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의 어느 여름밤에 생긴일이다.
가장 친하다고 자부하는 한 친구와 술을 마시고는 새벽 2시쯤인가?
집에 와서 같이 누웠다.
음악을 틀어놓고 누워있는데, 최성원의 '제주도의'푸른밤' 이라는 노래가
나오고있었다.
"자냐?"
"아니..."
"너 제주도 가봤다고했지?"
"응"
"거기 좋아?"
"응 좋아"
"응...좋구나..."
"......"
"......"
"왜 너도 가고싶냐?"
"응..."
"그렇구나..."
"......"
"......"
"갈래?"
"그럴까?"
"가자"
"그래"
"짐은 가서 챙기자."
벌떡 일어나서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차 트렁크에 넣었다.
역마살이 도진 나는 언제나처럼...
친구와의 짧은 대화만으로 새벽 3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우리의 제주도
여행은 시작돼었다.
여자친구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은 됐지만 내 귓가엔 '제주도의 푸른밤'이
계속 흐르고있었다.
나는 평상시 경부고속도로를 갈때는 새벽시간을 주로 이용한다.
그래야 달릴수가 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신 이유로 집에서부터 북수원 I.C 까지는 얌전히 운전을 했다.
동수원 T.G 까지는 공사구간이 많아서 안전을 이유로 120 km/h를 넘지
않는 속도로 주행했다.
신갈 분기점을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드디어 고속도로 모드로 전환.
(나의 고속도로 모드는 최대 그 자동차의 성능의 끝이며 평균 170km/h 이하로 내려가지를 않는다. 그때는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게 밟으래도 안밟는다. 나도 벽에 똥칠할때까지 살고싶기 때문이다. ㅡㅡ;)
그러나...
술이 원수였다.
술에 지치고 피곤에 지친 우리는 잠깐 쉬어가자던 휴게실에서 잠이 든것
이다.
얼마나 잤을까...?
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시간은 오후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직 반정도밖에 못왔는데 말이다.
그래도 여유를 부리며 친구의 운전 연수까지 시켜주며 광주까지 갔다.
광주에서부터는 다시 내가 운전을 했다.
목포까지 시간계산을 잘못한데다가 초행길이라 길이 그렇게 막힐줄은 몰
랐다.
제주도로 가는 막배 시간을 20여분 남겨놓고 목포항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은 일찍 도착해서 목포 구경을 좀 한 후에 적당한곳에 주차를
하고 제주도로 들어가려고했었다.
하지만 주차와 배낭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잠깐 고민 하다가 배에다 차를 실어버렸다.
젊은이답게 걸어서 여행하려던 계획은 수정돼었지만, 그래도 편할거라는
생각이 위안을 주었다.
잠시후 배는 세수도 못한 꾀죄죄한 우리 둘을 태우고, 커다란 고동소리
를 울리며 서서히 움직였고 친구와 나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선상에서 소
리를 지르고있었다.
드디어 망망대해라고 할수있는 사방으로 수평선만 보이는 곳까지 왔을때,
핸드폰의 안테너가 다 섰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와있을 시간이길래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다. 여기 어딘지 아냐?"
나는 아주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딘데?"
"어 여기 바다 한가운데다."
"웃기네~"
"진짜야 임마"
"거짓말하지마."
어제밤에 같이 술을 마시다가 헤어졌던 그녀는 처음에 믿지 않았다.
"얌마 내가 며칠후에 사진찍어서 보여줄께~"
"어...오빠 진짜야? 어디가는데?"
"어 제주도 간다~"
'딸칵'
황당했다.
예상했던대로 성질이 불같은 그녀는 화가 난것 같았다.
평소 어디 같이 가지 못하는 술자리라도 간다면 한시간에 한번씩 전화를
해대는 의심많은 그녀에게 말도 안하고 왔으니...그럴만도 했다.
다시 전화를 했다.
한참 후에야 전화를 받은 그녀는 화가 많이 나있었다.
얼마를 달랬을까.
화가 풀린 그녀는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하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보
탰다.
"바람피면 죽어~"
그날 우리는 배에서 저녁노을을 볼수있었다.
언젠가 그 친구녀석과 하늘에서 같이 봤던 구름속에서의 노을을 회상하
며 둘은 지치는 기색없이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지친 우리는 3등 선실에서 새우잠을 자고있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속을 떠가던 배는 고동을 울렸다.
고동소리에 잠이깨어 선상에 올라가보니 멀리 제주항의 불빛이 보이기 시
작했다.
밤 10시가 넘었을 무렵 드디어 나와, 나의 친구와, 나의 애마는 제주도땅
에 첫발을 딪었다.
싸구려 민박집을 잡은 후에 간단히 저녁을 먹은 우리는 기타를 꺼내들고
밖으로 나갔다.
마치 월미도를 연상케하는 제주항 근처의 그곳(지명이 생각나지 않는다)
공원에서 친구와 기타를 치며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우리의 제주도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