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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0: 19 안식 후 첫날
3.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 20: 19 – 23 )
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20: 19 안식 후 첫날 -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
안식 후 첫날은 안식일 다음날로 현재의 일요일이 된다. 이날에 그리스도가 새벽에 부활하시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이날은 "주의 날, 주일"이라고 부를만한 날이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씻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두려워 예수를 유령인가 착각하고 있을 정도로 그들은 떨고 있었다.
그들은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고 "공포, 놀람, 두려움"으로 자신들의 선생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밖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에게 또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몰라 겁에 질려 떨고 있으면서 문을 "닫고" "붙잡다, 고정하다" 있었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1]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이날은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주일'(Lord's day)을 가리킨다. 이 '주일'이 정확하게 안식일 다음 날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초대 교부들의 문헌에 의하면 초대 교회가 '주의 날'로 일컬어진 특정한 날에 예배와 친교를 가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주의 날'이라 공식적인 칭호가 나오는 계 1: 10 이나 고전 16: 2등을 참조할 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과는 다른 어떤 특정한 날을 지켰음이 확실해진다.
* 계 1: 10 -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사도 요한은 또 그가 하나님의 계시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받았는지, 그가 계시를 받은 경위를 말한다. 그는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다. 그는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날도 주일이었고(요 20: 19, 26),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도 주일이었고(행 2: 1. 레 23: 15-16),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은 날도 주일이었다. 사도 시대에 벌써 하나님께서 주일을 복된 날로 구별하시는 표들이다.
(1) 주의 날 : 주의 날에 [영] Day of the LORD, Lord's day - 종말론적 표현이다.
신약에서는 메시아적인 의미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그 나라의 완성과 구원의 날로 인용되어 있다.
* 살전 5: 2 -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 살후 2: 2 -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 벧후 3: 10 -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것은 '그 날'[마 7: 22. 눅 6: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고전 1: 8. 5: 5. '주 예수의 날', '그리스도 예수의 날'[빌 1: 6, 10], 또는 '주 예수의 날'[고후 1: 14]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주 예수의 부활의 날을 뜻하는 말로써, 오늘의 일요일에 해당한다. '안식 후 첫 날'이라고 불린다.
* 마 28: 1 -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 막 16: 2 -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 눅 24: 1 -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 요 20: 1 -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교회에서는 일찍부터 성일로 지켰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안식일과 일요일이 지켜졌으나, 후에는 일요일만을 주일로 지키게 되었다.
(2) 주의 날에 대한 여러 견해.
① 여호와의 날. - 세대주의자.
스코필드[C. I. Scofield]는 이중 재림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날과[환란 전 휴거] 주의 날로[심판의 때] 구분하였다. 주의 날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미래적인 날로 주장 하였다.
② 안식일. - 안식교.
주의 날을 구약의 율법에서 규정하는 안식일로 본다.
③ 주의 첫날. - 개혁주의 신학자.
칼뱅[Calvin] : 주의 날은 모든 사람들이 선택하였다. 이유는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율법의 그림자를 폐하였기 때문이다.
마운스[R. H. Mounce] : 주중의 첫날에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리 하셨기 때문이다. 이교도들이 그들의 황제를 공경하기 위하여 하루를 정하여 놓은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매주의 첫날을 택하였다.
(3) 저자의 견해.
① 여호와의 날로 볼 수 없다.
⒜ 문맥적인 의미
본문은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으로 발생하였다. 여호와의 날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구속사의 완성을 이루는성령의 인침을받는 자를추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본문의 날은 요한이 살아서 기록했던 매주의 첫날로 보아야 한다.
⒝ 원리적인 의미
계 1: 19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에 심판 주로 오시는 여호와의 날을 대입 한다면 심판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장차 될 일을 기록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 원어적인 의미
계 1: 10은 '주의'라는 소유격 퀴리우[kurivou, of the Lord, 살후 2: 2, 벧후 3: 10]가 아니라 형용사인 퀴리아케[kuriakh;, Lord’s]이다.
② 안식일로 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 막 2: 28 -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구 분 : 안 식 일 : 주 일
신 학 적 : 창조의 기념[창 2: 2, 3] : 새 창조의 기념
계 약 적 : 옛 계약의 끝 : 새 계약의 시작
의 식 적 : 율법적 제사[죽음] : 복음적 예배[부활]
모 형 적 : 예수 안의 안식 축복 : 신천신지의 영원 안식
구 속 적 : 우리 죄로 무덤에 계심 : 부활의 첫 열매
영 적 : 엿새 동안의 수고에서 해방 : 죄 짐에서 해방
결 론 : 구원의 과정[속죄의 필요] : 구원의 결과 [고전 15: 23-27]
대환란의 날의 예언에 언급된 안식일
* 마 24: 20 -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바울의 안식일의 강론과 주일의 강론
* 행 17: 2 -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 행 18: 4 –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 행 20: 7 -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 고전 16: 2 -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안식일(메시아의 도래)과 주일(재림의 도래).
태양의 날과 주의 날
* 고전 16: 2 -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안식일이 시간적 구속력을 강요하는 율법적 멍에가 아니라는 사상이 보편화되고 있었다.
* 골 2: 16 -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그들은 안식일의 기본 정신은 폐기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큰 의미를 주는 '안식 후 첫날'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다가 로마인들이 태양의 날(Sun day)로 인정했던 주간의 첫날이 A.D.321년 콘스탄틴(Constantine, 274-337) 대제에 의해 공휴일화 되면서 이날이 '의로운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날로 굳어진 듯하다.
* 말 4: 2 -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4) 성령에 감동 - 방법 :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성령에 감동하여'의 헬라어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는 문자적으로 '내가 성령 안에 있었다.'는 뜻으로 이는 단순히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황홀한 상태에 있게 되었음을 암시한다(Lohmeyer, Ladd, Johnson,Mounce).
* 계 4: 2 -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계 17: 3 -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 계 21: 10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 행 10: 10 –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 행 11: 5 -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성령의 감동은 무아지경(無我地境)이 아니다. 계시나 말씀보다 성령의 감동이 먼저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 없이 환상이나 예언을 받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제나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서 이러한 특별 계시적 은혜를 입게 된다.
(5)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 :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나팔소리'는 구약 시대에 백성을 불러 소집하거나 군사적으로 경고할 때(*), 전쟁 때(*), 그리고 특별한 의미의 절기 때(*) 사용하였다.
* 레 23: 24 -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 겔 33: 6 -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 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 겔 7: 14 - 그들이 나팔을 불어 온갖 것을 준비하였을지라도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나니 이는 내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이르렀음이라.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한 징표로 나타난다.
* 마 24: 31 -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살전 4: 16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본서에서 70회나 사용되며 종말론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본문의 '나팔 소리'는 심령들을 일깨우는 천사의 음성으로 이해된다(Morris, Mounce, Ladd). 여기서는 '나팔 소리'가 아니고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다. 결국 그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은 하나님의 장엄한 말씀이다.
* 출 19: 19 -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① 소집
* 삿 3: 27 -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 대하 13: 12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의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하여 전쟁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
* 고전 14: 8 -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② 경고
* 겔 33: 3-6 – 3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4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5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6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 렘 6: 1 -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③ 종말
* 마 24: 31 -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고전 15: 51-52 -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 살전 4: 16-17 -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2]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본문은 주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 날, 즉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가운데 서셨다고 증언한다.
본문은 부활하신 주께서 문을 열지 않고 들어오셨음을 증거한다.
(1)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제자들은 일찍이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당할 때 뿔뿔이 흩어져 제각기 피신했었다.
* 마 26: 56 -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제자들은 위험한 선동자의 추종자로 혐의를 받고 있었으므로 비밀스러운 곳에 은신하고 있었고, 언제 산헤드린의 군사들이 체포하러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으므로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2) 문들을 닫았더니
요한이 누가와는 달리 문이 굳게 닫혀진 사실을 기록한 것은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 외에 예수께서 어떤 장애에도 방해받지 않고 공간을 통과할 수 있는 영적인 몸을 입은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Bultmann, Lenski, Tenney).
* 눅 24: 36-39 –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3]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의 부활체는 신비한 몸이었다. 물론 그의 몸은 손과 옆구리에 상처가 있었다(20절). 그러나 그의 부활은 단순히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 몸의 회생(回生)이 아니었다. 그 몸은 변화된 몸이었다.
그의 몸은 닫힌 문을 열지 않은 채 통과하여 방 가운데로 들어오실 수 있는 몸이다. 그의 부활의 몸은 우리가 장차 천국에서 가지고 누릴 것과 같은 변화된 몸이었다고 보인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기원하셨다. 유대인들의 위협 속에서 불안과 근심을 가졌던 제자들에게 무엇보다 평안이 필요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 평안을 주셨다.
(1) 가운데 서서
예수의 부활체는 20절로 미루어 볼 때 지상 생애 당시의 몸과 연속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공생애 기간에도 당신의 뜻에 따라 물리적 제한을 초월하실 수 있음을 나타내 보이셨다.
* 요 6: 16-21 –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그러나 이 부활체는 고전 15: 44에 언급된 '신령한 몸'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자연 상태인 육체와는 엄연히 구분되어진다.
* 고전 15: 44 -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2) 평강
'평강'에 해당하는 혤라어 '에이레네'(*)는 '평화', '화평', '복지'의 뜻으로 히브리어의 '샬롬'에 상응하는 말이다. 이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인사말인데, 길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나 헤어질 때, 이웃을 방문할 때 등의 일상의 생활에서 주고받는 인사이다.
* 왕하 5: 21 -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 삼상 1: 17 -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 행 16: 36 -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 마 10: 12 -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본문에서 이 말이 주님의 입에서 베풀어졌을 때, 그 뜻은 일상적인 인사의 범주를 넘어 세상이 가져다주는 평안과는 다른 그분의 평안이라는 범주에서 이해된다.
* 요 14: 27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평강은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한 결과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 행 13: 4-12 –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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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 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