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등불기도회(수)
“굿모닝!”
⁋ 묵상- 시편 85:8-13
⁋ 찬송- 104장
⁋ 기도- 김종일 집사
이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늘에 계시면서 인간의 모든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죄짓고 회개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대림절 수요일 새벽기도예배를 주님께 드리오니 기쁘게 받아들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교만에 차서 마치 이세상이 전부인 양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으로 론 순한 그리스도인 것처럼 행하지만 속으론 다른 삶을 사는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잘 못을 하고 회개하고 또 잘못을 하고 회개를 반복하는 우매한 인 간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자유의지를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행 하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정치는 양극단으로, 삶도 양극단으로 양분되어 중간이 없는 사회로 변하고, 세계는 미국 이냐 중국이냐를 우리 한국에게 묻고 있습니다. 흑백만 있고 회색이 보이지 않는, 점점 다양성이 없어져 가는 세상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양극단은 서로 싸우기만 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서로 들으려고 하지 않는 행위는 무엇 때문일까요? 지금 우크라이나-러시아 간의 전쟁 뿐만 아니라 중동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 나는 크고 작은 전쟁은 인간이 그 자유의지를 잘 못 사용해서 생긴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우매한 우리는 잘 모르지만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이 문제를 해결하실 거라 믿습니다. 흑인 백인 황색인 피부색은 다르지만 그들 몸 안에 있 는 심장과 뇌는 동일합니다. 그런데 서로 차별하고 싸우고 죽입니다. 조물주께서 창조하신 다양함을 왜 인간들은 인정하지 않고 그들 마음대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젠 그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를 함부로 침략하지 않게 하옵시고, 어떤 피부색의 인간도 함부로 다른 피부색의 인간을 해치지 않게 하옵소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생명을 앗아가는 악으로부터 인간이 벗어나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새로운 달을 주시고, 새로운 계절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쉼의 계절이자 시작 을 준비하는 겨울이 왔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어둠에서 빛을 만드셨습니다. 그 빛이 잘 타오를 수 있는 어둠의 양초를 잘 준비하면 우리에게는 곧 따스한 봄이 올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이 되게 하옵소서.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도 다 지나 이제 어느새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참회의 기도를 드려 올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며, 희망이 가득찬 2023년를 맞이할 지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실 목사님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목사님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시고 영육이 강건하게 하여 주시오며, 능력의 말씀과 생명의 말씀이 성도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게 하시옵소서.
우리 성도들 모두 아름다운 믿음을 갖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자녀들 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교독- 이사야 11:1-10
⁋ 말씀- ‘샬롬의 새 세상’
대림절 첫째 주간 수요일이다. 기다림의 절기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기 바란다.
일찍이 예언자 미가는 메시야 탄생을 예언하였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 지라도”(미 5:2). 그 예언이 마침내 실현되어,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메시야가 가장 작은 마을에 오신다는 예언이 있었지만, 누구도 베들레헴에서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할 수 없었다. 작은 마을에 태어난 메시야, 그 사건은 한 마디로 희망이었다.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가장 연약한 아기로, 가장 보잘 것 없는 구유에 태어난 그분이 인류 모두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라니, 놀라운 일이다. 늘 규모의 논리, 시장경쟁의 논리,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살던 사람들에게 작고, 연약하고, 보잘것없이 오신 메시야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이사야는 하나님 나라, 평화의 왕국을 꿈꿨다. 바로 샬롬의 세상이다. 예언자는 그런 꿈꾸는 존재이다. 사람들이 전혀 소망하지 못했던 것을 꿈꾸고, 바라며, 희망하던 사람이다. 그들이 전하는 환상을 보라. 사람의 힘으로 전혀 꿈꿀 수 없는 것을 바라본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분명하다. 그루터기는 무엇인가? 이미 나무의 생명력을 다한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의 눈은 아직 소망이 남아있음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그 그루터기에서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실 것이라는 비전이다.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루터기에서 한 싹과 가지가 나서 다시 결실하게 될 것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
이사야의 예언자적 비전을 보라. 이제 하나님께서 썩은 판을 확실히 갈아치우실 것이다. 그러나 다 죽은 나무의 밑동처럼 보인 그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 날 것이다.
비록 망할 나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끝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이 땅에 장차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징조를 보여준다. 그것이 그루터기 이야기이다.
그루터기에서 돋아나는 한 싹은 얼마나 작고,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지 시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오실 메시야가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약함 가운데 임하실 메시야의 통치는 사랑과 은혜로 충만할 것이다.
오실 메시야가 행하는 모습을 보라.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않는다(3).
만약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왕이다. 행여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한다면 얼마나 즉흥적이고, 위험한가? 거기에서 오해와 갈등과 다툼이 생긴다.
예언자는 말한다. 인간의 오감에서 오는 감정에 의지하지 말고, 신앙의 원칙,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따라 판단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진정한 통치자는 철저하게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할 것이다. 가난한 자, 힘없는 자, 겸손한 자를 소중히 여기는 통치를 할 것이다.
이러한 공의롭고, 온유하고, 성실한 왕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이러한 통치자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통해 가능해 질 것이다.
세상 살기가 힘들어도 그런 세상이 올 것이란 소망이 있으면 그래도 살만하다. 만약 소망조차 없다면 그 삶은 적막강산이다.
이상적인 새 왕은 공의(체데크)라고 불리는 하나님의 의를 실천한다. 그래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실현된다. 한 마디로 ‘샬롬’, 하나님의 평화 그 자체이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샬롬을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불렀다.
예언자 이사야가 본 환상은 샬롬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메시야 왕국, 이상적인 통치자가 다스리는 모습을 꿈꾼다. 그가 본 환상은 참 비현실적인 꿈과 같다.
‘이리, 어린 양, 표범, 어린 염소, 송아지, 사자 새끼, 어린 아이, 암소, 곰, 사자, 소, 독사’ 등이 다투는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이 아닌, 서로 어울려 장난치는 ‘평화의 왕국’이 온다는 것이다.
이사야가 꾼 메시아 왕국의 꿈은 잃어버린 에덴동산이 회복 되는 꿈이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동산 그 자체이다. 누가 이 위대한 꿈을 막을 수 있을까? 이사야가 노래하는 이상적인 메시아에 대한 대망은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희망의 의지였다.
이제 이사야는 새 세상을 여실 새 임금이 오신다고 예언한다. 오실 메시야는 새 언약의 빛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이 오실 그날을 기다리는 대림절기는 내가 가진 신앙의 모습에 일대 전환을 촉구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로움에 참여하라. 말로만이 아니라 이젠 삶을 통해 드러나라.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라.
대림절은 얼마나 꿈꾸기 좋은 계절인가? 가장 밤이 깊기 때문이다. 동지가 대림절의 그 끝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성탄절 즈음부터 점점 빛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지금 메시야가 오실 베들레헴은 어디인가? 지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내 마음에서부터 베들레헴을 잃어버렸다. 세상의 논리에 길들여진 때문이다. 다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질서로 돌아갈, 하나님의 마음으로 회복해야 한다.
저절로 그런 세상은 오지 않는다. 이사야는 그 방법을 일깨워준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9).
새 세상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려는 의지 가운데 온다. ‘그 넓은 바다를 덮는 평화’, 이것이 우리의 기도요, 꿈이요, 노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캄캄한 밤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꿈꾸는 사람으로 살도록 은총을 베푸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 기도
⁋ 주기도문
첫댓글 주님의 공의가 다스리는 세상을 소망합니다. 분열과 대립을 멈추게 하시고 평화와 사랑이 넘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총을 간구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과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평화가 넘치는 이 세상을 꿈꿉니다. 임마누엘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주님 참 추운날씨에 더욱 주님의 사랑이 고파집니다. 어두운곳, 병든 곳, 가난한 곳 약한 곳을 위한 주님의 헌신이 어디있나는 듯이 세상은 더욱 혼탁하고 이기적이며 갈등의 지속이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니느웨의 회개가 이땅에도 있게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