고정시킨다. 최빈국의 꾸밈없는 맹그로브같은 속살이 좋다.
아침마당, 성공한 인생, 동치미, 세계여행등에 채널을 고정시키지만, 요즘 매주 금,토 8시 반에 상영되는 금토드라마에 그야말로 올인하는 자신이 희한할 정도다. 아니 재방송도 꾸역꾸역 다시 봐도 싫증이 안간다.
더구나 바둑의 이치를 조금 알고 있기에 거품처럼 재미가 인다.
바둑은 인생의 모든 것이다. 작가가 어떻게 생활과 연관시키는지 기사의 길로 나갔다가
실패한 신입사원 주인공 장그래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아이들처럼 참을 수 없이 기다려진다.
벌써 14회 방영되고 이제 금싸라기 같이 8회분이 기대된다.
내가 이 드라마에 심취한 또하나의 이유는 내가 걸어온 직업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40여년간 교편을 잡은 교육공무원이라 미생의 대기업 회사원과 크게 다르다.
일반 대기업-. 공무원을 능가하는 화려한 임금과 대우로 내로라하는 대학출신들이 꿈꾸는 진로가 아닌가!
수직 상하관계가 뚜렷한 일반회사를 드라마를 통해 체험하는 격이다.
물론 국공립 학교도 계급이 정해져 있지만 봉급은 타지만 일반 회사와는 크게 차별성을 보인다.
-일하고 싶어요.열심히 하면 정규직이 가능하지요?
-욕심 내지마! (계약직인 너에겐, 나도 그런것을 대변한 적이 있지만,결국 아까운 생명만-)
-욕심도 허락받아야 하나요?
계약직인 신입사원 장그래와 소탈하게 배려하는 오상식과장과의 대화이다.
신입사원으로 해야할 자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자사원과 남자사원, 일처리보다 상사에 대해 부딛치는 인격 대인관계들
수필을 쓰는 작가로 신입사원 이름에 사정없이 정이 간다.
장그래(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 소속의 임시원), 안영이(강소라),강하늘의 장백기,
혹자는 70년대 종합상사의 진부한 스토리라고 폄하한다.
물론 이 글의 원천 9권의 만화를 쓴 윤태호작가는 실제 회사원으로 근무를 하지 않아, 때로는 환타지쪽이 많다고 하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감칠맛이 나 충실하게 각색하여 대 인기다. 오죽하면 직장인들의 교과서라고 할 정도가 아닌가!
내 삶에서 전혀 경험치 못한 개인회사-. 드라마를 보면서 간접경험을 하는 셈이다.
과연 나는 저 회사에서 어떻게 처신해 살아남을 것인가! 분냄새 풋냄새하며 여사원을 쥐잡듯하는 마부장에게 대쪽같은 나는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힘도 권력도 배경도 없는 나의 경우-. 암담할 뿐이다.
예전 근무할 때 학교 동료가 어느 날 아침 아들이 OB에 입사했다고 자랑하면서 첫봉급을 타왔는데 30년한 애비봉급과 같다고 너스레 떨던게 생각난다. 얼마나 부러웠던가! 그러나 요즘 미생을 보면서 내 입지가 사뭇좁아지면서 역시 큰 회사근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회사원-.신입사원의 하루는 너무 힘들다. 신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메시지를 강하게 던진다.
미모의 여자 신입사원 안영이를 보라 차를 뽑아다 대령하고 담배를 사오고 구두를 손질한다. 호통을 치며 마시던 차(茶)를 몸에 뿌리고 그리고 나중에 내 딸같다고 변명ㅎ, 전형적인 기성인들의 추태에 눈을 질끈 감는다.
-야, 왜 장그래는 이름 때문인지 매사에 그래야, 장기석방수처럼 /네?
-내 딸같아 그러는거야!/ 제가 왜 부장님의 딸입니까!
요즘 서울시장 박원순도 애청자로 얼마전 장그래를 초청한 적이 있고 행정부에서 차장도 장그래 같다면 뽑겠다고까지 하며 선풍을 일으키고 있음을 보라! 미덥다. 눈물어린 계약직의 대변 그 영상물이 아닐까!
유수한 대학을 나온 정규직들, 그 중엔 상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치받는 역도 있어 때로는 흐뭇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특히 고졸 검정고시출신등 비정규직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전파에 실어 만인에 전해 실감한다.
바둑에서 복기(復棋)가 있다. 대국이 끝나고 다시 돌아보는 것-. 우리사회에 이런 것들이 발판이 되어 비정규직들에 대한 대우가 선행되어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
학벌,배경등의 형세판단이 아닌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올해 최고의 드라마로 벌써부터 점쳐진다. 동감이다.벌써부더 중국에서는 일부를 방영하면서 수입을 타진해오고 드넓은 미국에서도 섭외가 오는등 수출 품목에 강력하게 손꼽힌다고 한다.
장그래- 더할 나위 없었다. Yes!
한해가 벌써 12월 3일-. 올 연하장에 상사들이 전할 유행어가 되지 않을까!
까칠해 보이기까지 하던 오차장이 너무 고맙다. 김동식 꼽슬머리의 대리도 무한한 정이 간다.
그뿐인가! 미생 윤태호작가의 인기 웹툰 파인(巴人)도 영화로 만들어진단다. 촌뜨기라는 뜻의 파인은
76년 신안 해저 유물발굴사업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도굴 사기극인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어제는 가족끼리 신문을 보고 크게 웃었다. 단역으로 끝난 미생의 악역배우 박종식과장의 김희원의 토로-.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고 성격도 얌전한 그가 처음 대본을 받고 많이 놀랐단다. 악역연기-.
- 정말로 이런 사람이 있느냐고 감독님께 물었더니 더한 사람도 봤다고 해 수위조절하며 연기했단다.
악역연기로 오랫동안 무명으로 살다가 입신(立身)한 그는 차기적 제의도 늘어났다고 한다. 실감나는 연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7년간 본의아니게 한 악역-.착한 연기를 기대한다고 개성있게 웃는 그가 우리를 기쁘게 한다.
눈이 선보인 아침이다. 나는 종편 드라마에 푹덮여 있다.
줄기만 무성하면 무엇하리, 넝쿨만 무성하면 무엇하리-. 그래 천금같은 내 둥지가 있어야 한다.
초가삼칸이 아닌 두간만있어도 내 넝쿨은 무성해 천하를 움직이리라. 가화만사상-.
-아빠! 또 미생 안영이 얘기하려고 하는거지?
50일 남은 국시(國試)를 총정리하는 막내가 오늘도 내 일장 연설을 가로막고 토막내려든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내가 산다는 말은 어떤 삶을 포함할까!
오늘은 팔호광장 서점을 찾아 거액을 투자해 바둑만화 9권을 사다 막내에게 선물로 안겨주리라.
밖은 정녕 지옥일까!(끝)
첫댓글 德田님
오랜만에 좋은글 고맙습니다. 부탁은 스크랩보다 직접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德田선생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자주뵙기를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