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4:7~8)
아멘!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하십니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경건은 이 세상과 저 세상 모두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경건해야겠습니다.
그런데 그냥 경건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연단을 통해서 경건에 이르게 된다고 하십니다.
‘연단’이란 말을 찾아보니 이는 ‘운동, 훈련’이란 의미를 가진 헬라어를 ‘연단’이라고 번역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경건에 이르도록 운동하라는 것입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경건해야 합니다.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됩니다.
종교적으로 사는 것도 잘 안되지만 진짜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는 것이 잘 안됩니다.
세상과 구별되고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잘 안됩니다.
불가능하다고 여길 정도로 잘 안됩니다.
그런데 경건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운동이나 연습을 통해서 경건에 이르게 된다고 하십니다.
지금껏 경건하게 살지 못한 것이 경건하도록 연습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연습해야 하나 싶습니다.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것은 경건하게 살려고 애쓰고 수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도의 기본을 지키려고 애쓰고 수고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이 훈련이고 연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꾸 넘어져도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경건에 이르는 운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셨는데 이는 경건에 이르도록 애쓰고 수고하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실패하면서도 계속해서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이 경건에 이르는 훈련이고 그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이며 그것이 영생을 취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것들을 마음에서 버리고, 안된다고 하는 생각도 버리고 말씀하신대로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는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 경건에 이르기까지 매일 매순간 훈련하고 또 훈련해야겠습니다.
엉뚱한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또한 경건에 대해서 포기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려고, 경건하게 살려고 몸부림쳐야겠습니다.
이를 통해서 금생과 내생에 약속하신 것을 받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