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래공수거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뜻이다.
최희준이 노래한 철학적 유행가 '하숙생'의 마지막 소절이기도 하다.
유행가 '하숙생'은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로 끝을 맺는다.
티벳불교 겔룩파의 신행지침서 《보리도차제론》에서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기
전에 먼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 대해 깊이 숙고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첫째는 수많은 생명 가운데 내가 인간인 것이 참으로 희귀한 일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나에게 언젠가 반드시 죽음이 닥친다는 점이며,
셋째는 탐진치의 삼독심을 제거하지 못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내생에
아귀, 축생, 지옥의 삼악도에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 사실에 대해 깊이 숙고할 경우, 큰 공포심이 생기고,
이런 공포로부터 나를 구원해주는 불법승 삼보에 대해 진정한
귀의의 마음이 일어난다. 삼귀의를 통해 불자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삼보에 귀의한 후,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10선계와 인과응보의 교리다.
10선계란 '살생하지 말라(불살생), 도둑질하지 말라(불투도), 삿된 음행 하지
말라(불사음), 거짓말하지 말라(불망어), 삿된 음행 하지 말라(불사음),
거짓말하지 말라(불망어), 꾸밈말 하지 말라(불기어), 이간질 하지 말라
(불양설), 험한 욕 하지 말라(불악구), 탐욕 내지 말라(불탐욕), 분노하지 말라
(부진에), 삿된 종교관을 갖지 말라(불사견)'의 열 가지 행동규범이디.
살생죄를 지으면 내생에 몸에 병이 많고 수명이 짧고, 투도죄를 지어으면
재물이 부족하고, 사음죄를 지으면 배우자가 부정하며, 망어죄를 지으면
남에게 비방을 당하며, 양설죄를 지으면 친구가 떠나가고,
악구죄를 지으면 욕을 많이 먹으며, 기어죄를 지으면 말에 존엄이 없고,
탐욕죄를 지으면 내생에도 탐욕이 많고, 진에죄를 지으면
내생에도 진에가 많고, 사견죄를 지으면 내생에도 어리석다고 한다.
이런 10가지 계복을 잘 지키고 살아갈 경우, 우리는
우선 내생에 아귀 축생, 지옥의 삼악도에서 태어나는 것을 면할 수 잇다.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나에게 죽음이 닥치면 재물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어느,하나 내생으로 가져갈 수 없다.
태어날 때도 맨주먹이지만, 죽을 때도 맨주먹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내가 지은 온갖 업의 씨앗들을 가득 담고 내생으로 간다.
불교 유식할(唯識學)에서는 이런 마음을 아뢰야식(阿賴耶食)이라고 부른다.
아뢰야란 범어 알라야(alaya)의 음사어로 '거주처, 수용처'의 의미다.
내가 지은업의 씨앗들을 가득 담고있는곳, 업종자의 수용처가 아뢰야식인 것이다.
죽을 때 우리의 두 손은 비어있지만, 마음은 업종자로 가득하기에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생으로 가져 갈 수 없는
재물이나 권력,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10선계를 잘 지키면서 아뢰야식의 마음 밭에 선업의 종자를 많이 쌓는 일이다.
내 아뢰야식의 마음 밭에 파종한 선업의 종자들은 시기가 무르익으면,
한, 둘, 싹을 티우고 꽃을 피워서 내생의 과보로 나타난다.
'공수래공수거'라고 하듯이 우리가 태어날 때도 빈 손이고 죽을 때도 빈손이지만,
마음에는 한 평생 지었던 선, 악업(善,惡業)의 종자가 가득하다.
속담 속에 담은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