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 주제에 관한 명언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본질은 얘기하지 않고 현상만 묘사하고 있다. 그나마 현자의 입장에서 본 인생 또는 삶의 얘기다. 불행하게도 중생의 눈높이에 맞는 삶과 죽음에 관한 진솔한 얘기는 없다. 이 글은 이에 관한 내 솔직한 얘기다.
1) 기독 신앙인의 죽음관?
왜 영생을 원하는가? 영생이란 욕망의 허상인 것을 왜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가! 종교는 사기다. 영혼이 불멸하여 부활한다는 가정은 인간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유혹일 뿐이다.
2천 년이 더 지났는데도 여태까지 그 부활의 현상을 눈으로 본 사람이 없다. 사진의 기록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의 근본교리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 즉 믿든가 안 믿든가 하는 선택의 전제 위에 서 있는 명제다. 그렇게 될 거라고 믿으면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위로 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된다면 그것이 구원이 아니겠는가? 즉 예수의 말씀대로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는 의신칭의 교리가 그 하나다. 기왕에 사기를 치려면 이처럼 확고해야 한다. 믿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수신적덕해야 천국에 올림 받는다는 천주교 교리는 윤리, 도덕이지 종교의 교리는 아니다. 나는 개신교의 영생의 교리를 폄훼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산 자를 위한 개인의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적극적이며 확고하게 신앙하면 그만이다.
2) 무신론자의 형이하학적 죽음
죽음 이후의 나는 아무 데도 없다. 다만 사 후의 나는 내 후손의 기억 속에 사진으로서 혹은 글로서 존재할 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안에 있는 것은 나는 아니고 나에 관한 후손들의 기억이요 지식일 뿐이다.
“죽으면 실존의 나는 소멸되고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간단하다.
죽음을 자연과학적인 지식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육체라는 Hardware에 명령 내지 이를 전달하는 CPU(=두뇌) + 신경망(Software), 이들을 작동하게 하는 전력(에너지 또는 생명)으로 존재하는 생명체다. 생명은 육체에 산소와 피(영양소)가 산화되어 생성되는 에너지다. 이것이 즉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에너지를 생성, 공급하는 순환기가 녹슬거나 막히면 산소(=호흡)나 피의 공급(=맥박)이 중단되어 더 이상 에너지 (=생명)가 생성되지 않아 Sensor(=의식)가 멎고 기계는 작동을 멈춘다. 이것이 죽음이다. 수명(=목숨)이 다하면 영혼은 저절로 꺼진다는 게 형이하학을 업으로 살아온 나의 생각이다. 한편 원래부터 영혼은 비물질이라 부패하지도 않지만 물체는 아니어서 실존하지도 않는 한시적인 그 무엇(색즉시공)일지 모른다. 이것이 죽음에 대한 나의 정의다. 곧 마지막 숨이요 심정지가 죽음이다.
3) 노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긴 안목에서 사람의 일생을 다음 그림과 같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Life scale로 나타낼 수 있으리라. 이 우주계에 생명체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 안에 실존하는 나는 오늘 현재이며 75 세의 나이의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다. 나 죽고 나면 자손에게 나는 그들의 전생이 될 것이다.
위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죽음은 나의 인생의 끝”이다. 미래는 내 후손의 인생이며 나는 그들의 전생일 뿐 내가 사는 것은 아니다. 신앙인은 살아있는 동안에 구름 위에 살고 싶어 사는 동안 영생을 믿는 사람이다. 그것도 잘 사는 좋은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굳이 부정할 이유도 없다.
사람은 현상계의 다른 모든 중생(=생명체)과 마찬가지로 필히 죽는다. (생자필멸의 진리) 그러므로 죽음에 억울할 것도 없다. 다만 죽을 때 “가족에게 고맙다, 사랑했다”라고 말하며 죽을 수 있는 삶을 살자. 죽는 순간 유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망자는 불행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어떤 임종의 모양을 하든 사람의 죽음은 엄숙하며 남은 자는 그 유언으로써 남은 삶의 지표나 계기가 될 것이다.
막 노인세대의 시작에 든 75 세의 나는 지금 행복하다. 죽음을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사용하자. 머지 않아 노인으로 힘들게 살 수 밖에 없는 때가 곧 도래하리라. 그러므로 아직 건강할 때 무거운 짐이나 집착은 내려놓거나 훌훌 털어버리고 이제라도 하고 싶은 것 해 보고 죽어야 후회가 없지 않겠나? 비명에 횡사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하다가 죽으면 곧 행복한 죽음이다. 다만 문제는 다 벗어버리고 나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당최 모르겠다는 데 있다. 의욕이 곧 생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리라.
[2022-12-12]
첫댓글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는 어떻게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네.
깊은 사유를 통해 정리를 잘 해 주셨네요.
우리도 이제, 각자의 앞날에 대한 진솔한 소회를 서로 나눠보는 것도 좋을듯한 나이가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