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처럼
하루에도 수십번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내 삶
베트남에서 귀국하신 대표님에게
내 현재 사정을 말씀드리고 다음 달까지만
매장에서 영업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대표님께서는 뜻밖의 제안을 해 오신다
그렇게 힘들다면 앞으로 임대료는 내지 말라고...
대신 당신이 베트남에 있는 동안
한국에 있는 당신 손님들을 내가 대신 관리해 달라고 하신다
생각해보면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다
임대료도 안 내도 되지..
당신 손님들까지 오도록 해 주시지..
게다가 나는 나대로 지금처럼 내 손님 받으면 되지..
그러면서 선불로 당신 손님 관리비를 목돈으로 주시는데...
가뜩이나 생계가 어려운 마당에
오랜만에 만져 보는 목돈은
삶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의 역사였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자꾸만 든다
일단 대표님 손님들은 대부분이 환자 분들이라
피로만 풀려고 오는 내 손님과는 관리 방법 자체가 다르다는 것과
지금까지 경험상 그분들은
어느정도 몸이 나아지면 발길을 끊어 지속적인 수입이 되지 않았고
손님들 또한 대표님과의 실력 차이 때문인지 내게 신뢰가 없다는 것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얼마나
그분들을 내 고객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옛말에 시앗(첩)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했는데
당신께서는 아무리 선의로 내게 임대료를 안 내도 된다고 하셨지만
인간의 심리상 본전 생각이 있는데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의 가시에 내가 그 가시를 과연 맘 편히 받겠느냐는 것이다
아내는 그냥 속 편히 하루빨리 가게를 정리하고
일단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중을 도모하자고 하지만
당장 절박한 생계의 위기를 어느 정도 해갈할 기회를 놓치기가 아까워
대표님 말씀대로 하겠다고는 했는데 모르겠다
지금이야 대표님이 한국에 계셔서 손님이 많이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 주에 또 베트남으로 가신다는데 그러면 다시
매장이 적막강산처럼 될 터인데 그때의 후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말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지금 상황에서 내게 가장 필요한 말씀이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심령에 믿음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내가 반드시 행할 것이 있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여러 방법 중에
주님께서는 내게 지하철 전도의 사명을 주셨고
그렇게 지금까지 이 사명을 푯대 삼아 살아오는 과정 중인데
요즘 아내 덕분에(?) 새로운 지역에서 지하철 전도를 하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온 아내의 일감이었다
얼마 전 둘째를 출산한 분께서
첫째 때도 해 주었던 아내의 손길이 좋았는지
이번에도 아내에게 출장 마사지를 요청했는데 문제는
교통편이 불편해 그곳까지 오가는데 힘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도 없는 내가 운전을 해 주고 있는데
아내가 관리하는 동안 나는 그 시간에 지하철 전도를 할 수 있게 된다
신도시 개발이 한참 중인 원흥역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주로 시작하는 백석역에서 몇 정거장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사실 이 정도까지의 반응은 아니지만
내가 지하철에서 전도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지
사람들은 뭔가 싶어 나의 말을 호기심으로 듣다가
그중에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내가 주는 전도지를 흔쾌히 받아든다
딱히 그런 걸 바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하는 메시지를 기쁨으로 받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좋은지 말이다
아내를 기다리는 두시간 동안 전도를 하면서
대략 2,000명의 사람에게 내가 만난 하나님을 간증하고
주님 오실 날이 머지않았다는 마지막 때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되는데
나가는 전도지는 불과 삼십 여장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러한 수고로 인해
한 영혼이라도 회개하게 된다면 이보다 큰 보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상황이 어찌 되었든 간에
내게 주신 사명인 지하철 전도를 최우선으로 이어오자
이런 역사 말고요... ㅠㅠ 부터 시작된 삶의 필요를 채우시는 역사는
그토록 심각하게 문제 되었던 생계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갈시켜 주고 있는데...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 30:8)
문제는 딱 이만큼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로는 간신히 이달까지만 살아갈 채움이었으니 말이다
주님께서는 내 영을 보호하시고자 아굴처럼 거룩하지도 않은 데도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는 기도를 들어주시는 모양이다