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 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 미사 때 주례 사제의 초대에 교우 모두 한목소리로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른다. 참 감동적이다. 성당에 모인 교우 모두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짧은 기도문이 ‘주님의 기도’ 전체를 요약하는 거 같다. 그 이후 기도 내용은 그에 대한 해설 정도다.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자녀요 서로 형제자매라고 고백하고 여기 모인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라고 한목소리로 장엄하게 선포한다. 그리고 이어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설명한다. 거룩하신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고,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서 완성되기를,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그날그날 먹을 양식을 마련해 달라고 청한다. 서로 용서하고, 매 순간 유혹을 피하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청한다.
이 기도를 바칠 때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한 사람으로 사셨다는 믿음을 새롭게 한다. 이 기도문은 예수님이 남겨 주신 유물 같은 거다. 어쩌면 그분은 오늘 그리고 이후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내다보시며 이 기도문을 만들어주셨을지 모른다. 하느님을 찾는 모든 사람이 당신과 한 형제자매가 돼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날을 내다보셨을 거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단지 그때가 언제인지 모를 뿐이다. 유다 민족은 다른 민족 사람이 그들의 하느님 알고 믿게 될 줄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예수님도 가나안 부인이나 로마군 백인대장 같은 이방인이 당신을 믿는 것에 놀라셨다. 피부색, 언어, 문화가 달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자매다.
우리 순교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켰고 또 우리 믿음과 이상은 이렇지만 우리 안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층이 있다. 이를 두고 나쁘다고 하지 말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자. 미사에는 모든 죄인이 초대된다. 남녀노소, 부자와 가난한 사람, 고용주와 피고용자, 외국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 동성애자 그리고 내가 싫어하고 상처를 준 사람도 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금방 형제자매가 될 수 있겠나.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자꾸 부르면서 조금씩 그렇게 되어 가는 거다. 하늘나라에서는 모두 그렇게 되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줄 아주 잘 알고 있다. 불편하고 어색해도 함께 있고, 싫어도 대화하고, 용서하면서 용서받은 줄 안다.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다시 태어났고, 하느님의 자녀로 성장해 가는 중이다, 우리는.
예수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주님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던 그분과 같은 분입니다. 그분은 엄마 같은 아버지고, 목숨을 바쳐도 괜찮은 참 좋은 분이고, 그렇게 해서 영원히 살게 해주시는 분으로 알고 믿고 있습니다. 저희를 형제요 친구라고 부르셨으니 가장 친근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으로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