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문 (오창열 신부님)
구원에 이르는 문은 좁은 문입니다.
"좁은 문"이란 어떤 문입니까?
들어가기 힘든 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좁은 문이라도
그것이 문이라면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좁은 문은 경쟁률이 높은 문입니다.
그래서 실력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 시대에도 좁은 문이 많습니다.
대학 입시의 문, 취업과 승진 등 경쟁의 문…….
선택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마음대로 "취할 수"가 없어서 좁게만 보이는 문들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에 이르는 문도 그런 문이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실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을 사람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한부 종말론 자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십사만 사천 명만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그들은 성서를 자기들 멋대로 편리위주로 해석함으로써
구원받을 사람의 수를 제한해 두고 있지만
그것은 틀려도 보통 틀려먹은 억지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서의 어느 곳을 보아도
예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을 제한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죄인인 이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구원의 문제는 철저하게 하느님께만 맡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느님께만 유보되어 있는 구원의 문제를
한정지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늘나라의 심판 대전에 모든 사람이 모이고
가브리엘 천사가 십계명을 하나씩 읽어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계명을 읽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계명을 어겨 죄를 지은 사람은
모두 당장 지옥으로 가라."
여러 사람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슬퍼하며 지옥으로 갔습니다.
둘째 계명을 읽은 뒤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셋째 계명, 넷째 계명, 다섯째 계명…….
이쯤 되니까 천당에 남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섯째 계명이 읽혀지자 모조리 지옥에 가 버리고
살찌고 늙은 대머리 은둔자 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때 하느님께서 바라보고 계시다가
가브리엘 천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한 사람만 남았단 말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하느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글쎄, 그러고 보니
이 천당이라는 데가 도리어 쓸쓸하지 않느냐?
모두들 되돌아오라고 일러라."
하느님의 이 말씀을 들은 살찌고 늙은 대머리 은둔자는
누구나 용서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하느님 앞에서 갑자기 고함을 질렀습니다.
"하느님, 이런 정당하지 못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될 양이면
어찌하여 미리 저에게 일러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구원에 이르는 문은 좁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야 합니다.
구원은 단지 교회에 몸담고 있다거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진리대로 살아갈 때 구원은 선물로 주어집니다.
마음으로 결단을 내리고
내 안에 남아 있는 많은 군더더기를 없애야 합니다.
교만과 아집, 욕망과 탐욕의 비만증에서
내 영혼이 가벼워져야 합니다.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가늘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문은 좁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당신 구원에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느님 구원 대열에서 제외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인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입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의 문제에
자신을 가져서도, 혹은 실망하거나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에 생기는 빈자리는
하느님께서 채워 주신다는 믿음으로
모든 일에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결단을 거듭해 나간다면
하느님은 구원에 있어서도 우리 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말씀 사랑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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